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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6일 (월)

 

2005년 9월 26일 (월) 겁나게 좋은 날씨


추석 때 온 고뿔이 여전히 있다.

몸에 힘이 없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엄마가 집에 안 쓰는 옥매트가 있다며 가져가라고 해서 숙소에 갖다 났다.

옥매트를 깔고 솜이불을 덮고 자는데 조금 있으면 후덥찌근 한 것이 견디기가 힘들다.

이불을 걷어차고 잠시 지나면 다시 몸이 서늘해진다. 그래서인지 밤새도록 선잠이다.

 

누워있는 것에 지쳐서 눈이 떠졌다.

아침 7시다. 속옷은 땀으로 축축한데, 갈아입기가 곤란하다.

코끝으로 찬 기운이 느껴져서 차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기를 한 시간. 큰맘 먹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속옷을 갈아입었다.

혼자 있으면서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서러운 가를.....

밥을 하고, 차마 먹히지 않는 밥을 입속으로 우겨넣는다.

더 이상 서럽지 않기 위해.....


고한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사우나에 갔다.

얼마 전 손님이 와서 몇 번이나 사우나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났거나, 수도가 고장이 났거나 하는 이유로 못 갔다.

사전에 알아본바 골프장에 있는 사우나가 좋다고 해서,

숙소에서 나와 골프장 길로 들어섰다.

 

차를 타고 갈 생각도 했었지만 땀도 뺄 겸 걸어가기로 했다.

여러 번 다녔던 길이라 30분이면 넉넉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조금 걸으니 숨이 탁탁 막혀왔다. 거듭 쉬기를 반복한 끝에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옷이 땀에 다 젖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후즐근한 모습으로 사우나를 찾는데, 실수 연발이다.

언제 호텔 사우나를 가봤어야지?

지하에 있겠거니 하고 갔더니 식당 밖에 없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와서 프론트에 가서 “사우나가 어디예요?” 하고 물으니,

남자 직원 눈이 동그랭져서 되묻는다.

 

“나훈아요?”

 

빌어먹을! 내 치아가 아무리 부정교합이라고 하더라도 사우나와 나훈아는 심하잖아!


드디어 사우나를 찾았다.

그런데 프론트에 사람이 없다. 왔다갔다를 한 십 분 했나.

아저씨 한 분이 와서 왜 그러냐고 묻는다. 프론트에 사람이 없다 했더니, 1층 프론트에서 요금을 내고 키를 받아와야 한단다. 다시 1층으로 올라가서 칠천 원을 내고 키를 받아왔다.

처음부터 똑바로 알려줄 것이지 사람 아픈데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곡절 끝에 들어간 사우나는 내가 다녀본 목간 중에서 젤로 좋았다.

습식과 건식 사우나도 훌륭했고, 나무의자와 나무로 만든 물통은 예술이었다.

역시 호텔 목간이 다르긴 달랐다.

칠천 원이란 요금이 비싸긴 했지만 우트하겠는가. 지역주민은 사천 원이란다(나도 지역주민이라고 했더니 신분증을 보잔다. 신분증에는 서울로 되어 있다고 했더니, 남자 직원 딱 잘라 안 된다고 하더만)


아담한 크기의 사우나에 손님은 달랑 나 혼자 뿐이었다.

느긋하게 반신욕을 하고 잠시 눈을 붙일 생각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니 호텔 목간이라 그런가. 누워 있을 만한 곳이 전혀 없다.

그래도 본전은 뽑을 생각으로 감은 머리 다시 감고, 씻은 얼굴 다시 씻었다.


내려오는 길, 멀리 겹겹이 둘러싼 산 능성이 보인다. 계단식 논처럼 깍아 만든 골프 코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햇빛은 비추지만 따갑지는 않고, 적당히 부는 바람에 파란 필드에는 아줌씨 네 명이

퍼터를 쥐고 구멍을 노리고 있다.

월요일 아침 이유야 어쨌든 간에 사우나 하고 나온 이 몸이나 필드에서 운동을 즐기는 당신들이나 모두 상팔자 중에 상팔자다.


서러운 것이 싫어 며칠 째 똑같은 반찬일망정 점심을 먹었다.

속옷 몇 개를 빨아서 베란다에 내다 걸었다.

 

아! 햇볕이 몸서리 쳐지게 좋다.


집에 있으면 또 잠이나 퍼질러 잘 것 같아. 카메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사북으로 갔다. 사북역에서 이것저것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경찰이 뭐하냐고 묻는다. 비디오 찍는다고 했더니 “참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네요.”한다.

대꾸한답시고 “아저씨, 딱지 끊고 있어요.” 했더니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가버린다.


사북 다음에 고한이 나오는데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걸린다. 걸어서도 한 시간이면 넉넉한 길을 실제로 걸으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주변이 온통 도로공사중이라 공사용 덤프트럭이 좁은 길을 다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카지노에 오는 차량들이 많아서 걸어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일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꼬부라진 길을 만나면 앞뒤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보고 재빨리 뛰어서 지나가야 한다. 관광버스라도 만나면 크락션을 마구 눌려댄다.


고한 초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물냉면을 같이 먹고 숙소까지 차를 얻어 타고 왔다.

사실 촬영할 것이 남아 있었지만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지 싶었다.


몸이 나아지면 내일은 증산까지 가볼 생각이다.

도로공사 하는 것을 촬영할 계획이다.


어느 영화였더라? 박중훈이 한 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밥들 다 먹었으면 이제 슬슬 전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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