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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터를 마련했다. 작업을 한다는 구실로...

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6/20
    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
    금금
  2. 2007/06/10
    2007/06/10
    금금
  3. 2006/03/04
    흑빛공부방과 나(1)
    금금
  4. 2005/10/07
    2005년 9월 26일 (월)
    금금
  5. 2005/07/14
    2005년 7월 12일(화)
    금금
  6. 2005/06/22
    2005년 6월 21일(화)
    금금
  7. 2005/06/16
    2005년 6월 15일 (수)
    금금
  8. 2005/06/16
    2005년 6월 14일 (화)
    금금
  9. 2005/06/16
    2005년 6월 13일 (월)
    금금

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

이강길 감독의 <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를 흑빛청소년문화센터에서

상영했다.

 

4시에는 초등학생들이, 7시에는 일반 상영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보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예상대로 아이들이 집중하기에는 독립다큐는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은 화장실에도 가고, 친구끼리 이야기하고, 조금은 어수선한

상태로 상영이 끝났다.

 

상영 전에 입구에 갯벌배움터 그레를 후원하는 모금함을 놓아 두었다.

상영이 끝난 후 한 아이가 모금함에 용돈으로 받은 돈, 천 원을 넣었다.

천 원을 갖고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

하드 2개 혹은 아이스크림 1개, 과자 1개나 두개...

 

내가 그 아이 또래였을 때, 장사하는 엄마에게 백 원을 졸랐다.

그때 인기 있었던 쭈쭈바는 한 개에 50원.

나는 백 원을 얻기 위해 엄마의 장사를 방해하는 고난도?의 방법을 썼다.

댓가는 혼이 나거나, 돈을 받아내는 것.

돈을 받을 확률은 열 번이면 두 번 정도.

 

그 아이에게 천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았을까? 

모금함에서는 백 원짜리 동전도 있었다.

 

새만금을 막은 어른들, 갯벌을 죽이고 있는 어른들은

모두가 잘 살기 위해 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우리 모두가 잘 살기 위해서는 산을 허물어서 길을 내야하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어야 하고, 논밭을 메워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얼마나 더 잘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드 2개를 사는 대신 모금함에 돈을 넣은

아이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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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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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빛공부방과 나

* 공부방에서 짧은 글을 부탁해서 쓴 글입니다.

 

 

흑빛공부방과 나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가며 심심치 않게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성경 구절이 쓰인 액자를 자주 본다. 아마도 돈을 많이 벌어 부자 되라는 마음이 담긴 아주 경제적인 선물이지 싶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불가에는 ‘옷깃만 스쳐도 삼천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찰나의 반대개념인 이 ‘겁’은 아주 긴 시간을 뜻한다. 고운 비단으로 에베레스트 산맥을 닳아 없애는 시간이 ‘1겁’이다. 생각해보면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이 1겁이다. 오며가며 옷깃을 스치는 사람이 그 얼만데, 스침의 인연이 고운 비단으로 3천 번이나 에베레스트 산맥을 닳아 없애는 시간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니......

     2004년 가을 <먼지, 사북을 묻다>라는 사북항쟁에 관한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미영 씨의 전화를 받았다. 미영 씨는 고한에 있는 흑빛공부방에서 영화캠프를 하는데 참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하고 대답했다. 미영 씨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이유 외에, 내가 정선 출신이라는 것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2005년 1월 나는 네 번째 맞는 영화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고한으로 향했다. 고등학교까지 정선에서 살았지만 고한을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한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정선군에 포함되지만 정선 읍내에 살던 나에게 고한은 아주 먼 곳이었다. 중학교 시절 엄마의 심부름으로 증산에 갔었다. 그때는 읍내를 벗어나면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진동마사지를 하는 버스를 타고 새재(?)를 넘을 때쯤이면 나는 꼭 멀미를 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증산에 도착하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증산역에서 팔던 가락국수가 바로 그것이다.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던 증산역 가락국수,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 맛은 잊지 못한다.(정말이지 그립다!!!)

