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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사람들

기록해 둘 필요가 있어 간단히 쓴다. 

지난 12월, 우리 병원이 보건관리대행을 하고 있는 모 외국계 회사의 물류창고를 갔었다. 물류창고 작업자들의 호흡기 증상에 대하여  작업장의 먼지때문이라는 호소가 있어 사측이 조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배를 타고 오는 부품과 수리가 필요한 제품을 보관했다가 공장으로 보내는 곳인데 직접 관리는 하청업체가 담당하고 본사 직원 2명이 근무중이다.  1명은 만성적인 기침을 호소했는데 천식이 의심되지는 않았고 1명은 심한 비염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둘 다 이 물류창고에 근무한지 수일~수개월후에 발생한 것이었다.     



트럭에 물건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공회전 하는 타이어가 마모되면서 발생하는 먼지가 사무실 안으로 유입되는 것. 물류창고내에 쌓인 먼지들도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가끔 그 옆 회사에서 알수 없는 유기화합물을 쏟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 냄새 또한 지독하다고 했다.

 

뻐꾸기가 주목한 것은 현장 한 구석을 판넬로  막아 만든 사무실에 환기가 전혀되지 않는 점이었다.  우리 산업위생사가 사측의 의뢰를 받아 물류창고에서 측정한 총 부유분진, 이산화탄소 등 실내공기 오염지표 등은 특이사항이 없었다.  그러나 그 보고서엔 사무실의 포름알데히드, 휘발성 유기화합물등을 측정한 기록은 없었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본사 작업자 2명 뿐 아니라 하청업체의 작업자 6명도 조사했는데,  그들중 한 명은 만성적인 결막염을 호소했고 두어달 전 결막에 생긴 종기를 수술했는데 또 생겼다고 했다.  이 사람은 창고에서 물건을 내려 트럭에 싣는 작업을 주로 했다. 또 한 명은 원래 있었던 아토피 피부염이 좀 심해졌다고 했다. 이로부터 하루 평균 4시간정도 트럭에 물건을 적재하는 작업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눈, 호흡기 점막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3층 창고에서 근무하는 다른 2명은 증상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머지 면담을 진행했다. 3층 작업자들은 점막자극증상은 없었으나 심각한 가스 냄새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수리를 위해 바다건너오는 제품들에 담겨져 있던 유독가스(아마도 불화수소를 포함한..)들은 제거된 상태로 발송되는 것이 맞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양이 들어있어 뚜껑을 열 때 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등의 증상이 발생하곤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뻐꾸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들은 그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설명을 들은 적이 없고, 어떤 호흡기 보호구도 제공받은 적이 없고, 3층엔 환기시설도 없고, 작업환경측정도 시행된 적이 없다. 작업자들은 수개월 단위로 바뀌고 있고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배운 것 없고 갈데 없는 이들의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져간 노트북 컴퓨터로 네쪽 짜리 보고서를 썼다.

 

1. 본사 작업자들의 비염과 호흡기 증상은 정확한 임상상태 평가를 위해 진료가 필요하다. 이 문제의 주된 원인은 임시 사무실의 판넬에서 방출되는 포름알데히드와 유기화합물일 가능성이 높다.  사무실내 환기설비를 하든지, 사무실을 2층으로 옮기든지 대책이 필요하다. 환기설비는 뻐꾸기 의견이었고, 2층으로 옮기자는 것은 본사 직원들의 생각이었는데, 원활한 현장관리를 위해 1층 임시 사무실에서 작업하도록 하는 사측의 방침이 문제라는 것이다. 듣고보니 뻐꾸기 의견보다 더 좋은 대안이다.

 

2. 제품 적재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는 현장작업자들의 결막염, 호흡기 증상의 주된 원인이다.  옥외 작업 특성상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어려우니 본사직원 1인과 하청업체 직원 4인 등 현장 작업자들은 눈과 호흡기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 이 먼지가 사무실안으로 유입되면서 사무실 작업자의 비염도 심해질 수 있다. 사무공간과 현장의 격리가 필요하다. 하청업체 직원들의 건강문제는 본사의 책임을 벗어난 문제라 보고서에 쓰지는 않았고 본인들한테 그들이 발생한 건강문제에 대해 산재/공상으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물론 그들에게 가능한 대안은 아니다.  20여명 규모의 소규모 물류업체에서 결막염과 종기, 아토피 피부염은 대수롭지 않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일로 여겨지니. 

 

3. 3층작업에 대해 작업환경을 평가하고 유해가스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쓰면서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여기서 이렇게 유해가스에 대책없이 노출되다가 못 견디거나 다른 이유로 직장을 옮길 것이고, 거기서 또 어떤 유해인자에 노출될지...... 버젓한 일자리를 갖지 못한 노동자들이 일생을 거쳐 노출되는 유해인자들로 인해 빨리 몸이 망가지고 그 결과를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우리 병원이 본사 작업환경측정을 할 때 이 곳도 함께 평가하고 대책을 권고하는 것.  작업환경측정을 할 때 산업위생사가 그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과가 있는 조치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기를 바랄 뿐.

 

동행했던 본사 담당자는 자기회사 직원들의 호소가 근거없는 것은 아니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과 물류창고 3층의 작업환경에 대해서 본사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서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

 

돌아오는 길 담당간호사가 하는 말이,  이 곳에서 컨테이너 박스들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 뒤로 4단 이상은 적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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