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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31
    사탕수수농장 집 아들
    만주개장수
  2. 2006/10/30
    HASTA LA VICTORIA SIEMPRE!
    만주개장수
  3. 2006/10/30
    아나운서
    만주개장수
  4. 2006/10/30
    레넌과 요코
    만주개장수
  5. 2006/10/29
    만주개장수
  6. 2006/10/27
    만주개장수
  7. 2006/10/25
    분노와 용기
    만주개장수

사탕수수농장 집 아들

 

변호사가 된 사탕수수농장 집 아들이 있었어. 의원선거에 나갈 만큼 정치적인 야심이 뚜렷한 인간이었지. 마침내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 의원이 될 찰나에 운 나쁘게도 쿠데타가 일어났어. 독재자는 선거를 없던 일로 돌려버렸지. 변호사는 결론을 내리기를, 독재자의 쿠데타에는 인민의 쿠데타! 허접한 총과 사제폭탄을 준비해 1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독재자의 병영을 공격하는 미친 짓을 했지. 태반이 목숨을 잃었는데 억세게도 운 좋은 변호사는 살아서 법정에 끌려가게 되었어. 맙소사. 말 많은 변호사를 법정의 피고로 끌고 간 것이야. 변호사는 당연히 스스로 변론을 했어. 얼마나 장황한 자기변론문이었는지 여기서 일부라도 옮기려고 한다면 내가 미친놈일 것이야. 책 한 권 분량이라니까.

여하튼, "판사 방망이를 두드려. 맘대로 해라. 역사가 나를 사면할 것이다." 카스트로의 자기변론문은 이렇게 끝나. 그런데 코미디이지. 정작 2년 뒤 변호사 피델 카스트로를 사면한 것은 독재자 바티스타였어. 멕시코로 망명을 떠난 변호사는 애초에 뜻을 굽히지 않았어. 법전 대신 총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거지. 그래서 동지와 총을 모아 다시 쿠바로 돌아오는거야.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이 재수 없는 변호사의 무장투쟁을 권력욕의 소산으로 비난해도 좋아.

하지만 말이야. 똥통의 구더기만큼 우글거리는 주둥이로만 정의를 희롱할 줄 아는 변호사 놈들 중에서 그 어떤 놈이 총을 들었겠어? 그 어떤 변호사 놈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 잘난 변호사 간판을 집어던지고 총을 들었겠어? 그 어떤 변호사 놈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목숨을 걸고 지켰겠어? 1/10이나 절반의 정의는 불의일 뿐이야. 하나의 정의가 정의인 것이지.

 

-유재현 '느린 희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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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TA LA VICTORIA SIEMPRE!

 

피델,

지금 이 시간 이런저런 상념들이 떠오른다네, 자네를 마리아 안토니아 집에서 처음 만났던 때와 자네가 나에게 자네 그룹에 합류하기를 청했을 때, 그리고 우리의 여정을 준비하는 동안 느꼈던 팽팽한 긴장감에 대해, 우리가 자기의 죽음을 대비해 누구에게 그 소식을 전해야 할지를 미리 말했을 때, 이 가능성은 갑자기 우리 모두에게 현실로 나타났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진실로 현실임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혁명을 할 때-그것이 진정한 혁명이라면-우리가 승리할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말일세. 실제로 수많은 동지들이 혁명에 목숨을 바치지 않았는가.

오늘에는 이 모든 것들이 덜 극적으로 보이네.

우리가 더욱 성숙했기 때문일테지만, 그러나 또한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쿠바 땅에 국한된 쿠바 혁명에서 내 몫을 다했다는 느낌이네. 이제 나는 자네와, 동지들과, 그리고 이제는 나의 것이기도 한 자네의 인민들과 작별하려 하네. 나는 내가 점하고 있는 당의 직책과 장관직과 사령관의 직위, 그리고 쿠바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네.

이제 나와 쿠바를 잇는 어떤 법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네.

오직 공문서 따위로는 파괴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관계만이 나에게 남을 것이네. 내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건대, 나는 지금까지 정직하게 또 한결같이 혁명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다만, 하나 내 잘못이라면 시에라 마에스트라 시절 처음부터 자네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자네의 지도자적 자질과 혁명가적 기질을 좀 더 빨리 이해하지 못한 것이겠지. 나는 경이로운 세월을 살았고, 미사일 위기가 계속되는 최근에까지 자네 곁에서 우리 인민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네. 이런 경우에는 어떤 국가원수도 자네만큼 영민하게 대처할 수 없었을 터. 보고, 사고하고, 위험과 원칙을 형량하는 자네 뒤를 주저 없이 따른 것이 자랑스럽네.

