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여자가 더 아프다('상식'을 연구하는 이유)

  오늘은 자리에 앉아서 가을 산업의학회에 발표할 초록을 만들었다. 제목은 '작업관련 근골격계질환의 젠더 차이'이다. 지난 3월에 자료분석을 끝내놓고 미적거리다가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산업의학회에 빈손으로 가기도 뭣해서 급히 만들어 마감시간을 넘겨 제출했다. 이렇게 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쩝... 수련을 마치고 강호에 나오면서 초치기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오히려 날이 갈수록 선수가 되어 가는 것 같다.

 

  각설하고, 작업관련 근골격계질환이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중반에 한국통신 여성노동자들이 백명이상 집단 산재요양을 한 적이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여성의 육체적 조건이 남성보다 취약하기 때문에, 여성이 증상을 과장해서 보고하기 때문에, 가사노동부담때문에... 등등의 설이 난무했었다.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있는 답은 여성은 남성과 다른 작업조건에 노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다른 노출 이론', different exposure theory), 이를 뒷받침할 만한 연구결과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여성에게 적대적인 입장들은 더욱 더 근거가 미약하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보다 작업관련 근골격계질환의 3대 위험요인에 있어 더 많이 노출되고 유병률도 더 높다(심지어 남성의 질병처럼 알려진 요통의 유병률도 여성에서 더 높다).

  또 여성은 남성보다 그 예방을 위한 서비스도 덜 받고, 질병이 생긴 후에 의학적 관리 역시 덜 받는다.  

  웃긴 것은 유병률, 위험요인, 예방 서비스, 의학적 관리 모든 영역에서 젠더차이의 p 값이 0.00 이라는 것(즉 아주아주 차이가 많이 난다 이런 뜻). 이런 통계는 처음 내 보았다.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이 연구를 왜 했나부터 연구방법론상의 오류는 없었는가까지. 그런 결과는 일단 의심을 해보아야 한다는 당대의 역학자 홍실이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상식'을 굳이 연구까지 해서 발표한다는 것이 필요할 일일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위해서, 좀 더 심오해보이기 위해서 한걸음 나아가  성 중립적 모델과 성 감수성 모델을 이용한 다변량 분석결과를 비교해서 넣었다. 쉽게 말하면 그냥 통계를 돌린 것과 젠더에 따라 각각 돌린 것을 비교하는 거다 (이런 방법은 결과적으로 외국의 학자가 분석한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지만, 그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는 여성건강노동 세미나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감사한다.) 

 

 나의 결론은 작업관련 근골격계질환의 효과적인 예방 관리를 위해서, 건강 형평성을 위해서 젠더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상식'을 연구한 것일까?

아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런 종류의 연구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할 것인가?

그건 좀 더 고민해보아야 할 과제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