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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생들

   5월이라고 지도학생 셋이서 찾아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하나는 지난 해 유급을 해서 의기소침, 또 하나는 벌써 본과1학년이 되어서 의젓해졌고, 처음 본 신입생은 얌전한 형아들과는 달리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잘 다니는 아이였다.  작년까지 같이 밥을 먹었던 학생은 졸업은 했지만 국가고시를 통과하지 못 했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국시보기 전에 밥이라고 한끼 사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신입생은 수능끝나고 나서 형이랑 인도여행 다녀온 게 제일 좋았다고 하고

누구는 작년 겨울 한달동안 보드만 타고 논 게 좋았다 하고

또 누구는 작년에 나랑 같이 밥먹은게 제일 좋았던 기억이라 한다.

허거덕, 얘는 공부에 치여서 진짜 힘들게 사나 보다.

 

요즘 아이들이 4.19와 5.18을 헷갈려 한다길래 사실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하나는 4.19가 광주항쟁인 것 같다고 말끝을 흐리고

다른 애는 자신있게 4.19가 광주항쟁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애는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든다.

 

학교에선 현대사를 잘 안배우는데다가 이과생들은 고등학교때 아예 국사를 배우지 않는다나.

참으로 놀랍고 기가막힌 일이로세.

 

그래도 선생이랍시고

힘들어도 공부열심히 해라, 운동도 좀 해가면서 스트레스도 좀 풀면서 공부해라, 등등

당부하면서 내 대학생활을 떠올린다.

합격하고 무슨 서류받으러 가던 날 교문앞에서 집회가 있었고

신입생한테 주는 글 인가 하는 것 받아들고

아, 내가 정말 대학생이 되는구나 싶었던 기억.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던 교정에 들어서면서

강의실로 향하던 무거운 발걸음.

6월 항쟁, 87년 대선......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겐 몸서리가 쳐지던 시대의 어둠이

아이들에겐 헷갈리는 숫자들 중의 하나라니.

대한민국 수능성적 1%안에 드는 이 아이들도

모르는 숫자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밤엔 의대풍물패 공연 뒷풀이에 갔었다.

작년에 못 갔더니 올해는 3장이나 되는 편지에 빽빽하게 보고싶다는 글들을 써서 보냈더라.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일년에 한 번 얼굴보는 건데 그리도 좋아하니 좀 미안하더라.

 

한편 얘네들 선배들은 성적이 나빠서 좀 걱정을 했는데

회장이 하는 말이 요새는 한마당 애들이 본과 1학년에서 1,3등을 한다고

이젠 공부도 잘한다고 걱정마시라 한다.

옆에서 예과 2학년 아이들이 공연연습하느라 의학통계학 중간고사성적이 엉망이라고

선처를 바란다는 읍소를 하자

회장이 단호하게 "제가 챙겨서 공부시키겠습니다"한다.

멋진 놈이야, 이 녀석 예과 2학년에 의학통계학 수업시간에 소설책 읽다가 나한테 들킨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풍물을 치다보면 무아지경에 이른다는,

즐거운 열정으로 가득찬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살아오면서 그런 열정을 가져보았는가 기억을 더듬어본다. 

 

열정은 있었으되 즐거움은 느낄 수 없었던 시대가 참 길게도 느껴졌었는데

이젠 잘 기억도 안 나는구나.

 

근데 얘네들은 왜 이렇게 귀엽게 구는 거야.

종강파티때도 오세요, 교수님 환송회도 해야 해요.....

저녁에 회식이라면 딱 질색인 뻐꾸기,

까딱하면 그래, 그러자 할 뻔 했다.

 

아주 아주 길고 힘든 하루였는데 애들이 이렇게 엄청 사랑해주니 피로가 싸악 가시더라.

그/러/나 오늘 늦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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