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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참가기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10/01 06:50
  • 수정일
    2009/10/01 06:50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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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떠나서 토요일/일요일 학회에 참석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 짦지만, 이런저런 감상이 많아서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네요. 글로 정리하면 차분해질까 싶어 써 본 글, 올려봅니다....

1.  장소
이번 학회가 열렸던 곳은 일본 고베입니다. 관서지방이고 효고현 소속인 도시이죠. 한국에는 1995년 고베대지진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고,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리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내려 오사카를 거쳐서 갔습니다.  고베나 오사카 모두 항구이므로 부산같은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더군요. 버스가 해변을 끼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건너편 쪽 오사카 시내를 바라보면서 문득 제 아버지가 청년시절에 이곳에서 고학을 했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제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경북 상주 산골에 어머니와 누님, 동생을 남겨두고 외사촌 형이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오사카로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낮엔 돈을 벌고, 밤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해내며 애쓰셨을 '청년' 아버지가 떠올라서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막막한 미래를 위해 밤낮없이 불안했을 '청년'으로 이 하늘과 이 바다를 바라보았겠구나 싶더군요. 저희들에게 신문배달을 하며 공부를 했노라 말씀하셨을 땐 그저 어른의 훈계로, 핑계로만 들었더랬지요. 이제 돌아가시고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 그리움으로 제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참 없더군요. 몇 년생이시더라? 결혼은 언제 하셨을까? 내가 태어나셨을 때 무엇을 하셨던가?... 내가 성장하여 기억할 수 있는 아버지는 그의 인생에서 일부분, 그것도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에 눌려 계셨던 모습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 시간을 내어 언니들과 오사카를 다시 와서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2. 사람
이번 학회는 제1회 세계간호과학회 국제간호연구학술대회(The 1st International Nursing Research Conference of World Academy of Nurisng Science)입니다. 효고대학교 간호학과가 주축이 되어 일본의 여러 분과학회(성인, 아동, 정신, 지역 등등), 그리고 태국, 한국,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세계간호과학회를 창립하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는 창립기념학술대회였더군요(사실, 가기 전에 저도 잘 몰랐던 사실. ㅠㅠ).
주제강연자 중에는  유명한 간호이론가 Afaf Meleis가 있었지요.  저는 이름만 익히 들었고, 강의는 첨 들어본 셈입니다. 일단, 자신의 주장과 생각에 대단한 확신과 실천력을 가졌더군요. 지금은 University of Pensilvania 간호대학의 학장으로서 행정가/경영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서인지, 발표의 결론은 자기네 대학의 석박사과정에 대한 소개와 홍보로 이어졌지요.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 임삼실무 경험"이 간호학의 발전, 새로운 간호지식의 발견과 축적에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주장되고 있는 전문간호사를 위한 별도의 박사과정을 지지하고 있더군요. 실무경험으로부터 간호연구의 주제가 도출되고, 이루어진 연구는 다시 실무에 반영되어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대학의 구조와 기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대학에서 이를 실현시키고자 애쓰고 있노라 하였습니다. 학생이 있으니 그저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이 있어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짜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훈련되어가는 학교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함을 확인하였습니다. 끝까지 청중석에 앉아서 심포지움 주제를 듣고 질문이나 코멘트를 성의껏 하는 태도도 돋보이더군요. 사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감수해야 할 수고에 비하면 늘 쓰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쯤이야 쉽겠지요.. 게다가 초청된 연자와 일본내 간호학 교수들중 몇몇 사람들은 다 UCSF에서 자신이 가르쳤거나 그곳을 졸업한 동문들이니 자신의 의견을 많이 개진하고 싶을 만큼 친근하겠지요.

이번에 인상이 깊었던 것은 일본의 간호연구자들이었습니다. 전국의 여러 곳에서 젊은 연령층부터 연세드신 분까지 다양한 분들이 오셨더군요. 학회 총참가자가 800여명이 넘었다고 주최측은 몹시 좋아했습니다. 일본 간호연구자들의 연구 주제와 방법론은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경험한 바를 연구문제로 만들어서 이를 꼼꼼히 정리, 분석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열정으로 열심히 포스터를 만들거나 영어로 구두발표를 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가지고 온 모습들이 새삼 좋아보였습니다. 브라질에서 이민와서 일본에 사는 여성들의 아이양육과 관련된 사회적 연계망을 조사한 포스터 앞에서 제가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며 미국에서 온 교수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는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더군요. 찍은 사진을 자신들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냐고 동의를 구하는 젊은 강사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그 결과를 인정받았다는 기쁨이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어깨를 껴안아주었지요. 격려해주고 싶어서요.

