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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23
    [브라질 현장]세계화에 맞서는 새로운 해방신학 모색
    노동목사

[브라질 현장]세계화에 맞서는 새로운 해방신학 모색

[브라질 현장]세계화에 맞서는 새로운 해방신학 모색
                                                       21일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 개막 
                                          엄기호(getoutof) 기자

▲ 세계해방신학포럼개막식 장면

ⓒ2005 엄기호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 개막-세계화에 맞선 해방신학의 재정립 시도

1월 21일 10시 브라질 포루투 알레그레에서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World Forum on Theology and Liberation, 이하 포럼)이 '다른 가능한 세상을 위한 신학'(Theology for Another Possible World)을 슬로건으로 개막했다.

포럼은 세계사회포럼의 성공과 성장에 고무되어 지난 2003년 대회 때 세계적으로 저명한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가 주창한 지 2년만에 그 결실을 맺어, 2005년 세계사회포럼 사전 포럼의 형태로 열리게 되었다.


포럼은 교황청 인준 리오 그란드 도 술 가톨릭대학(Pontificia Universidade Catolica do Rio Grande do Sul)에서 브라질교회협의회, 브라질성공회, 라틴아메리카가톨릭수도자연합회 등이 주최하며, 레오나르도 보프, 스리랑카의 티사 발리수리아, 한국의 정현경 등 전 세계에서 300여명의 진보적 신학자들이 모여 해방신학의 과제와 미래를 토론하게 된다.

개막식에서 조직위원회는 포럼은 세계사회포럼의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정신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특히 종교가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거나 정당화의 수단이어서는 안 되며, 억압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제국의 출현에 맞는 해방신학의 재정립을 위한 출발점으로 포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수도자연합은 축하 메시지에서 '우리가 맞서야 할 드래곤은 크지 않으며, 희망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고 역설하며 이런 희망과 해방의 운동들과 함께 하는 해방신학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하였다.

이어 21일 첫날은 각 대륙의 진보적 신학의 상황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먼저 아시아의 진보신학에 대한 보고에서는 한국의 민중신학과 인도의 불가촉천민신학 등 아시아의 진보적 신학은 억압받는 이들의 토착적 신학으로 출발하였다는 특색을 가진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이어 유럽과 아프리카 등의 상황이 보고되었다.

특히 흥미를 끈 것은 미국의 진보신학의 상황에 대한 보고였다. 시카고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드와이트(Dwight Hpkins)는 미국의 신학은 신보수주의 신학, 자유주의신학, 예언자적 신학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부시의 재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신보수주의 신학은 개별적인 신학이라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집단적 운동 형태를 띠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신보수주의 신학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미국은 하느님이 세운 나라라는 것에 대한 확신, 미국은 그저 다른 나라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최선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 미국이 결심한 것은 즉각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확신, 이에 반대하는 것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 뭉쳐 있는 신학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자들이 전혀 자선도 하지 않는 몰인정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신보수주의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가진 문제점은 자선을 하지 않는다거나 자비롭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자선과 자비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나 국가에 대해서 무자비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에 맞선 신학으로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개인의 자유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그것을 신장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자유와 관련하여 미국이 신에 의해 만들어졌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국가라는 미국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보수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에 더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재산권을 개인의 자유에서 핵심적인 자유 중의 하나로 여김으로써 가난과 빈곤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취약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는 미국 진보신학의 미래를 작지만 지구적으로 네트워킹하며 경험과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예언자적 신학에서 찾고 있다.

1월 22일, 포럼의 둘째 날 오전은 현재 세계상황에 대한 점검으로 시작하였다. 포르투갈의 저명한 사회학자 보아벤투라(Voaventura de Sousa Santos)는 기조발제에서 세상은 현실과 기대 사이의 간극으로 존재한다고 규정하였다. 사람들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오늘이라는 현실을 바라보고, 그 현실을 바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현실과 기대는 역전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은 좋지 않으며 내일은 더 나쁘다!(Today is bad, but Tommorrow is worse!)'는 공감을 가지고 있다. 이 속에서 다른 세상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복지국가의 붕괴와 함께 사회적 협약은 개인적 협약으로 바뀌었으며, 사회적 안전망은 붕괴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은 위기에 직면하였다. 민주주의는 이제 선거라는 일종의 정치적 의례로 전락하였고 삶과 유리되었다.

노동조건과 협약에서 국가는 후퇴하였고, 시장에 의해 사회는 파시즘적 상황에 떨어졌다. 국가는 사회적 시민권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지만, 국가는 사회에서의 시민권을 더 이상 방어하지도, 기반하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그는 현재 사회를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파시즘으로 규정하였다.

이어 그는 현재 지구는 단일 문화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으며, 이것에 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가 말하는 단일 문화란 생산성의 문화, 단선적 진화의 문화, 위계화의 문화, 공학적 지식의 문화 등이 지구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세계를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끊임없이 가르고,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을 가르며, 열등하고 비생산적인 것을 침묵하게 한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부재의 영역이 생긴다. 그는 그의 사회학을 부재의 사회학으로 명명하며, 그의 사회학은 새로운 사회적 포용을 위한 인권과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부재된 것의 인권과 민주주의로 새로운 연대와 생태(ecology)의 지구로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은 1월 25일까지 5일간의 일정으로 전개되며 '또 다른 세상을 위한 하느님', '또 다른 세상을 위한 종교',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신학'이라는 세부주제를 가지고 진행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천주교평신도들의 신학연구운동단체인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소장 박영대와 연구위원 엄기호(팍스 로마나 동아시아 담당, 가 참석하고 있다.

