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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농장 집 아들

 

변호사가 된 사탕수수농장 집 아들이 있었어. 의원선거에 나갈 만큼 정치적인 야심이 뚜렷한 인간이었지. 마침내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 의원이 될 찰나에 운 나쁘게도 쿠데타가 일어났어. 독재자는 선거를 없던 일로 돌려버렸지. 변호사는 결론을 내리기를, 독재자의 쿠데타에는 인민의 쿠데타! 허접한 총과 사제폭탄을 준비해 1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독재자의 병영을 공격하는 미친 짓을 했지. 태반이 목숨을 잃었는데 억세게도 운 좋은 변호사는 살아서 법정에 끌려가게 되었어. 맙소사. 말 많은 변호사를 법정의 피고로 끌고 간 것이야. 변호사는 당연히 스스로 변론을 했어. 얼마나 장황한 자기변론문이었는지 여기서 일부라도 옮기려고 한다면 내가 미친놈일 것이야. 책 한 권 분량이라니까.

여하튼, "판사 방망이를 두드려. 맘대로 해라. 역사가 나를 사면할 것이다." 카스트로의 자기변론문은 이렇게 끝나. 그런데 코미디이지. 정작 2년 뒤 변호사 피델 카스트로를 사면한 것은 독재자 바티스타였어. 멕시코로 망명을 떠난 변호사는 애초에 뜻을 굽히지 않았어. 법전 대신 총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거지. 그래서 동지와 총을 모아 다시 쿠바로 돌아오는거야.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이 재수 없는 변호사의 무장투쟁을 권력욕의 소산으로 비난해도 좋아.

하지만 말이야. 똥통의 구더기만큼 우글거리는 주둥이로만 정의를 희롱할 줄 아는 변호사 놈들 중에서 그 어떤 놈이 총을 들었겠어? 그 어떤 변호사 놈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 잘난 변호사 간판을 집어던지고 총을 들었겠어? 그 어떤 변호사 놈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목숨을 걸고 지켰겠어? 1/10이나 절반의 정의는 불의일 뿐이야. 하나의 정의가 정의인 것이지.

 

-유재현 '느린 희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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