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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1월 들어 새해 업무 계획 관련해서 몇 차례 회의가 있었다. 검진팀장에게 일하면서 어떤 점이 어렵냐고 물었더니 의사들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데 사업장에선 조정을 요구할 때 마음이 약해진다고 했다. 사업장 하나 늘이기는 어려워도 떨어져 나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오늘 아침에 채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우리 병원에서 보건관리대행을 하고 있는 무슨 무슨 사업장에서 그 병원 행정실장을 찾아와 기관변경을 상담하러 왔다며 무슨 일이 있었냐 묻는다. 안 그래도 고민인 사업장인데 떨어져 나간다니 시원한데, 그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지난 해 특수건강진단 대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고, 소음성 난청 유소견자 판정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었던 곳이다. 우리 간호사가 시간 약속하고 방문하러 가서 사측 보건관리자 얼굴 한 번 못 보고 돌아오는 일이 빈번했다. 상담장소와 시간도 제공하지 않아 현장 다니며 유소견자 상담만 겨우 했다. 보건교육 한 번 하지 않는다. 보건관리자는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 안전보건 총괄 책임자를 만나 담판을 지을 계획을 세웠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다. 실제로 우리 병원이 그 회사에 관한한 별로 잘 한 것도 없다.  문제는 이런식으로 특수건강진단에서 직업병 유소견자 판정이 나고 작업환경측정결과 초과가 된 것에 대한 불만때문에 산업보건기관을 옮겨다니는 행태를 그냥 두고 보아도 되는가이다.

  작년에도 새해 벽두에 계약 해지가 줄을 잇더니 이제 또 시작인가 보다. 

그렇다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담당 간호사한테 들어보니 사측의 내세우는 해지사유는 더 웃긴다.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대하여 노조에 말했다는 게 문제라는데 다만 기가 막힐 뿐이다. 지난 번 방문때 과장이란 자가 노조에 절대 근골격계 근 자로 꺼내지 말라고 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2. 지난 해 상반기 작업환경측정에서 오존이 노출기준에 육박했던 사업장에서 예정되어 있던 오존정밀측정과 폐기능 검사를  미루자고 연락이 왔다. 오존 정밀측정은 그 회사 노사간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그 사건 이후 작업환경측정기관을 바꾸려고 알아보았는데 노조측에서 반대해서 할 수 없이 우리 병원에서 하게 되었다며 2006년도 상반기 측정때로 미루자는 것이다.

  오존 노출이 초과했던 다른 사업장에 정밀조사를 하자고 긴 시간 설득했는데 결국 안한다고 해서 근로감독관에 질의했다. 법이란 게 웃겨서 오존이 작업환경측정항목으로 추가되고 몇 달후에 특수검진대상 항목으로 지정이 되었다. 이 사업장은 그 기간에 특수검진을 실시했던 것이다. 10월7일 법 개정 이전에 일차 특수검진을 실시한 사업장에서 오존 특검을 할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 물었더니 없다는 회신이 왔다.

 이 사업장에선 흉부방사선 촬영상 폐렴소견 환자가 발생했다가 좋아졌고, 호흡곤란과 마른 기침을 호소한 사람도 몇 명있었다. 그래, 나도 법대로 하지 뭐. 오존 특검은 못 한다고 치자, 그래도 노출되는 유해인자에 IPA가 있으니 작업전후 폐기능 검사는 해야 한다고 썼다.  

 근로감독관이 안해도 된다는 것을 내가 어쩌랴.

 

#3. 얼마전에는 신경증상이 있는 연취급자에게 신경과에 가서 추가검사를 하라고 했더니 회사에서 비용부담 못한다고 해서 미검으로 판정불가처리해서 내 보냈다. 사업장에서 난리가 났다. 근로감독관이 와서 뒤집었단다. 담당 근로감독관과 통화를 했더니 흥분해서 왜 특검을 검사도 안하고 종료했냐, 뭐라도 판정을 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진다. '의사가 무슨 점쟁이냐, 검사도 안한 것을 어떻게 판정을 내냐?, 사업장에서 검사 안 한다는데 내가 그럼 어떻게 하냐'했다. 그런거 감독하라고 당신이 월급받는 거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는데 삼켰다. 앞으로는 재검통보를 할 때 공문처리해서 회사측에 충분히 설명했다는 근거를 남기란다. 그러지 뭐.

  이 일로 전화통화를 한 시간이 총 한시간 반 쯤 된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다. 사업장에서 일차적으로 담당직원한테 엄청난 고자세로 항의를 하고 나한테는 맨 마지막에 온다. 내가 마음이 약해지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들 한다. 

 

 그래서 말이다. 결심했다. --> 새해에는 원칙을 더 잘 지켜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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