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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알기 : 푸른 강은 흘러라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10/21 17:26
  • 수정일
    2009/10/21 17:26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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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때를 알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겐 한참 지난 지금도 청소년기가 어떤 때인지, 스무살 청년기를 왜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장소설을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이 영화 역시 열일곱살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광고를 보고 선택했습니다.

두만강 가까이에 있는 아주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년의 어머니는 한국에 돈을 벌러 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집 주변의 밭을 갈면서 지내지만 글을 쓰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면 전업 농부는 아닌 듯도 보였습니다. 그 시골에도 컴퓨터가 있고, 소년은 같은 학교. 같은 반인 소녀와 채팅을 하면서 좋은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맑고 씩씩하던 소년이 어머니가 부쳐 준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면서 일탈을 시도하게 되고 소녀의 원망을 듣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도 소년의 일탈을 걱정하지만, 비난하거나 따돌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빠지진 말라고 당부할 뿐 자신의 한을 아들에게 퍼붓지 않고 지켜봅니다. 어느 날 학교에 소년이 나타나지 않자 선생님은 소년을 찾아 나설 친구가 없냐고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소녀가 손을 들어 자청을 하고, 두만강가에서 "강의 가장 높은 위상은 바다로 가는 것이다. 바다로 흘러 흘러가라"하시던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앉아 있는 소년을 찾아냅니다. 그렇지만, 소년은 소년대로 소녀는 소녀대로 각기 자신의 길을 걸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 둘은 다시 화해를 합니다. 그들의 암호는 "푸른 강"입니다.

두 주인공을 통해 '십 대'의 특징(?)을 몇가지 찾아봅니다.

1. 순간 멋있게 보이고 싶고,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충동과 욕구를 참지 못하고 끌려간 소년에 비해 같은 또래의 소녀는 훨씬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입니다. 공부도 더 잘하고, 다른 친구들을 격려할 줄도 압니다. 

2. 소년의 마음을 돌리고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소년이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할 때 "어머니"를 크게, 안타깝게 외쳤고, 강가에 앉아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었으니까요.

3. 놀랍게도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화들짝 놀라 불을 끄고 자리로 돌아가 앉습니다. 거침없이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선생님은 왜 숨어서 우리가 잘못하기를 기다리시다 들어오시냐구요. 또 며칠 째 기숙사에 돌아오지 않는 여학생 두명을 걱정하며 울먹이는 순진한 여선생님을 학생들이 오히려 달래줍니다. 걱정하지 마시사라며, 곧 돌아올꺼라며 말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어른들이 전혀 어른답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4. 십대들은 때로 싸우고 부딪히지만, 쉽게 화해하고 서로를 끌어 안을 수 있는 여린 마음을 가졌더군요.

5.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이 옆에서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기를, 그리고 언제든 받아주기를 믿고 바라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잠깐, 저의 십대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저도 한강변에 살았기에 고등학교를 오고가며 버스 안에서 유유히 흐르는 푸른 한강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억으로 인해 지금도 한강이 제게 친숙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고3 올라가자마자 성적이 너무 나빠서 낙담하여 한강까지 걸어가서 한참동안 강물을 내려다본 적이 있었습니다. 삶을 끝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문득 푸른 강을 더럽힐 수 없겠다는 핑계를 떠올려 사당동 집까지 걸어왔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겐 세상이 저의 일탈을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범생'이처럼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쳐다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영화 속에 슬프고 안타까운 조선족들의 생활이 많이 담겨져 있어서 재미있거나 빠져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행복한 끝맺음이길 바랬지만,  한국에 돈 벌러 왔던 소년의 어머니가 끝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는것이 마지막 장면이라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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