     흑빛공부방은 고한성당 안에 작은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었다. 처음 성당을 찾았을 때는 조금 어색했다. 바쁜 사람들 틈에서 할 일 없이 가만히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영화캠프는 조금 춥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환경을 주제로 일주일간 열린 영화캠프는 몇 달 전부터 사전교육도 하고 무척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했다. 아이들은 폐광된 갱내에서 흘러나온 오염된 물로 누렇게 변한 지장천과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고한의 모습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부족한 장비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촬영과 편집을 했고, 공부방 선생님들과 성당의 어머님들은 아이들이 영화캠프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2005년 여름에는 동면 백전리의 폐교된 학교에서 열린 흑빛공부방 생태캠프에 참가했다. 카메라를 들고 캠프 일정을 찍는 것이 내가 할 일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섭섭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마냥 행복했다. 2006년 1월에는 5회 흑빛공부방 영화캠프가 열렸다. 2005년도에 참가한 두 번의 캠프는 역할이 한정된 관계로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캠프 전체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2주간의 캠프는 무사히 잘 끝났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공부방 선생님들과 신부님이 벌써 몇 년 째 이일을 해온 것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혹자는 종교인과 종교적 신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땅과 이 세계에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비상식이 얼마나 많은가. 강원도에서도 오지라고 하는 정선, 정선에서도 골짜기에 속하는 고한에서 신부님과 공부방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맘씨 좋은 친구로,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우선이 되는 시대에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다.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이 작은 인연이 바다만큼 하늘만큼 넓고 푸르게 계속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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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6일 (월)

 

2005년 9월 26일 (월) 겁나게 좋은 날씨


추석 때 온 고뿔이 여전히 있다.

몸에 힘이 없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엄마가 집에 안 쓰는 옥매트가 있다며 가져가라고 해서 숙소에 갖다 났다.

옥매트를 깔고 솜이불을 덮고 자는데 조금 있으면 후덥찌근 한 것이 견디기가 힘들다.

이불을 걷어차고 잠시 지나면 다시 몸이 서늘해진다. 그래서인지 밤새도록 선잠이다.

 

누워있는 것에 지쳐서 눈이 떠졌다.

아침 7시다. 속옷은 땀으로 축축한데, 갈아입기가 곤란하다.

코끝으로 찬 기운이 느껴져서 차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기를 한 시간. 큰맘 먹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속옷을 갈아입었다.

혼자 있으면서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서러운 가를.....

밥을 하고, 차마 먹히지 않는 밥을 입속으로 우겨넣는다.

더 이상 서럽지 않기 위해.....


고한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사우나에 갔다.

얼마 전 손님이 와서 몇 번이나 사우나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났거나, 수도가 고장이 났거나 하는 이유로 못 갔다.

사전에 알아본바 골프장에 있는 사우나가 좋다고 해서,

숙소에서 나와 골프장 길로 들어섰다.

 

차를 타고 갈 생각도 했었지만 땀도 뺄 겸 걸어가기로 했다.

여러 번 다녔던 길이라 30분이면 넉넉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조금 걸으니 숨이 탁탁 막혀왔다. 거듭 쉬기를 반복한 끝에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옷이 땀에 다 젖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후즐근한 모습으로 사우나를 찾는데, 실수 연발이다.

언제 호텔 사우나를 가봤어야지?

지하에 있겠거니 하고 갔더니 식당 밖에 없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와서 프론트에 가서 “사우나가 어디예요?” 하고 물으니,

남자 직원 눈이 동그랭져서 되묻는다.

 

“나훈아요?”

 

빌어먹을! 내 치아가 아무리 부정교합이라고 하더라도 사우나와 나훈아는 심하잖아!


드디어 사우나를 찾았다.

그런데 프론트에 사람이 없다. 왔다갔다를 한 십 분 했나.

아저씨 한 분이 와서 왜 그러냐고 묻는다. 프론트에 사람이 없다 했더니, 1층 프론트에서 요금을 내고 키를 받아와야 한단다. 다시 1층으로 올라가서 칠천 원을 내고 키를 받아왔다.

처음부터 똑바로 알려줄 것이지 사람 아픈데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곡절 끝에 들어간 사우나는 내가 다녀본 목간 중에서 젤로 좋았다.

