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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치기후 숨돌리기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방금 시험문제 출제를 마쳤다. 시험이 1시반 반 남았는데 문제를 내는 사람이 초치기를 한 셈이다. 요즘은 정말 정신이 없다. 지난 열흘간 거의 날마다 사업장 방문일정이 있었다. 게다가 납기일이 한 달 남은 연구가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 많은 공동연구자들과 연락하고 의논할 것이 매일 생긴다. 덕분에 홍실이와 함께 하는 작업이 영 진척이 안되어 블로그에 글 쓰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뜸했다. 오늘은 사업장 방문이 없으니 기필코 원고를 쓰리라. 내가 이 스트레스 만땅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을 해버리는 수 밖에 없다.


#1. 어제 오후에 방문한 전선만드는 회사는 올해 3관왕을 했다. 작업환경측정에서 소음초과, 청소작업중 발생한 안전사고로 인한 산재, 소음성 난청 유소견자 발생......

 

 검진결과 유소견자에 대한 상담이 방문 목적이었는데 특히 소음성 난청 유소견자 판정을 받은 사람의 사후관리 권고안을 확정하기 위해 본인과 직접 면담 약속이 잡혀 있었다. 더 이상의 소음 노출을 피하기 위한 작업전환이 필요하지만 본인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약 20년간 작업해온 부서를 떠나 다른 부서로 가면 나이는 가장 많고 일은 제일 못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가기 싫다는 것이다. 안전관리자는 약 일억원을 투자하여 그 부서 장비를 밀폐시켜 소음노출을 좀 줄인 점을 감안해서 계속 그 부서에 일하는 것으로 사후관리의견을 내달라고 했다.

 

  작업장 개선을 했더라도 그 부서의 소음은 88데시벨쯤 되기 때문에 작업전환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노동자의 삶의 질을 생각하면 그게 답이 아닌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작업전환할 저소음 부서가 없는 경우 사후관리의견에 "작업전환 또는 귀마개와 귀덮개 동시착용"이라고 적고 가능한 경우는 저소음부서로 작업전환을 고수하고 있다. 작업전환의 이득보다 부담이 더 높은 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의견을 존중하려고 하지만 판단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고민끝에 작업환경개선이 되었으니 좀 더 지켜보고 청력이 더 떨어지면 그 때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결정. 이후에 연구회의가 있어 빨리 가려고 서두르는데 안전관리자가 작업장 순회점검을 꼭 해야 한다고 우긴다. 작업장 개선한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소음작업은 참 개선이 어렵다. 일억원쯤 투자해서 커다란 장비를 밀폐시켜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3~5데시벨정도 감소 정도. 

 

 작업장을 돌면서 안전관리자에게  "이거 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작업자들이 많이 좋아하고 고마워하겠다" 했더니 쑥스러워 하며 " 뭐 꼭 그렇지도 않아요. 장비밀폐시키면 작업하기에 불편한 점도 있거든요.....그래서 불만이 많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소음이 줄었다고 좋아들 하세요" 한다. 이 안전관리자는 2년전에 만났을 때 매사에 시큰둥했었는데 만날 때마다 예쁜 구석이 보인다. 처음에 회사를 계속 다닐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가 그 고민을 접은 뒤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늘 말을 듣고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2. 어제 아침에는 70여명쯤 되는 규모의 반도체 부품 회사에 가서 일반건강진단 유소견자를 대상으로 소집단 교육과 상담을 했다. 젋은 사람들이 고혈압이 많아서 만든 자리였는데 특이하게도 고혈압 유소견자의 부인이 참여했다. 사내부부란다. 본인은 안 왔는데 말이다.

 

  교육과 상담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장시간 노동, 영업 스트레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동네에서 이동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와 기숙사만 왔다 갔다하는 생활, ...... 이런 것들이 젊은 노동자들의 몸과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인자들은 회사측에서 동의하기가 쉽지 않아 그 대처도 어려운데 이 회사는 총무과 담당자가 직원 복지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이라 좀 낫다. "회사가 직원 복지를 위해 큰 돈은 못 쓰는 처지이니 보건교육과 상담 처럼 기본적인 사업이라도 활성화 하고 싶다, 내년엔 금연 프로그램도 좀 해보고 싶다. "는 담당자의 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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