하지만, 지구상의 다른 땅들이 나의 미천한 힘을 요구하는군. 쿠바의 영도자로 남을 자네의 책임이 자네로 하여금 포기하게 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그것을 나는 하려 하네. 이제 우리가 작별할 시간이 온 게지. 내가 기쁨과 고통이 교직 하는 가운데 떠난다는 걸 이해해 주게.

나는 여기에 건설자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희망을, 내가 사랑하는 자들의 가장 사랑하는 부분을 남겨두고 가네. 나를 아들로 받아준 인민의 곁을 떠나네. 내 정신의 한쪽을 남겨두겠네. 새로운 전장에서 자네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을 간직하겠네. 우리 인민의 혁명의식과 내 의무의 가장 고결한 부분을 완수한다는 가슴 떨리는 기쁨을 간직하겠네.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그곳에 이들이 모두 함께할 것이네. 내 아픔을 쉽게 치유하고 위로하는 바는 이것뿐일세.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쿠바에 대한 모든 책임을 벗고, 오직 이상형의 쿠바만을 기억하겠네. 그래서 다른 하늘 아래 내 최후의 시간이 도래한다면, 내 마지막 생각은 쿠바 인민들에게, 특히 자네에게 향할걸세. 자네의 가르침과 자네의 모범에 감사하네. 내 행동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충실하게 간직하려 노력하겠네. 나는 늘 우리 혁명의 대외관계에 집착하곤 했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언제나 쿠바 혁명가의 책임을 완수할 것이며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네. 나는 나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어떤 물질도 남겨주지 않을 터.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네. 왜냐하면, 그들이 먹고, 교육받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줄 것이기 때문일세.

자네에게, 인민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그것도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어찌 말로써 다하겠는가.

종이만 더럽힐 뿐이겠지.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뜨거운 혁명의 열기로 얼싸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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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2003년 10월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고공크레인에서의 투신사건)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의 오프닝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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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넌과 요코

 

1971년 1월 21일 좌파신문 <붉은 두더지>(Red Mole) 편집자 로빈 블랙번과 타리크 알리가 존 레넌과 오노 요코를 인터뷰하다

 

블랙번: 요코씨, 당신 앨범은 아방가르드 현대음악을 록과 결합시킨 것같은데, 그걸 들으면서 든 생각을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은 열차 등 모든 소리를 음악적 패턴으로 통합시키는데, 이건 일상생활에 대한 미학적 척도를 요구하고, 예술이 박물관과 갤러리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요?

 

요코: 맞았어요. 저는 사람들이 억압에 벗어나 뭔가 함께 일할 거리를 갖고 뭔가를 만들어내도록 하고 싶어요. 그들은 자신을 창조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되요. 제 책[자몽]에서 한 거처럼 사람들이 뭔가 하도록 함으로써 사물을 개방적으로 만드는 이유죠. 기본적으로 세상에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요. 창조할 능력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과, 창조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명령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기성체제는 아무 책임도 못지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죠.

 

블랙번: 노동자 통제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데…

 

레넌: 유고슬라비아에서 그런 걸 시도하지 않았나요? 유고인들은 소련으로부터 자유로웠죠. 거기에 가서 자주관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싶어.

 

알리: 물론, 그랬죠. 유고인들은 스탈린주의적 패턴과 결별하려고 노력했죠. 그러나 무제한적 노동자통제를 허용하는 대신에, 강력한 정치적 관료주의를 부가했죠. 그래서 노동자들의 창의력을 질식시키는 경향도 있었고, 지역 간 새로운 불평들을 낳는 시장 메카니즘으로 체제 전체를 규제했죠.

 

레넌: 모든 혁명은 개인숭배로 끝나는 것 같아요. 심지어 중국도 대부를 필요로 한 것 같아요. 저는 쿠바에서도 체와 피델에 대해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해요. 서구식 공산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에 대해 대부와 같은 가상적 이미지를 창조하겠죠.

