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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한마리,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10/05 17:02
  • 수정일
    2009/10/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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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지냈습니다. 정확히 22년차인데도 여전히 시댁에 가기 전에는 심적 부담이 크더군요.

그래도 세월의 힘은 큰가 봅니다. 나이가 드는 탓이겠지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1. 조기

제사를 다 드리고, 식사를 마쳤을 때, 아버님께서 다들 원하는 음식을 각자 싸가지고 가라고 말씀을 꺼내셨지요. 서울 사람들이야 필요없겠지만.. 하고 토를 다셨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 남편이 상어고기와 조기는 가져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버님은 코웃음을 치셨습니다. 제사상에 준비된 조기가 달랑 네마리뿐인데, 이 많은 식구들이 두마리를 갖고 아침에 나눠 먹었고, 니가 가지고 갈 것이 어디있겠냐구요. 그 말씀을 이번엔 어머님이 받으셨습니다. "아니다, 남은 두 마리 중에 한마리는 니가 가져가도 된다"라고.. 그 자리엔 시부모님과 저희 부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저희 집 시동생네 두 부부와 작은 어머님과 그 집 형제 내외, 막내 작은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계신 자리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머님이  내 놓고 당신의 큰아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평소에 삼형제를 고루 배려하시는 그 지혜가 놀랍고 존경스러웠던 저로서는 놀랍고도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지난 세월, 특별한 아들을 키워오시면서 드러내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이제는 표현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더군요.

그러보니, 목요일 저녁 저희 부부가 가장 먼저 도착해서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맛있게 담그신 새김치를 상에 놓아주셨어요. 그 때, 아버님께서 한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김치 아무나 못 먹는 거다..." 나이 오십이 다 된 아들을 맞이하시려고 고구마를 삶아 놓으셨고, 오징어를 구워서 '몰랑몰랑'해지도록 젖은 행주에 싸두었다가 먹기 좋게 찢어놓으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님의 아들 사랑을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생각에 이어 지난 기억 속에서 한 장면이 더 떠올랐습니다.

 

2. 어머니의 눈물 

시집와서 지금까지 어머님이 우시는 모습을 본 것은 딱 한번입니다. 저희가 보스톤에서 지내고 돌아오던 해가 바로 어머님이 칠순이 되시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조카 네명과 동서, 그리고 어머님을 미국 동부 여행 패키지로 오시게 하여 여행 끝에 저희 집에서 함께 며칠을 더 여행을 하셨지요. 돌아가시는 날 뉴욕공항에 모시고 가서 일찌감치 짐을 부치고 나서 동서와 조카들은 쇼핑을 하겠다고 자리를 뜨고, 어머님과 함께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님께서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드러내셨던거지요. 그 이유를 어머님께 감히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께 아주 특별한 아들의 인생에 대해 어머님으로서 어쩔 수 없는 슬픔을 가슴에 꾹꾹 눌러안고 계셨구나 짚어보았을 뿐. 한번도 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당신의 기대와 바램에 비추어 요구하시지 않으셨던 어머님. 그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슬픔은 아마도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다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 바램에서 벗어나 있는 아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클 것 같아서 생긴 것은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보 보니,

한 어머니의 지극하신 사랑을 받은 그 귀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네요.

어머님께서 저를 어찌 생각하시는지,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새삼 헤아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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