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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화물노동자 박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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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화물노동자 박종태

 

“편안히 잘 가요. 당신의 동지였음이 부끄럽지 않도록 살겠습니다”

 

천윤미 미디어충청 기자 (moduma@cmedia.or.kr)

 

그를 떠나보내는 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하수진씨는 박종태 열사의 관을 붙잡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는 주말에는 어김없이 대전에 비가 내렸다. 20일, 52일 만에 박종태 열사를 보내는 택배노동자들과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눈물로 그를 떠나보냈다.

20일 오전 9시, 빈소가 차려져 있던 대전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마친 ‘노동열사 고 박종태 전국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대전시 대덕구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 모인 노동자, 시민, 정당 관계자 천 여명은 박종태 지회장을 고 박종태 열사로 만들었다는 자책감과 후회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는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떠나보내는 가족들은 위원회에서 배포한 유인물 속 고 박종태 지회장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흐느꼈다. 마냥 엄마 손을 흔들며 그림을 그리던 두 아이는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유인물 속 아빠의 얼굴을 보며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이름을 부르며 울자 아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고 주저않아 울고 있는 조합원



"택배에 얼마만한 땀이 실려 있는지 알았다면 박종태 동지가 살았을 거 아닙니까"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조사에서 “노동조합 하면서 딴 건 힘든 게 없는데 아이들이랑 자주 못 놀아 주는 게 제일 미안하단 얘기. 팔불출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애기들이 참 겁나게 이쁘단 얘기. 그 아이들을 두고 어찌 가셨습니까. 아빠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다는 그 아이들을 놓고 차마 어찌 가셨습니까”라며 울부짖어 많은 이들을 울렸다.

또 “그동안 가만히 앉아서 택배를 보내고 받으면서 거기에 얼마만한 땀이 실려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920원 생명이 실린 무게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택배비 몇 천원 중에 당신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920원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돈으로 세금내고 기름값 내고 새끼들 키우고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허덕거려야 생존이 유지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박종태 동지가 살았을 거 아닙니까. 그걸 알았다면 그 아까운 사람이 그렇게 죽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며 목 놓아 울었다.

박 지회장의 부인 하수진씨는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준 동지들, 동지들이 보내준 사랑과 의리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이 진정 원했던 세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남편의 죽음은 가슴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마친 ‘노동열사 고 박종태 전국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대전시 대덕구 대한통운 대전지사로 운구를 옮기고 있다 / 사진 이상현 기자


 


운수노조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은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신 분들이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없는 세상,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해 나갈것”을 부탁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소중한 동지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던 못난 사람들, 우리 모두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을 쟁취하자는 소망도 끝까지 싸워 이겨달라는 부탁도 아직 다 이뤄내지 못한 한없이 못날 사람들”이라고 자책했다. 이어 “끝까지 싸워 이겨달라는 동지의 넋이 남은 자의 함성으로, 산 자의 투쟁으로 이어져 이뤄질 수 있도록 해 그때 다시 동지의 영전 앞에 승리를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당신은 이미 나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은 특별한 사람”이라며 “살아생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과 동지를 죽음으로 내몬 간악한 자본과 정권에 맞서 살아있는 자로서 도리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조합원 지도부 헌화 가로막고 책임 묻기도
대한통운 대전지사 “회사방향으로 무대 쌓지 마”


생전 박종태 열사가 마지막으로 부른 민들레처럼을 부르던 민중가수 지민주 씨는 고 박종태 지회장의 영정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지 씨는 “꿈속에서 입관하던 고인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의 의미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히 낮게 웅얼거리던 노래소리가 점차 참가자들의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이날 영결식이 끝난 뒤 참가자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일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도부의 헌화를 막으며 고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에 대한 책임과 대한통운과의 합의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를 항의했다. 조합원들은 “택배노동자들의 투쟁에 지도부가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박종태 열사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총파업이 잘 안된다고 판단해 서둘러 대한통운과 합의를 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박종태 열사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52일 만에 영면에 들어갔다.

그의 주검이 발견된 아카시아 숲을 조합원들이 지나가고 있다/사진 이상현 기자


대한통운 분회, 아니 박종태분회 조합원들의 차량이 운구 행렬을 뒤따르고 있다/사진 이상현 기자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박종태다"/사진 사진 이상현 기자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 1지회장 박종태 열사는 지난 3월16일 대한통운 광주지사의 택배기사 78명이 대한통운을 상대로 건당 배달수수료 30원 인상 약속 이행을 요구하다가 해고되자 복직투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달 3일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는 유서와 함께 대한통운 대전지사 맞은편 야산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한편, 이날 오전 대한통운 대전지사는 영결식 무대가 “회사방향은 안된다”고 말해 주최측과의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와 관련 무대를 준비하던 주최 측 관계자는 “어떻게 끝까지 이럴 수 있느냐”며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를 바랬던 건 무리였냐”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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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16:05 2009/06/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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