습식과 건식 사우나도 훌륭했고, 나무의자와 나무로 만든 물통은 예술이었다.

역시 호텔 목간이 다르긴 달랐다.

칠천 원이란 요금이 비싸긴 했지만 우트하겠는가. 지역주민은 사천 원이란다(나도 지역주민이라고 했더니 신분증을 보잔다. 신분증에는 서울로 되어 있다고 했더니, 남자 직원 딱 잘라 안 된다고 하더만)


아담한 크기의 사우나에 손님은 달랑 나 혼자 뿐이었다.

느긋하게 반신욕을 하고 잠시 눈을 붙일 생각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니 호텔 목간이라 그런가. 누워 있을 만한 곳이 전혀 없다.

그래도 본전은 뽑을 생각으로 감은 머리 다시 감고, 씻은 얼굴 다시 씻었다.


내려오는 길, 멀리 겹겹이 둘러싼 산 능성이 보인다. 계단식 논처럼 깍아 만든 골프 코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햇빛은 비추지만 따갑지는 않고, 적당히 부는 바람에 파란 필드에는 아줌씨 네 명이

퍼터를 쥐고 구멍을 노리고 있다.

월요일 아침 이유야 어쨌든 간에 사우나 하고 나온 이 몸이나 필드에서 운동을 즐기는 당신들이나 모두 상팔자 중에 상팔자다.


서러운 것이 싫어 며칠 째 똑같은 반찬일망정 점심을 먹었다.

속옷 몇 개를 빨아서 베란다에 내다 걸었다.

 

아! 햇볕이 몸서리 쳐지게 좋다.


집에 있으면 또 잠이나 퍼질러 잘 것 같아. 카메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사북으로 갔다. 사북역에서 이것저것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경찰이 뭐하냐고 묻는다. 비디오 찍는다고 했더니 “참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네요.”한다.

대꾸한답시고 “아저씨, 딱지 끊고 있어요.” 했더니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가버린다.


사북 다음에 고한이 나오는데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걸린다. 걸어서도 한 시간이면 넉넉한 길을 실제로 걸으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주변이 온통 도로공사중이라 공사용 덤프트럭이 좁은 길을 다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카지노에 오는 차량들이 많아서 걸어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일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꼬부라진 길을 만나면 앞뒤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보고 재빨리 뛰어서 지나가야 한다. 관광버스라도 만나면 크락션을 마구 눌려댄다.


고한 초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물냉면을 같이 먹고 숙소까지 차를 얻어 타고 왔다.

사실 촬영할 것이 남아 있었지만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지 싶었다.


몸이 나아지면 내일은 증산까지 가볼 생각이다.

도로공사 하는 것을 촬영할 계획이다.


어느 영화였더라? 박중훈이 한 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밥들 다 먹었으면 이제 슬슬 전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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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2일(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예전에는 삼척탄좌의 직원 아파트였다. 6층 높이에 주공아파트가 8개동이 서있다. 산등성이 비탈진 곳에도 집을 지을 만큼 이곳 고한에서 집을 구하기란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떠나고 낡고 허름하게 변해지만, 이곳은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최고의 주거공간이었다.

방이 두 개에 거실과 화장실을 갖춘 이곳은 생활하기에 아무 불편이 없다. 다만 비가 오면 방에 물이 샌다. 3층인데....

지난 주말 서울에 다녀오니 비어있는 방이 연못으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거실까지는 물이 넘치지 않았다. 주말 내내 걱정이 많았다. 물이 새지 않는 방 하나도 벽에 물이 스며들고 있다.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이곳의 생활은 익숙한 것에 대한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수에 샤워를 하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찬물에 씻는 다는 것이 처음에는 고역이었다.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 씻는 것이다. 송환에 보면 김선명 선생님이 씻는 장면이 나온다. 물을 조금씩 뿌려가면서....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감옥살이에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겨울에 하는 냉수마찰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였다. 아주 적은 물을 받아서 수건에 물을 적신 다음, 계속 몸을 닦으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내가 씻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먼저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세수를 하면서 팔에 물을 묻힌다. 그리고 중요 부분을 씻고 발을 씻으면서 허벅지까지 물을 묻힌다. 그리고 다시 가슴에 물을 조금씩 뿌리면서 웃통을 씻고, 마지막으로 물을 온몸에 붓는다. 처음 머리를 감을 때가 제일 힘들지만, 40분 정도 걸리는 씻는 과정은 맨 마지막 온몸에 물을 붓는 데서 보상을 받는다. 뼛속 깊이 전해지는 상쾌함과 청량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분이 좋다.


