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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 여성의 삶 - 인권 사각지대

[인권사각지대] ① 매매춘 여성, O씨의 하루

지난 19일 전북 군산 대명동 `쉬파리골목'에서 발생한 화재로 20대 매매춘여성 5명이 숨진 사건은 21세기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임아무개(20)씨 등 사망자들의 꽃다운 청춘은 인신매매, 감금, 그리고 업주 갈취의 악순환 고리에서 쳇바퀴돌며 스러져가고 있었다. <한겨레>는 매매춘여성들의 안타까운 삶과 이를 방치하고 있는 행정당국의 문제점 등을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철장 갇힌 나는 한마리 짐승”

오후 4시 눈을 떴다. 몸살끼가 느껴진다. 어젯밤 10명의 `손님'을 받아 지친 몸은 천근만근, 하지만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1300만원 넘는 빚을 빨리 갚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약국에 가 생리를 막는 약과 소염제를 사먹었다. 속이 쓰리고 입안이 깔깔했지만, 억지로 밥을 입에 넣었다. 살아야 해, 난. 함께 일하는 언니들과 식사하는 시간은 언제 다시 팔려갈 지 모르는 떠돌이 생활에서 유일한 낙이다. 그들을 보면 연민의 정도 든다.
오후 6시 화장을 하면서 `영업'준비를 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어제 술버릇 고약한 손님을 만나 실갱이를 벌인 기억이 살아 났다. 고등학교때 개그맨을 꿈꿨던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니 죽고 싶은 맘 뿐이다.
밤 11시 오늘 첫 손님을 받았다. 술취해 추근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제보단 매너들이 좋았다. 오늘은 매상을 많이 올릴 것 같았다. 8명의 손님을 받는 사이 새벽 5시가 됐다. 손님은 더 없을 것 같다. 포주와 오늘 하루 정산을 하니 내 장부에 들어간 돈은 16만원, 그 돈도 실은 포주가 저축해준다며 가로채 내호주머니엔 단 한푼 없다. 영업수입 절반은 애초부터 주인아줌마 몫이다.
영업을 마치니 몸은 녹초가 됐다. 당진 고향에 두고온 엄마 아빠가 보고싶다. 친구들도….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은 임아무개(20)씨 등 사망자 5명은 채 1평이 안되는 쪽방에서 철창에 갇힌 채 `짐승'같은 생활을 해왔다. 하루 평균 10명 안팎의 손님을 받아 생기는 수입은, 인신매매로 팔려올 때 포주한테 진 빚 이자와 방세, 냉장고 사용료 등 갖가지 명목으로 뜯겨 이곳에 온지 1년이 다 돼도 남은 것은 몸뚱아리와 빚덩이 뿐이다.
지난해 5월 군산경찰서는 이 업소 실제 주인 이아무개(46)씨에게 발부한 구속통지서는 이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의자는 'ㅇ기공'이란 상호로 설비업을 운영하면서 군산시 대명동 소재 사창가에서 윤락녀를 고용하여 윤락을 하는 속칭 포주로 97년 10월부터 99년 5월22일까지 임아무개(19)등 6명을 상주시키면서 일명 짧은 밤 화대 4만원 중 방값 5000원과 알선료 2만원 등 2만5000원을 받는 등 영업비와 방값으로 하루 90만원씩 20개월 동안 3억7800만원 상당을 가로챘다.” 경찰은 또 “윤락녀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열쇠로 잠궈 감금하고 임양이 일하기 싫다고 98년 4월5일 새벽 3시경 도망치다 잡히자 뺨을 때리며 `야 XXX아, 빚도 갚지 못하는 년이 왜 도망치느냐. 섬으로 팔아버린다'고 협박하고 감금했다”고 구속이유서에 적고 있다.
그뒤 1년 남짓 흐른 지난 19일,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임씨는 불길 속에서 아무 저항도 못한 채 여고 시절 개그맨 꿈을 접었다. 화재참사 며칠 전 임씨는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도와 주세요. 이젠 지쳐가고 있어요. 이러다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산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이건 아닙니다.”
행정당국도, 사회도 누구하나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권사각지대] ② 매매춘 여성, '감뚝' 이야기

