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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30
    김훈의 기사
    Yoon Hee
  2. 2009/12/30
    시애틀의 시간
    Yoon Hee
  3. 2009/12/03
    나의 미카엘
    Yoon Hee
  4. 2009/12/02
    2009/12/02
    Yoon Hee
  5. 2009/12/02
    정치경제학 세미나
    Yoon Hee

김훈의 기사

 

 

서울 종로구 인사동 술집골목에는 밤마다 지식인, 예술가, 언론인들이 몰려들 언어의 해방구를 이룬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논하며 비분강개하는 것은 그들의 오랜 술버릇이다. 

그 술집골목 한복판에 '라파엘의 집'이라는 시설이 있었다. 참혹한 운명을 타고난 어린이 20여명이 거기에 수용되어 있었다. 시각.지체.정신의 장애를 한몸으로 모두 감당해야 하는 중복장애 어린이들이다. 술취한 지식인들은 이 '라파엘의 집' 골목을 비틀거리며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전 한닢을 기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파엘의 집'은 전세금을 못 이겨 2년 전에 종로구 평동 뒷골목으로 이사갔다. 

'라파엘의 집' 한달 운영비는 1200만원이다. 착한 마음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 1천원이나 3천원씩 꼬박꼬박 기부금을 내서 이 시설을 16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후원자는 800여명이다. '농부'라는 이름의 2천원도 있다. 바닷가에서 보낸 젓갈도 있고 산골에서 보낸 사골뼈도 있다. 중복장애 어린이들은 교육이나 재활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안아주면 온 얼굴의 표정을 무너뜨리며 웃는다. 

인사동 '라파엘의 집'은 술과 밥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밤마다 이 식당에는 인사동 지식인들이 몰려든다. 

 

김훈 기자 hoonk@hani.co.kr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 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 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 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 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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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시간

 나의 시계는 시애틀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그밖에는 그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천원짜리 귤 다섯개를 사왔고 공정무역거래를 원하는 가게에서

 이름모를 아프리카 나라의 커피를 사왔다. 

 에디오피아. 브라질. 케냐. 

 나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그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해내려고 한다. 

 몸 조심해. 맛있는거 사줄께.

 몸 조심해. 맛있는거 한번 먹자. 

 

 philip 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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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서른 살이고 결혼했다.

나의 남편은 미카엘 고넨박사로 지질학자이며 성품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우리들은 십 년 전 테라 상타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히브리 대학 1학년이었고

그 당시는 아직 히브리 대학의 강의를

테라 상타 대학에서 받을 때였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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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새벽 6시 차가운 공기에 움추린 얼굴 사이로

피로한 두눈들이 그러나 꼿꼿하게 날이 선다.

그 아침의 지하철 플랫폼에서 느끼는 건강함과

규칙성들에 미소를 짓고

청주의 텅빈 광장에서 심호흡을 하고 나면

이렇게 화요일은 지나가는구나.

 

시애틀의 형.

형이 가진 민첩함과 야수같은 시선은

곧 카메라의 움직임이 되고

대상을 향해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때면

그와 함께 지금, 이곳에서 영화를 한다는것이

행복했다.

나는 그것을 진정 행복이라고 쓰곤 한다.

그런 기분은 가을 낙엽의 설레임과도 비슷했는데.

파주에서, 겨울 파주.

 

마지막 통화에서 형은 줄곧 웃기만 했는데

글쎄 난 오로지 원했고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마주앉아 밥을 먹고 그의 실제를 대면하는 것외에는

명백히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운 트리트먼트를 쓰고

그와 함께 현장에 있는것이

오래된 나의 꿈이라면.

 

두근거리는 꿈.

핸드폰 액정화면에 놓여진

형의 사진을 언제까지 지우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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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 세미나

http://nomadist.org/xe/seminar/seminar/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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