냉장고를 언제부터 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였을 거다.

해발이 높은 이곳은 덥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있는 숙소는 습기가 많다. 자주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반찬 몇 가지가 있는데, 냉장고가 없다 보니 쉬이 상하는 반찬이 있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것은 간장에 넣어둔 마늘과 마늘 짱아지, 그리고 또 간장에 담근 고추가 있다. 종종 김과 계란을 사서 반찬을 하지만 두 끼 정도 먹을 양만 산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먹다 보니 그냥 물도 괜찮다. 처음에는 상희가 냉장고가 없는 것을 걱정했었다. 그러나 지내보니 처음에 조금 불편할 뿐이지 지금은 아무 불편이 없다.


우리는 주변에서 사용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돈을 주고 우리는 소위 생활에 편리한 것들을 산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불행하다.

편리한 삶이 행복한 삶일까. 돈이 많은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주 많이 행복할까.

욕심 없이 행복할 수 있는 돈은 어는 정도일까.


처형과 상희가 드디어 책을 냈다.

아주 많이는 아니고 조금만, 상희가 돈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 정도는 팔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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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1일(화)

마음이 급해서인가, 시간은 가는데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풍경을 찍을 겸해서 만항재라는 고개를 찾았다.

 

고한에서 영월 방향으로 가다보면 말 그대로 구불구불한 길을 만나게 된다. 만항재를 가기위해 정암사를 지나 조금 가면 같은 이름의 만항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열 가구나 될까? 길가에는 외지사람들을 상대로하는 듯한 식당이 몇 개 있다. 이곳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가 싶지만, 차가 늘어만 만큼 사람들은 어디든지 가지 싶다.

 

 만항에서 차를 몰아 얼마쯤 가면 만항재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정상에는 조그만 가게가 있는데 이곳에서 맛있는 냄새가 살살 풍겨져 온다. 감자전을 굽는 냄새다. 감자를 유독 싫어하는 입성을 가졌지만 이상하게 감자전은 입에 착착 감긴다. 먹거리의 유혹을 참아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의 맛난 먹거리의 유혹을 그 누구 참을 수 있단 말인가?

 

1인분에 5천원인 감자전을 시켰다. 두 손을 합친 크기 만한 감자전이 두 장 나왔다. 옆에서는 부부인 듯한 남녀가 감자전과 묵을 먹으면서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고 있었다. 막걸리를 남기고 가려 하기에 한 잔 얻어먹고 싶었지만... 차마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한에 내려온 지 2주가 지났다. 그동안 동생과 아내가 다녀갔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외롭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혼자라는 것이 참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아직은 사람들과의 친분도 없고 겉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점차 나아질거라 믿는다.

 

오늘은 공추위라는 단체에 가서 여러 얘기를 듣고 왔다. 감사 직책을 갖고 있는 분이 방송국이나 프러덕션에서 영상물을 만들자고 여러 번 왔었다고, 소재를 잘 잡아야 할거라고 충고를 했다. 영상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지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송물이 많아서일까?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문제는 있지만 대안의 빈곤을 느낀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 모든 것의 가치기준이 되는 것에 대해 아니다 라고 나는 얘기할 수 있을까?

 

언제나 가난했던 사람들에게 욕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지 않을까?

 

경제적 자립이 없는 지방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가?

 

수 십 년 탄광촌으로서의 보상이 카지노라면 그 카지노는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나?

