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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학교에서

  오랜만에 토요일에 학교에 나왔다.

토요일마다 산에 가려고 했는데 이번 주는 학생들하고 약속이 생겼다. 예방의학회에서 예비연구자 논문공모라는 것을 하는데 작년에 내가 지도했던 조사연구실습조가 논문을 내는 걸 도와 주기로 한 것이다. 이제 본과2학년이라 격주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교수보다 더 바쁘다는 학생들인지라 토요일밖에 시간이 없단다. 나도 모처럼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서 미루고 미룬 논문작업을 할 겸 정한 일정이다.   



기말고사 때 2층 강의실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나오다가 발견한 한 장의 공고문에는 기초의학교실 공동명의로 겨울방학동안 각 교실 연구에 참여할 연구생을 모집한다고 쓰여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소 학과공부에 흥미도 없고 억지로 학교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시절인데 그런 걸 하고 싶어했다는 게 신기하다. 

 

아마도 예과 때 의대 학술지에 실린 학생논문을 보면서 좋아보였던 게 작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때까지 친했던 친구들을 더 이상 캠퍼스에서 만날 수 없게 되어 혼자서 지내기 심심해서 그랬는 지도 모른다. 복학하자 마자 의료사회학 세미나를 같이 하자고 꼬셔서 몇 번 만났던, 숨막히는 의대생활에서 그래도 좀 말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신선생님하고 좀 친해지고 싶었던 것도 약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그 겨울방학에 매일 출근해서 교실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학교보건실태조사준비를 위해 관련 논문을 찾고 읽고 정리하고 설문지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 세미나때 인류의 전염성 질환의 감소는 예방접종보다는 영양과 위생상태의 개선에 기인한다는, 이제는 고전중의 고전이 된 저널을 읽고 발표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자료를 읽고 정리하고 설문지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칭찬을 먹고 자라는 뻐꾸기인데 잘했다는 말 한 마디 없는 신선생님이 좀 서운하기는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어느 자리에서인가 그 때 그 설문지가 매우 잘 되었다는 칭찬을 받긴 했다. ㅋ.

 

그 때 장학금 명목으로 두 달동안 20만원을 받았지. 그걸로 뭐했더라....  학교보건 논문이 출판되고 맨 뒤에 적힌 내 이름을 보았을 때 그 뿌듯한 기분이란!  말썽꾸러기 세째 딸이 우여곡절끝에 복학해서 늘 걱정이었던 엄마 아빠도 좋아하셨다.  지금 직장에 지원하면서 자기소개서에도 그 이야기를 썼고, 최근 5년 연구업적만 내라는 데 굳이 그 논문도 제출했을 정도로 나한텐 중요한 경험이었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한테도 그런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어제 통합과목 시험을 보고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나서도 졸린 눈으로 학교에 나온 아이들을 보니까 참 이쁘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그 논문 완성해서 넘겨야지. 내가 늦어져서 다른 논문도 지장이 있으니 부담이 되기도 하고, 옆에서 빤히 지켜보는 카이로스 보기 민망해서 안되겠다. 하나 하나 숙제를 하면서 살아야겠는데 힘조절이 잘 안된다. 변명을 하자면 자꾸 무엇엔가 걸려서 넘어지게 된다(예를 들면 몽골 다녀와서 목이 아파서 한달정도는 컴 작업을 진득하게 할 수가 없었다.) 또 하루 하루 현장에서 부딪히는 일이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논문이 주는 즐거움보다 큰가 보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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