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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마지막 출장검진

 (12월28일 수요일)

오늘의 포지션은 이차 검진. 사실은 원내 성인병 검진을 하라는 것을 바꾸었다.

산업의학과 의사에게 성인병 검진은 특수건강진단보다 재미있는 일은 아니기도 하고 이차 검진은 일이 별로 많지 않으니 짬짬이 마감이 코앞인 논문작업을 좀 해보려고.



#1. 첫 번째 수검자가 폐기능 검사를 하면서 투덜투덜 댄다. 불러서 물어보니 고등학교 3학년 실습생이라 지금 뭐하고 있는지도 잘 이해못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유해작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보니 개인 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는 말은 들었으되 주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해야 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단다. 작업후 폐기능 검사결과를 보니 썩 좋지 않았다. 이 검사는 피검자가 성의를 다해야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검사를 왜 하는지 실컷 설명했더니 “왜 하필 나만 하냐”고 불멘 소리를 한다.  아이고 맥빠져. 산업안전보건법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검사의 필요성을 반쯤 이해시키고 다시 검사하도록 했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여드름도 가시지 않았다. 다시 검사한 결과도 나빴다. 10개월간의 알루미늄 분진 노출이 폐기능 저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많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일단 추적 관찰을 결정했다. 

 

#2.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지 몰라서요”.

모친이 당뇨병 합병증 사망한, 기숙사 생활을 하는 30대 중반 미혼 남자가 당뇨병 재검사를 받으러 와서 진단받은지 2년이 되도록 치료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하는 말이다. 이렇게 대중매체를 통해 건강에 관한 지식이 많이 보급되었고 모친이 당뇨병인데 치료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람을 보면 긴가 민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얼굴을 보니 정말 모르는 것 같아 자세히 설명.


#3. “혈압이 높으면 중풍이 생기는 거예요?” 모친이 중풍으로 사망한 중등도 고혈압 환자가 난 정말 몰랐다는 표정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양파가 혈압에 좋다는데...."  요즘 부쩍 양파가 혈압에 좋다는 말 하는 사람이 늘었다. 아이고 입 아퍼라.  

 

#4. 혈압이 조금 높았다 정상이었다 하는 30대 중반 남자가 와서 말하기를 “추운데서 일해도 혈압이 높아지나요?, 제가 일하는 데가 굉장히 추운데 회사에서 혈압재면 높고 병원에서 재면 괜찮거든요”. 후줄근한 히터를 모양이라도 갖추어놓을 텐데 얼마나 춥길래 그러나 해서 물어보니 허걱 옥외 포장작업이란다. 으잉? 제품이 옥내에 못 들어갈 정도로 큰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생산량이 자꾸 자꾸 늘어서 공간이 부족해서 포장작업이 밀려난 거란다. 천억 매출이 4천억 매출이 된 결과이다. ‘세상에, 아무리 악덕 사업주라도 작업장은 제공하는 법인데 이건 정말 기본이 안되었다, 도대체 노동조합은 뭐하냐’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자기가 간부란다. ‘부서이동 해야겠네’한다. “어이쿠 그럼 다른 사람이 계속 일하는 거잖아요?” 기가 막힌 뻐꾸기, 뭐라도 좀 해라. 길게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리고 갔다. 


#5.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는 거면 몸에 나쁜게 아닌가요?”

평생 약 먹는 게 싫어서 10년전부터 고지혈증이 있었으나 약을 안 먹었고 올해 처음 당뇨병 의심, 간질환주의가 나왔다는 일본인 부사장에게 진료의뢰서 써 줄테니 내분비내과 가라고 통역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6. “보험들어야겠네요” 모친이 고혈압이고 올해 검진에서 처음 혈압이 높은 40세 남자는 (130/98, 143/97) 내 설명을 다 듣고 한 말이다. “보험 들기 어렵습니다. 일단 고혈압이 확정되었는데 고지 안하면 법적인 다툼이 생기거든요. 그러니 아직 가능성 있을 때 운동으로 열심히 치료해서 정상 혈압 만들고 가입하세요”. 마침 사업장 간호사가 지나가길래 “이 분 혈압체크도 자주 하시고 좀 어떻게 해보세요” 토스하고 통과.

 

그런데 이 남자, 그 다음 사람 상담하는 거 지켜보면서 하는 말이 “의사 선생님이 공격적으로 이야기 하시네요” 한다. 공격적인 게 내가 말하는 내용이라면 둘 다 약물치료기준에 해당하는 고혈압이라 좀 심각하게 말해서 그런 것일테고 형식이라면 감정적으로 소진해서 말하기 싫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말투가 더 딱딱해져서 그런 것이리라. 그렇다 할 지라도 내가 남자 의사였다면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느꼈다 하더라도 말하지 않았겠지. '흥, 당신이 뺀질대니까 말하기 싫은 거지'. 왕 밥맛인 유형 수검자이다.


  마지막으로 수술방 근무하다 사업장에선 처음 일 해보는 어리버리 간호사한테 검진결과 상담이라도 좀 잘  챙겨달라고 당부하고 마무리했다.  3년전에 왔을 때는 무성의한 사람이었는데 이번 간호사는 좀 나으려나.


  이게 올해 진짜 마지막 병원업무이다. 오늘 저녁, 내일 오후, 모레 아침, 두세시간 분량의 집중해야 하는 연구회의가 각각 하나씩 잡혀있다. 그런데 그 놈의 원고는 왜 이리 진도가 안 나가는지. 그거까지 끝나야 2005년을 보낼 수 있잖아(홍실이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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