 

블랙번: 그것 참 괜찮은 생각이네요.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영웅이 된다. 만약 그게 새로운 자위적 환상이 아니라면, 진정한 노동자 권력이 있다면, 그렇겠죠. 만약 자본가나 관료가 당신의 생활을 경영한다면, 환상을 보상할 필요가 있죠.

 

요코: 사람들은 자신을 믿어야 해요.

 

알리: 그게 핵심이죠. 노동자계급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이건 선전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노동자들이 움직여서, 자신들의 공장을 접수하고 자본가들에게 꺼지라고 말해야 하죠. 이건 바로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던 일이죠.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을 느끼기 시작했던 거죠.

 

레넌: 하지만 공산당은 거기에 못 미쳤잖아요?

 

블랙번: 그랬죠. 1천만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는데, 프랑스 공산당은 파리 중심가를 점령한 거대한 시위대를 모든 정부청사와 기관에 대한 대대적 점거로 이끌지 못했고, 드골을 코뮌이나 원래의 소비에트 같은 새로운 민중권력기관으로 대체하지 못했죠. 그랬다면 진정한 혁명이 시작되었겠지만, 프랑스 공산당은 그걸 두려워했죠.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주도력을 발휘하도록 고무하는 대신에 상층에서의 교섭을 선호했던 거죠…

 

레넌: 대단했죠. 하지만 알다시피 거기에도 문제는 있어요. 모든 혁명은 피델이나 맑스, 또는 레닌 같은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에게 파고 들어갈 수 있을 때 일어나죠. 지식인들은 상당한 대중을 한데 모으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억압받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죠. 그들은 아직 각성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자가용과 텔레비전이 대답이라고 믿고 있죠. 당신들이 좌파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말하고, 학생들이 <붉은 두더지>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죠.

 

알리: 맞는 말이예요. 우리는 그런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 더 노력해야죠. 이번에 정부가 도입하려는 노사관계법안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더욱 더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있죠…

 

레넌: 그 법안이 제대로 적용될 것 같진 않아요. 강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거기에 협력하지 않을 거예요. 윌슨정부가 커다란 실망거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히스정부가 더 나쁘죠. 언더그라운드는 박해받고 있고, 흑인 투사들은 지금 자기 집에서 살지도 못하지만, 그들은 남아공에 더 많은 무기를 팔고 있죠. 리처드 네빌이 말한 것처럼, 윌슨과 히스 는 아주 작은 차이 밖에 없지만, 우리는 그 작은 틈 속에서 살고 있죠 ...

 

알리: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노동당은 인종주의적 이민정책을 도입했고, 베트남전을 지지했고, 또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새 법안을 도입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블랙번: 우리가 노동당과 보수당 사이의 작은 틈에서 살고 있는 게 사실일진 몰라도, 그런 한에서 우리는 무력하고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어요. 만약 히스가 그 틈에서 우릴 몰아내면 그는 의도와는 달리 우리에게 중요한 전환을 할 기회를 주는 거죠…

 

레넌: 네, 저도 거기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이렇게 구석에 몰리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억압이 오는지 알아내야 하죠. 저는 희망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모닝스타>(영국공산당 신문)를 계속 구독했지만, 그 신문은 19세기에 있는 것 같아요. 시대에 뒤처진 중년층 자유주의자들이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우리는 젊은 층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되요. 그들은 가장 이상주의적이고 가장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죠. 어쨌든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이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가야 해요. 그러나 어디에서 시작할지 알기 어렵죠. 우리가 가진 모든 건 댐에 갖다 댈 손가락 하나 뿐이죠. 저에게 문제는 제가 점점 현실적으로 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계급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는 거죠. 알다시피 그들이 좋아하는 건 에겔버트 허퍼딩크죠. 지금 우리 음반을 사는 건 학생들이고 그게 문제요. 지금 비틀즈는 네 명의 다른 개인이고, 우리는 함께 했을 때 가졌던 영향력이 없어요…

 

블랙번: 지금 당신은 부르주아 사회의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려고 하고 있고, 그건 아주 더 힘든 일이죠.

