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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빛공부방과 나

* 공부방에서 짧은 글을 부탁해서 쓴 글입니다.

 

 

흑빛공부방과 나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가며 심심치 않게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성경 구절이 쓰인 액자를 자주 본다. 아마도 돈을 많이 벌어 부자 되라는 마음이 담긴 아주 경제적인 선물이지 싶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불가에는 ‘옷깃만 스쳐도 삼천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찰나의 반대개념인 이 ‘겁’은 아주 긴 시간을 뜻한다. 고운 비단으로 에베레스트 산맥을 닳아 없애는 시간이 ‘1겁’이다. 생각해보면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이 1겁이다. 오며가며 옷깃을 스치는 사람이 그 얼만데, 스침의 인연이 고운 비단으로 3천 번이나 에베레스트 산맥을 닳아 없애는 시간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니......

     2004년 가을 <먼지, 사북을 묻다>라는 사북항쟁에 관한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미영 씨의 전화를 받았다. 미영 씨는 고한에 있는 흑빛공부방에서 영화캠프를 하는데 참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하고 대답했다. 미영 씨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이유 외에, 내가 정선 출신이라는 것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2005년 1월 나는 네 번째 맞는 영화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고한으로 향했다. 고등학교까지 정선에서 살았지만 고한을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한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정선군에 포함되지만 정선 읍내에 살던 나에게 고한은 아주 먼 곳이었다. 중학교 시절 엄마의 심부름으로 증산에 갔었다. 그때는 읍내를 벗어나면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진동마사지를 하는 버스를 타고 새재(?)를 넘을 때쯤이면 나는 꼭 멀미를 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증산에 도착하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증산역에서 팔던 가락국수가 바로 그것이다.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던 증산역 가락국수,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 맛은 잊지 못한다.(정말이지 그립다!!!)

     흑빛공부방은 고한성당 안에 작은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었다. 처음 성당을 찾았을 때는 조금 어색했다. 바쁜 사람들 틈에서 할 일 없이 가만히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영화캠프는 조금 춥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환경을 주제로 일주일간 열린 영화캠프는 몇 달 전부터 사전교육도 하고 무척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했다. 아이들은 폐광된 갱내에서 흘러나온 오염된 물로 누렇게 변한 지장천과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고한의 모습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부족한 장비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촬영과 편집을 했고, 공부방 선생님들과 성당의 어머님들은 아이들이 영화캠프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2005년 여름에는 동면 백전리의 폐교된 학교에서 열린 흑빛공부방 생태캠프에 참가했다. 카메라를 들고 캠프 일정을 찍는 것이 내가 할 일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섭섭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마냥 행복했다. 2006년 1월에는 5회 흑빛공부방 영화캠프가 열렸다. 2005년도에 참가한 두 번의 캠프는 역할이 한정된 관계로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캠프 전체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2주간의 캠프는 무사히 잘 끝났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공부방 선생님들과 신부님이 벌써 몇 년 째 이일을 해온 것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혹자는 종교인과 종교적 신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땅과 이 세계에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비상식이 얼마나 많은가. 강원도에서도 오지라고 하는 정선, 정선에서도 골짜기에 속하는 고한에서 신부님과 공부방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맘씨 좋은 친구로,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우선이 되는 시대에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다.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이 작은 인연이 바다만큼 하늘만큼 넓고 푸르게 계속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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