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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3회 – 추위 속에 어지러웠던 것들을 털어내기

 

 

 

1

 

긴 연휴가 지났습니다.

사실 시골에서 혼자 살아가는 저에게 연휴나 명절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인데 외지에 살고 있는 막내 동생이 내려와서 가족모임을 하는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번 연휴기간에는 매서운 추위와 비가 이어져서 방안에 틀어 막혀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연휴인데도 할 일 없이 방에서 빈둥거리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며칠 동안 하는 일 없이 방에서만 지내다보면 머릿속에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활개를 칩니다.

오늘 방송은 그 잡스러운 생각들을 꺼내서 털어버리는 의미로 꾸려볼까 합니다.

두 달 가까이 세상의 소리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았더니 그에 대한 상념들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추악한 자들의 뻔뻔스러운 기고만장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얘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에 맞선다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이 많지 않더군요.

“니들은 뭘 잘했노?”라는 노가수의 한마디에 발끈하며 달려들던 그들은

지지율이 심상치 않아지니 깜박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우회전을 하며 어디로 향하는지 헷갈리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뒤에서 그들의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는 진보단체들은 대중의 에너지를 확산시키기보다는 적당히 관리하면서

큰 소리로 대중을 가르치려 드는 뿌리 깊은 선민의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대중을 칭송하지만 실제로는 지식인과 정치인 중심으로 대중을 끌어 모아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고만 할 뿐입니다.

 

과거 노동운동을 할 때부터 쉬지 않고 해왔던 얘기입니다만 나 같은 놈이 아무리 떠들어본들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10년 동안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도와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돌아보지 않다가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추함에 추함으로 맞서면 더 추한 괴물이 되어버림’을 알기에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어려움에도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겠죠.

 

 

2

 

누군가를 씹어 재끼다보면 마음속에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가득 들어차게 됩니다.

그 뿌연 안개 속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숨을 고르고 있으면 문득문득 지난날의 제 악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서

“혼자 고고한 척 씹어 재끼는 너는 뭐가 그리 잘난 놈이냐?”라고 뒤통수를 후려칩니다.

 

이런 일도 한 두 번이 아니라서 익숙해질 만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런 것에 익숙해지면 너는 진짜로 추한 괴물이 되는 가야”라는 얘기에

가만히 내 안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미 마음속에는 온갖 잡것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봐도 더 어지러워지기만 할 뿐이지만

그대도 가만히 마음속 얘기들을 듣다보면 주문처럼 들려오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괴물이 되고 싶지 않으면 누구를 탓하지 말고 그냥 착하게 살아라.”

 

 

3

 

이제 2월입니다.

2월의 시작과 함께 또 다시 강추위가 몰려온다는 예보는 있지만

이제 매서운 추위도 조금씩 물러가겠죠.

 

그동안 춥다고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해야 할 시기입니다.

마늘과 양파 사이에 올라온 잡초들을 뽑아줘야 하고 비료도 줘야합니다.

추위에 움쳐들었던 겨울 채소들도 다시 왕성하게 올라올 테니 주위에 나누면서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감자를 심기 위해 씨감자를 구입하고 미리 밭을 준비해둬야 합니다.

비닐하우스 안의 잡초들도 기운을 내서 올라올 테니 예초기로 정리를 해줘야합니다.

 

춥다는 이유로 게으르게 방치했던 몸과 마음도 다시 추슬러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 당겨서 명상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요가와 운동도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고

손에서 놓았던 책도 다시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과 주변을 조금씩 정돈하면서

곳곳에 쌓인 찌든 먼지들을 털어내고

세상으로 향했던 눈과 귀를 좀 더 예민하게 가다듬어야겠습니다.

누가에게서 외롭고 힘들고 아프다는 신호가 들여왔을 때 놓치면 안되니까요.

물론 “그런 신호가 들려왔을 때 선 듯 나설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남겠지만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죠.

 

 

 

(김일두의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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