 

카지노는 이곳 사람들의 희망일 수 있는가? 아니라면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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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5일 (수)

핸드폰이 울렸다. 아침 8시 30분! 서울에서는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이다. 수도 공사 때문에 오신 분이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단다. 이런! 간단하다고 한 공사가 오후 2시에야 겨우 끝이 났다. 벽에 구멍을 내고 수도관을 직접 연결하는 대공사(?)였다.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일을 거들었지만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젯밤 오줌이 급해서 물을 내릴 수 없는 변기에 볼일을 봤다. 생각보다 냄새가 심하게 났다. 공사하러 오신 분이 변기에 수도관을 연결하느라 힘들게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미안한 마음에 담배 2갑을 사드렸다. 점심도...

 

공사가 끝나서 청소를 시작했다. 벽을 뚫어서 거실 바닥에 먼지가 그득했다. 쓸고, 닦고, 또 쓸고, 닦고... 싱크대를 제자리에 놓고, 물을 틀었다. 시원했다. 그런데 싱크대 아래에서 물이 나왔다. 싱크대 아래 문을 열어 보니 물이 빠지는 관이 빠져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물이 나오니 살 것 같았다.

 

짐을 풀었다. 쌀을 씻고, 밥을 했다. 준비해간 반찬 몇 가지를 놓고 밥을 먹었다.

'걸인의 찬, 황후의 밥상'(?)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적혀 있던 구절이 생각났다.

 

서울 생활은 늦은 기상에 밥을 거르기 일쑤였는데, 이곳에서는 밥 때를 챙기게 된다. 외로워서 그런가...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책을 읽게 된다. 불편하진 않다. 오히려 더 좋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온 건지, 신선놀음을 하러 온 건지...

 

푸른영상 사람들한테 쬐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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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4일 (화)

7시에 일어나 정암사까지 걸어갔다. 도로는 좁고, 화물차가 많이 다녀 좀 위험했다. 계곡 물은 탁했고, 돌은 누런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암사 근처의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이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40분쯤 걸러 정암사에 도착했다. 기분이 맑고 상쾌했다. 산 중턱에 있는 수마노탑에 올라가 삼배를 하고 잠시 쉬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이상해 살펴보니 윗 부분이 모두 잘려 있었다. 아래에서 수마노탑이 잘 보이기 위해 나무를 자른 것 같았다. 부처는 만물에는 불성이 있다 했는데, 불성을 자르다니... 인간은 편하고 쉬운 것만 찾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청소도 해야하고, 이것저것 정리도 해야 하는데... 제일 불편한 것은 씻지 못하는 거다. 땀이 흘러 몸이 끈적끈적한 것이 영 기분이 안 좋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나는 불편을 느낀다. 예전에 탄광에 살던 광부 가족들은 물을 길러 다니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는데... 내일이나 되야 물이 나올 것 같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방이라 단단히 탈이 난 모양이다. 수도를 화장실로 직접 연결해서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서 쓰기로 했다. 보일러를 고치느라 돈도 들어갔는데, 결국 보일러는 쓸 수 없게 됐다. 액땜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루정도 더 참을까 했지만, 영 찜찜해서 친구 집에 가서 씻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 사람이 물이 없다면 어떻게 살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너무 졸립다.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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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3일 (월)

이제 고한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빈집을 얻게 되어서 좋아했는데, 수도가 문제다. 앞집에 있는 사람이 아래층에 물이 샌다고 수도를 막아버렸다. 벌써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는데 걱정이다. 내 성격이 급한 것일까? 빨리 생활이 안정되어서 촬영을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96년 결혼 이후로 이렇게 혼자서 생활하기는 처음이다. 상희가 씩씩하게 웃으며 보내줬지만, 아마 눈물을 많이 흘릴 것이다. 착한 상희...... 책이 잘 돼야 할텐데. 몸이 끈적거려서 씻으면 좋겠는데......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했는데, 막상 씻지 않고 잠을 잘 생각을 하니 거시기하다. 공사를 해야 할 정도면 차라리 그냥 딴 집을 얻을 생각인데, 푸른영상에는 뭐라고 얘기하지. 에구! 머리 아프다. 3개월 내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자신감이 용솟음 치다가도 어느 순간 푹 꺼져 버린다.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고한과 카지노, 왕년의 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을까? 고향의 발전에 대해 내가 딴지를 걸 자격이 있을까? <동강은 흐른다>처럼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데... 어찌됐든 최선을 다해야지. 일헌아! 힘내자! 너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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