저는 대학원 시절에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지요. 지금은, 아는 만큼 드러내고, 그 수준에서 또 모르는 것을 찾아 애쓸 수 있도록 학생들을 격려하는 선생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간호교육을 주제로 한 논문들을 들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운 사례를 발표한 대만 연구자도 있었고, 샌프란시코에서 여러 간호대학이 공동으로 보건소 실습을 기획하고 시도한 사례도 있었고, 중소병원에서 장학금을 주고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그 병원으로 취업을 시켰다는 태국사례도 있었습니다. 실무경험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연구문제를 찾아내어 생생하게 들려주는 발표와 포스터들이 복잡한 통계와 추상적 개념으로 포장된 연구들에 비해 훨씬 더 많더군요.
저는 한국에서 간호사들의 소진에 관해 연구한 논문을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포스터 발표를 했는데, 쿄토대학의 한 교수팀이 관심을 보이더군요. 자신도 간호사의 소진에 관한 연구를 해볼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연구를 같이 해보자고 뜻을 모았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참 많은 간호사들을 보았습니다. 그 순수함과 열정이 저를 더욱 겸손하게 하고, 의욕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네요.

3. 시간
제가 이번 학회에 가게 된 계기는 10여년전에 만났던 한 교수로부터 온 연락 때문이었습니다. 1997년에 제가 일본의 키타큐슈에서 하는 산업간호학술대회에 참석했을 때, 제 발표가 끝나자 다가온 한 예쁜 간호사가 있었지요. 마키 도미나가! 부모님이 한국인이지만, 국적을 바꾸어서 일본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래도 한국인을 만났으니 이야기를 같이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도 참 반가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 그녀는 오사카에 있는 큰 회사의 산업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지요. 한 두번 카드가 오고 갔던 기억이 있지만,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키타큐슈에 있는 산업의과대학에서 '간호사의 건강'에 대한 심포지움이 있어서 한국 간호사에 대한 발표를 하러 갔었는데, 그 때 마키가 저도 볼 겸해서 왔노라고 저를 찾아주었습니다. 그 사이에 동경을 오고가며 석사를 마치고 나서, 회사를 그만 둔 후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고베에 있는 대학의 간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알아봐 준 그 마음이 고맙고, 간호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신규간호사의 이직의도 변화에 관한 추적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후 몇 달 후에 이메일로 이번 학회가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고, 자신이 준비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영어는 부실하지만, 한 세션의 좌장을 맡을 수도 있었답니다. 살면서, 10년이란 세월은 참 긴 것 같고,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한 사람과의 인연을 정리해보면 참 얼마나 생생한 시간인가 싶습니다. 오랜 인연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사람은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 봅니다. 마끼는 정말 인형같이 예쁜 오사카 여인입니다. 요즘의 일본 여성(특히 삼십대)들이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젊은 연구자요, 선생이지요. 반듯하고, 깍듯한 태도가 차갑거나 형식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따뜻한 배려로 느껴지게 하는 매력을 보았습니다. 언제 또 만날지는 모르지만, 참 따뜻한 인연이구나 싶습니다.

또 하나, 시간에 대한 단상은  일본 사람들의 영어실력입니다. 97년도에 일본학회 참가자들은 거의 다 동시통역기를 사용했더랬지요. 질문이나 발표 중에도 일본어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번 학회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영어실력이 놀랄만큼 늘었더군요. 일본식 영어를 부끄러워 하면서 발표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창하진 않아도 쉽게 말을 걸고 더듬거리더라도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적극성도 그 전엔 못 봤던 듯 하고. 지난 10여년동안 일본의 4년제 간호대학은 12개에서 200여개로 급속히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법을 만들어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적극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부자나라에서 한 사람 한사람의 발빠른 적응이 집단의 큰 변화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한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그 속에서 각 개인들은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 애쓰면 뭐하나 싶을 때, "시간"이 나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이 힘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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