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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34회 – 흐르는 시간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1

 

그날도 주차한 후 다른 집에 먼저 가기보다는 절임 배추부터 배송해 놓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절임 배추와 부속 야채 상자 7개만 꺼내 그곳부터 가기로 했다. 차에서 배추를 내려 수레에 싣고 골목을 가로질러 5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연립주택에 도착해 상자를 3층의 고객 집까지 하나씩 짊어지고 나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상자를 갖고 올라가 집 앞에 턱 내려놓으니 인기척을 듣고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나와 “벌써 왔네요. 높은 곳까지 올라오라고 시켜서 미안해요” 하시더니 박카스와 함께 방에 들어가 점심값 하라며 한사코 2만 원을 쥐어주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해서 조금 전까지 낑낑 올라올 때만 해도 있던 가벼운 불평이 안개 걷힌 듯 사라지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 가득했다. 돈보다 이심전심,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혼자서 웬 김장을 이렇게 많이 하시냐니 자식들 것까지 다 해주려고 하신단다. 김장 때 다시 경험하는 엄마의 마음이다.

 

 

구교형씨가 쓴 ‘목사님의 택배일기’라는 책의 한 대목입니다.

택배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저도 가끔 택배를 받을 일이 있습니다. 택배기사님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기에 그때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택배를 보낼 일이 있으면 가급적 무겁지 않게 하고 상자도 꼼꼼하게 포장해서 기사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의 얘기를 듣다보니 저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타인의 수고로움에 고마움을 표할 때는 가능하면 그 마음이 상대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랬을 때 내 마음도 환해지니까요.

 

 

2

 

호기심에 챗GPT를 처음 이용해봤습니다.

OTT에서 볼 영화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1초만에 관련 정보가 줄줄줄 나오더군요.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그 영화의 수상이력을 소개해주는 글에서 제가 알고 있던 것과 약간 다른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 아니야?”라고 물었더니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데”라고 운을 때고는

다시 깔끔하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주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해의 황금종려상은 ‘저수지의 개들’이 받았어”라고 마무리 하더군요.

제가 검색한 영화는 1970년대 영화였는데, 1990년대 쿠엔틴 타란티노 데뷔작을 턱하니 황금종려상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어의가 없어서 다른 검색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제가 물어봤던 영화가 그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검색한 내용을 알려줬더니 “미안해, 그게 맞아”라고 잘못을 인정하고는 정정된 정보를 다시 알려주면서 마지막에 “정보를 정정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인사까지 하더군요.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고 사람이 얘기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정보를 전달해주는데

가장 기본적인 정보에서 오류가 있고

그 오류를 지적했더니 엉뚱한 정보를 끌어들여 오류를 부인하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서야 친절하게 오류를 수정하는 이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AI에 대해서 너무도 요란한 얘기들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제가 이용해본 AI는 세련되고 친근하게 다가와 교묘하게 사기를 치는 야바위꾼 같았습니다.

 

 

3

 

올해가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맘 때가 되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며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곤 합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대해 얘기할 때면 “20대 때는 20km로 지나가고, 30대 때는 30km로 지나가고. 40대 때는 40km로 지나간다”는 얘기를 습관처럼 한곤 하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시간은 몇 km로 지나갈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시간이 나이에 따라 가속도로 빨라진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사십이 된 이후 나이를 헤아리는 것을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고립돼서 혼자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숫자를 헤아릴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런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몇 살인지’ ‘올해가 몇 년인지’ 하는 것들을 잊고 살게 됐습니다.

그렇게 숫자에 무감각해지다 보니 ‘내가 얼마나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식물과 호흡하며 지내는 것이 일이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일 뿐 그것이 한 살 더 늘어난다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에게 시간은 계절 따라 흘러가기만 할 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습니다.

물론 몸이 아주 조금씩 나빠지는 것을 느끼고 있고, 행정적 절차를 밟다보면 숫자들을 적어 넣으면서 나이나 연도를 확인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 큰 의미는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효과를 갖게 되더군요.

그저 바람이 있다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늙어가다가 어느 순간 숨이 멈추면 “내 시간이 다 했구나”하고 마지막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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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t의 ‘낯선 천장’ feat. 전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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