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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12
    사회주의란 무엇인가?(2)
    만주개장수
  2. 2006/11/05
    무하마드 알리
    만주개장수
  3. 2006/11/04
    비폭력과 혁명(10)
    만주개장수
  4. 2006/11/02
    연대할 자격(2)
    만주개장수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EAN님의 [일관성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에 관련된 글.

EAN님이 추천해주신 '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작은 책은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고 대신 존 몰리뉴의 다른 저작을 찾았는데 바로 제가 찾고자 했던 내용이더군요.

두 권 모두 200페이지도 안되는 아주 얇은 책이지만 상당한 깊이가 있네요.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먼저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라는 책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몇몇 쟁점들에 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것까지는 문제되지 않으나 최소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은 우선과제로 두어야 하지 않느냐, 노동자가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라는 기준에 따라 정통성을 가늠하고 있다.

노선이 다를 뿐 우리의 목표는 어차피 같지 않느냐며 종파주의자라 몰아세우는 사람에게 "당신은 계급이 우선입니까, 민족이 우선입니까?"라고 묻고 싶다.

하지만 민족을 위해 맑시즘을 사용했다고 고백한 호치민을 나는 존경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이 계급과 민족을 동시에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건희가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노동자와 하나로 뭉뚱그려질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지은이는 마르크스주의자를 폴 포트같은 사람과 함께 싸잡아 비난할 수 없도록 세밀하게 가짜 마르크스주의를 걷어내고 있다.

 

사회주의에 관심과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솔직히 정작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그 복잡한 사회주의를 전부 파악하지는 못하겠지만 애타는 갈증을 시원스레 해결한 기분이다.

문답형식으로 하나의 질문에 두 세 페이지 정도의 풀이로 된 구성인데 저자의 거침없는 통쾌한 문체가 마음에 든다.

내공이 있는 분들이야 '뭐 이 정도쯤은 기본상식 아닌가?'하며 우습게 넘기시겠지만 나처럼 학습이 필요한 사람에겐 더없이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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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알리의 동영상

 

오, 이 말이 내 가슴에 그대로 꽂힌다.


나는 금메달을 강가에 던져버렸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한
영광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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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과 혁명

작년인가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정말 훌륭한 책이다. 꽤나 배울 점이 많았다. 여러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주된 요지는 비폭력주의를 실천하자면 많은 어려움과 희생이 뒤따르지만 '폭력에 대항해서 폭력으로 승리했다고 해도, 결국 같은 폭력에 의해 멸망한다. 비폭력주의야 말로 진정한 승리를 가져다 준다.' 혹은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승리가 아니며, 사회의 존재 양태의 비폭력화가 더욱 중요하고, 운동의 방법은 비폭력이어야 한다.'로 보인다.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허나 몇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사회주의가 아닌 비폭력주의를 기반으로 했기에 어찌보면 비폭력주의자로서는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레닌이나 체 게바라마저도 '폭력에 의한 혁명 지도자로서의 영웅이므로 시대에 따라 평가가 바뀔 수 있다'나 '테러를 당하는 쪽의 정치적, 경제적 침략과 같은 폭력이 선행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만 '인민의 해방'이라든가 '혁명'을 위한 테러 역시 폭력행위일 수밖에 없고 테러에 의한 폭력은 새로운 폭력을 불러 일으키며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그러나 테러를 통해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일견 많은 진실을 내포한 말 같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염두에 놓고 보자면 넋 놓고 고개를 끄덕일 수만도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자체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서로 경쟁시키는 (자본가는 링을 만들어 놓고 느긋하게 퍼져 앉아 대단한 자부심과 맥주캔을 양 손에들고 그 경쟁을 여유있게 구경하는) 지극히 구조적인 폭력적 체제이고 일반적으로 군대라는 폭력적인 조직과도 결합해 더 많은 이윤을 생산해 내는, 한마디로 폭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그런 폭력적인 체제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은 오직 혁명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폭력주의자의 입장에서야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일단 비폭력주의가 점점 전파되어 가기 시작하면 지배계급의 마음까지 흔들어 결국 정치적 억압이나 문화적 소외, 실업, 빈곤 등의 구조적 폭력이 해결될거라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겠지만 비폭력주의가 먹힐 가능성이 보이는 한계점은 너그럽게 봐줘도 중간계급까지이다.

 

그렇다면 폭력적이지 않은 혁명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물론 그런 혁명 방법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그게 최선일 것이다.

허나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봐도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 노동자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그들은 소수이고 우리는 대다수라는 점이다.

우리의 혁명은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누르고 이루어 내는 것이라는 그림은 아주 쉽게 그려진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 노동자가 자신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고 영원히 이길 수 없을거라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는데 있다.


일단 혁명이 시작되면 노동자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고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기리라 보지만 폭력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제도권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철저히 거세시켜 버리기에 노동계급의 혁명의 전망이 안개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계급에 대한 자부심과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한 사람 열외없이 단결한다면 고작 한줌밖에 안되는 자본가 계급 쯤이야 단숨에 엎고 노동자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요체는 노동계급의 대오각성이다. 혁명이 폭력적으로 진행될지 아니면 손쉽게 마무리될 지는 얼마나 많은 비율의 노동자가 혁명이라는 축제에 참가하는가에 달려 있다.

노동자 세상을 원한다면 단결하고 투쟁해야 한다.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미래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비폭력주의자의 점잖은 타이름 쯤은 혁명이라는 과제를 앞에 두고 잠시 무시해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어느 쪽이 진리에 가까운지 아직까지는 단정짓지 못하고 있다.

 


엔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노동자 대중정당에서 최근에 당명을 바꾼 이념정당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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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할 자격

자기 전에 양치질 하면서 보려고 TV를 켰는데 BLACK WHITE 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웬 흑인 부부가 술집에 들어갔다.

내부의 손님들은 죄다 백인이었는데 다들 그 부부를 벌레보듯 쳐다봤다.

흑인 여성이 커피를 주문했는데 바텐더는 카드를 달라고 했다.

카드를 남편이 가지고 있는데 남편이 지금 주차장에 있다고 하니 카드를 주기 전까지 커피를 줄 수 없다며 걸인 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그 부부가 술집에 있는 동안 그 여성이 여러사람에게 말을 걸었지만 다들 그다지 말을 받아주기 싫다는 태도였다.

그리곤 밖으로 나와 차에 탔는데 놀랍게도 그 부부는 백인이었고 흑인 분장을 한 것이었다.

단지 피부색과 가발의 차이밖에 없었는데 그 백인 술집에서 그 부부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 프로를 보고나서 입에 거품을 문 채 깊이 생각했다.

내가 직접 다른 존재가 되어보지 않고서 그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혐오감조차 느끼고 있으면서도 실상 나는 과연 그들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나.

직접적으로 차별과 핍박을 받아보지도 않고서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혹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과연 내가 그들과 연대할 자격이나 있는가.

가령 인도에 며칠 여행 갔다와서는 인도에 대해 다 안다는 듯 떠드는 사람이야말로 오히려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오해가 더 많이 쌓인 사람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는 것과 비슷한 경우 아닐까?

그래서 상선약수가 명구인가 보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다투는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도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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