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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는 흙이나 풀이 있는 곳에서 똥을 싸려고 합니다.
산책을 하다가도 아스팔트가 깔린 길이 아닌 돌담이 쌓여있는 밭 위로 올라가서 똥을 싸곤 하죠.
자기 키 보다 조금 높은 돌담쯤은 가볍게 뛰어올라 볼일을 보곤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 돌담을 돌아서 밭으로 가기 시작하더군요.
한번은 돌담 앞에서 밭을 향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겁니다.
왜 그러나 싶어서 지켜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랑이를 안아서 돌담 위로 올려놓았더니 그제야 밭에서 똥을 싸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야 알았습니다, 사랑이가 이제는 저 돌담을 뛰어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사랑이는 열 두 살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기는 했지만
워낙 동안이라서 얼굴에서 늙은 티가 별로 나지 않고
활동적인 성격도 아니어서 활동량이 줄어들었다는 느낌도 별로 없었습니다.
최근 들어 잠잘 때 코고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는 점이 눈에 띄는 변화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부족해서 돌담을 뛰어오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사랑이가 늙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씁쓸했습니다.
이제는 늙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그다지 티도 내지 않습니다.
그저 제 곁을 묵묵히 지키면서 저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뿐이죠.
사랑이를 볼 때마다 진심을 담아서 “사랑한다”고 얘기하며 살아야겠습니다.
2
겨울에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사랑이도 깨고
제가 밥을 먹으면 사랑이도 밥을 먹고
사랑이 산책을 나가면 저도 산책을 함께 하고
하우스에 들어가 나무를 둘러보면 사랑이도 저를 따라다니며 주변을 둘러보고
방에 들어와 쉬고 있으면 사랑이도 쉽니다.
거의 24시간을 붙어 다니다시피 하며 지내다가
제가 잠시 집밖으로 나가리라도 하면
사랑이가 저를 찾으며 짖어댑니다.
평소에 분리불안이 별로 없는 녀석인데도
겨울만 되면 저와 떨어져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최근 2~3년 사이인 것 같은데
이 또한 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심리적 변화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와 떨어지면 애처롭게 짖어대다가도
막상 제가 방에 들어오면 덤덤하게 저를 바라볼 뿐입니다.
저는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사랑이는 자기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을 뿐입니다.
가끔 제가 의자에 앉아있을 때 다가와서 쓰다듬어달라고 머리를 들이미는 것을 빼고는
제게 별달리 요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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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운 이도 있었고
만나면 불편한 이도 있었습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웃고 떠드는 2~3시간 동안
저는 대화에 소외된 채 적당히 웃으면서 술을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이날만 이런 것도 아니기에 익숙할 법도 한데
이런 모임을 마치고 오면 착잡한 기분 때문에 우울해집니다.
가난한데다가 특출하게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자존심은 필요 이상으로 강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도드라진데다가
가부장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하니
그런 자리에서는 허허 웃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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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서는데
사랑이라 문 앞으로 달려와 저를 반기더군요.
제가 없는 몇 시간 동안 외로웠을 것에 미안하기도 하고
선한 눈으로 저를 반겨주는 모습에 고맙기도 해서
사랑이를 살며시 안아줬습니다.
늙음과 외로움에서는 저보다 한 발 앞서 있는 녀석이
포근한 감촉과 은은한 체온을 전하면서
제 마음을 토닥여주더군요.
(wont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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