“언제부터 우리 편이 됐다고 `어려운 점을 얘기하라, 원하면 집에 보내준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포주와 한 통속들인데 뭘 듣겠다는건지 기가 막혀요.”
전북 군산시 대명동 `감뚝'업소 종업원들은 지난 25일 밤 경찰이 시민단체 등과 감금 및 갈취·인신매매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자 아예 거부하거나 `그런 사실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감시를 받고 수모를 밥먹듯 당하는데 빚없으면 뭐하러 이 짓하겠느냐”며 “이런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 들통나면 섬으로 팔려갈까 겁난다”고 했다.
감뚝은 군산역앞 중앙로 일대의 유명한 유흥주점촌. 시에 따르면 모두 42개 업소에 270여명의 여종업원이 있다. 이곳은 지난 19일 참사가 빚어진 쉬파리골목 업소와 달리 버젓이 허가받고 영업하는 곳이지만 매매춘 여성들의 처지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감뚝 역시 다른 매매춘지역과 마찬가지로 땅거미가 밀려올 때쯤 시작해 새벽녘 네온사인이 꺼진다. 영업이 시작되면 골목마다 경찰 등 당국의 단속을 망보는 `삼촌'들이 자리를 지킨다. 단속반이 택시를 타고 급습하는 게릴라 단속을 벌이면 삼촌들은 무전기와 휘파람 소리로 이를 알리는데 20초면 전업소가 문을 잠그고 `잠수'한다. 업소마다 상우회 사무실 앰프와 연결된 스피커로 단속정보를 소상히 교환한다.
이곳에서 매매춘을 하는 가영이와 수경이는 ㄱ고교를 올초 중퇴하고 가출해 티켓다방에서 일하다 빚이 늘어나 팔려왔다. 또 이아무개(25)씨는 암에 걸린 어머니 병원비를 대느라 쓴 사채를 갚지 못해 감뚝 식구가 됐다.
“하루 평균 4테이블 정도 받고 단체생활을 하죠. 업주 감시가 심해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도 맘뿐입니다. 전화도 맘대로 할 수 없죠.”
ㅅ업소 이아무개(21·여)씨는 평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던 경찰과 시청공무원, 시민단체가 지난 19일 화재참사 이후 호들갑떠는 게 더 못마땅하다고 했다.
한 업소 여성은 “한두 업소가 불을 끄면 다른 업소들도 문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데,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단속반이 온다”며 업주가 단속반과 유착돼있지 않고서 과연 그럴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여성·시민단체, 유족들로 구성된 군산윤락가화재사건 대책위는 “불이 난 무허가 업소는 물론 감뚝 유흥업소들도 건물을 불법개조하고 법으로 금지된 매매춘영업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당국에 의해 적발된 사례는 올들어 단 1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인권사각지대] ③ 윤락방지법 실효성 없어

15~29살 여성 20% 31만곳서 '성노예' 생활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1995년 조사한 데 따르면 우리나라 매매춘 업소는 모두 31만여곳, 여기에서 일하는 여성은 120만여명이다. 15~29살 여성 전체 인구의 20%에 이르는 숫자다.
매매춘은 우리사회에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광범하게 퍼져 있으며, 새천년이 된 지금 절대수치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많은 여성들이 매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로 △빚 △폭력 △절망감 세가지를 꼽는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정현숙 간사는 “청량리나 미아리 등 집단 사창가나 단란주점, 유흥주점, 티켓다방 같은 `산업적 매춘'은 모두 선불금 형식으로 20~50%의 높은 이자를 붙이는 업주의 고리대금에서 악순환이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보통 포주들이 처음에 빌려주는 돈은 100만~500만원 정도. 화장품, 가구, 숙소 등에 들어가는 돈이다. 어떤 업주는 방에 에어콘을 달아준 뒤 그 할부금을 매달 뜯기도 한다. 매매춘 여성들은 기본급을 채우지 못할 경우 벌금까지 내야 한다. 생리때나 웬만한 병에도 아랑곳없이 영업을 하지 않으면 기본급을 채울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일을 한다 해도 1년에 1000여만원의 빚을 지는 게 보통이다. 빚진 채 도망가면 업주들은 사기죄로 고소해 수배하거나 조직폭력배들을 풀어 잡아들인다.
간신히 빠져나가 집에 돌아가더라도 가족한테까지 협박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매매춘 여성들이 `결국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자포자기에 빠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매매춘 근절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소리회 김미령 사무국장은 “매매춘 여성들은 가정적으로 불행을 겪거나 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유년시절부터 다른 가족에 얹혀 자라나거나 성폭력에 시달려 원천적으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성경험이 없거나 속사정을 잘 모르고 윤락가를 찾았을 경우, 수치심과 자존감을 갖지 못하도록 윤간을 하거나 옷을 벗긴 채 생활하도록 한다.
전북 군산 여성의전화 안향자 회장은 “매매춘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있어 강력한 처벌 근거가 있지만 실효성이 전혀 없다”며 “매매춘에 대해 `미성년자는 안되고 성년은 된다'는 등 모순된 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소리회 김미령 사무국장은 “법적인 금지 또는 허용 논의에 앞서 매매춘 여성들이 감금, 폭력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권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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