"미국 신보수주의신학의 수장은 부시 대통령"
미국의 진보적 신학자 드와이트 인터뷰

▲ 미국의 진보적 신학자 드와이트(Dwight Hpkins)

-지난 미국대선에서 신보수주의 신학이 끼친 영향은 어느 정도였는가?
“당연히 신보수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부시를 지지하였다. 그것도 지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에서 투표에 관한 교육을 하고, 투표를 독려하고 조직하고 현수막을 거는 등 거의 군대와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사실 신보수주의 신학 운동은 거의 군대나 다름없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신학 진영은 ‘모든 사람은 말할 자유가 있다.’고 나이브하게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이에 대처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보다 더 느슨하고, 덜 조직적이다.”

-신보수주의 신학은 신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운동이라고 당신은 이야기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살실 다른 모든 신학처럼 신보수주의 신학에도 뚜렷하게 자기 선을 드러내는 신학자가 있다. 그러나 내가 신보수주의 신학을 어떤 학문적 실천이라고 하기보다는 운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로 신보수주의신학은 많은 신학교와, 신학대학, 그리고 교회를 가로지르면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두 번째로 신보수주의 신학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측면이 아주 강하다.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 신학의 진정한 대표는 신학자가 아니라 부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부시의 취임연설을 들었는가? 전부가 다 하느님과 신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통령 취임식 연설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 신학은 신학이라기보다는 운동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띈다.“

-체계적이지 않은데도 신보수주의신학이 이처럼 대중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크게는 신보수주의신학이 대단히 애국적이라는 점이다. 발제에서도 말한 것처럼 신보수주의 신학은 미국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최선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국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자부심과 자긍심의 고취가 대중들을 열광시킨다. 최선의 국가의 시민이고, 가장 강력한 국가의 국민임을 신보수주의신학은 계속 고취시키고 있으며, 실제 미국인들은 그렇게 느낀다.

따라서 이들은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치와 임무를 신보수주의 신학과 부시가 제대로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신학은 아주 나이브하다. 개인적이며. 물론 자유주의신학이 공헌한 바가 있다. 특히 개인의 자유, 여성과 흑인과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 자유주의 신학은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시스템 자체가 문제시되면 자유주의 신학 역시 신보수주의신학과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이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불린다.“

-북한의 경우에도 탈북자들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교사들이다. 북한에 대한 이런 접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 그들이 하는 일이 그렇다. 미국은 백악관과 언론과 교회와 자본이 일종의 동맹체를 구성하고 있다. 맨 먼저 교회가 나서서 인도주의적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선교에 나선다. 그것이 파견지 국가의 정부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부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비난을 하기 시작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적는다.

언론은 계속해서 북한이 인권탄압국이며, 독재적인 공산주의 국가이며, 그래서 미국에 의해 붕괴되어야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독재적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거나 언론을 탄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북한은 붕괴되어야하고, 절대적 선인 미국식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의 비난과 비판의 요점은 북한이 인권탄압국이고 독재적인 공산주의 국가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선'인 미국의 지시와 모델을 북한이 따르지 않는다는데 있다.“

-한국의 보수적 그리스도교에서는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한 시위에서 미국 국기를 흔든 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이 동그래지며) 한국에서? (그렇다) 오 마이 갓.”

-어떻게 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나?
나는 사실 교회에서 태어나고 교회에서 자랐다. 청년기가 되었을 때 나는 사실 교회를 떠났다. 교회보다는 사회운동이 흑인의 정의를 위해서 더 확실하게 싸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가운데 흑인 신학을 만났고 다시 교회로, 아니 신앙으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흑인신학을 통해서 나는 나의 그리스도인됨과 흑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사회정의라는 세 가지 모두를 다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신학을 예언자적 신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민중 신학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의 민중 신학은 요즘 과거처럼 그렇게 활동적이지 못하다.) 정말인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흑인 신학은 신학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적 교회를 통해서 운동으로 존재하고 있다. 비록 예언자적 교회는 숫자나 규모에서도 아주 적지만 흑인 신학은 교회에 근거하고 교회를 통해서 운동하기 때문에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아주 낙관주의적이다. “

-이런 상황에서 낙관적이라니 놀랍다. 그 근거가 무엇인가?
사실 미국이 미국식의 파시즘적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낙관적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부시와 신보수주의가 파시즘으로 갈 정도로 그렇게 절박하다는 것이다. 절박하지 않다면 왜 파시즘적 체계로 이행하겠는가? 경제며 사회적 안전망이며, 국민적 결속이며 모든 것이 끝장났다.

그러니 더욱 부시와 신보수주의자들은 더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고 절박해지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상황이 기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낙관적일 수 있다. (상황이 기쁘지는 않지만, 낙관적이라니 그것이 당신이 당신의 신학을 예언자적이라고 말하는 아주 상징적인 표현인 것 같다.) (웃으며) 그런가? 그렇다. 모든 사회적 안전망이 붕괴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낙관적일 수 있다. 맞다. 그래서 나는 내 신학을 예언자적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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