 

레넌: 맞아요. 그들은 모든 신문을 소유하고 있고, 모든 배포와 판촉을 통제하죠. 우리가 함께 했을 때 정말로 음반을 낼 수 있던 건 데카, 필립스, EMI 정도였죠. 녹음스튜디오에 도달하기 위해서 전체 관료주의를 통과해야 했어요. 아주 미천한 처지여서, 앨범 전체를 녹음하는 데 12시간 이상을 확보할 수 없었는데, 초반에 우리가 그랬죠. 지금도 똑 같아요. 무명의 예술가가 스튜디오에서 한 시간을 지낼 수 있으면 행운이죠. 그건 계급질서죠, 히트곡이 없으면 다시 녹음할 수 없죠. 그리고 그들이 배포도 통제하죠. 우리는 애플(APPLE)사로 그걸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우리는 패배했어요. 그들은 여전히 모든 걸 통제하지요. EMI는 우리 앨범 <투 버진>을 싫어해서 그걸 죽였죠. 마지막 레코드의 겨우 그들은 레코드에 인쇄된 가사를 검열했죠. *같이 황당하고 위선적인 일이죠. 그들은 내가 노래하도록 해줘야 하지만, 그들은 감히 여러분이 그걸 읽도록 하지는 않았죠. 미친 짓이죠.

 

블랙번: 당신이 지금 더 적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더라도, 아마 영향력은 보다 집중적일 수 있죠.

 

레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먼저 노동자계급 사람들은 섹스에 대한 저의 개방성에 반대했죠. 그들은 누드에 당황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식으로 억압당하고 있어요. 아마 그들은 '폴은 괜찮은 청년이고, 그는 사고치지 않아'라고 생각하겠죠. 또 요코와 제가 결혼했을 때, 끔찍한 인종주의적 편지들을 받았어요. 주로 아들러쇼트에서 사는 군인들한테서 왔죠. 장교들이요. 이제 노동자들이 저희에게 좀더 친근한데, 아마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아요. 저한테 학생들은 지금 형제 노동자들을 각성시키려 할 만큼 반쯤 각성한 것 같아요. 각성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가라앉을 거예요. 그건 학생들이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들이 우회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란 걸 확신시켜 줄 필요가 있는 이유죠. 그리고 물론 자본주의 언론이 빅 페더[(Vic Feather: 1908∼76) 1969∼73년에 노총 'TUC'의 사무총장]와 같은 대변인들의 말만 항상 인용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기 어렵죠. 따라서 유일한 것은 그들에게, 특히 젊은 노동자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죠. 우리는 그들이 체제에 반대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시작해야 해요. 그것이 바로 제가 앨범에서 학교에 대한 말한 이유죠. 저는 사람들이 틀과 단절하고, 학교에서 불복종하고, 혀를 내밀고 권위를 모욕하기를 바래요.

 

요코: 우린 정말로 운이 좋아요. 우리 자신의 현실, 즉 존과 저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 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요.

 

레넌: 우리가 현실과 대면하면 할수록, 비현실이 이 시대의 주요한 프로그램이란 걸 더욱 깨닫게 되죠. 우리가 더욱 현실적으로 되면, 우리는 더 학대당하지만, 그래서 코너에 몰리다 보면 우린 더욱 급진화되죠. 그러나 우리같은 사람들이 더 많으면 더 좋겠죠.

 

요코: 우리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으로, 특히 체제와 하는 방식으로 전통적이어선 안되요. 우리는 새로운 것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말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해야 해요. 그런 종류의 의사소통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을 하지 않으면 환상적인 파워를 가질 수 있죠.

 

블랙번: 의사소통은 운동을 건설함에 있어 중요하지만, 결국 대중적 힘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무력하죠.

 

요코: 베트남에 대해 생각하면 아주 슬퍼져요. 거기에선 폭력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죠. 이 폭력은 수세기 동안 영구화되고 있어요. 커뮤니케이션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현대에 우리는 다른 전통, 매일 창조되는 전통을 창조해야 되요. 지금 5년은 과거의 100년과 같아요. 우리는 역사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죠. 우리가 낡은 패턴을 깨뜨릴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사회는 전례가 없죠.

 

알리: 전역사에서 어떤 지배계급도 자발적으로 권력을 포기한 적이 없고, 저는 그런 변화를 보지 못했어요.

 

요코: 하지만 폭력은 단지 개념적인 것만은 아니죠. 아시겠지만, 저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청년에 관한 프로그램을 봤는데, 그는 허리 아래쪽 몸통이 없어졌죠. 그는 단지 고기 덩어리일 뿐인데,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레넌: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모든 것이 쓰레기였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거죠…

 

요코: 하지만 폭력에 대해 생각해봐요. 그건 우리 아이들한테도 일어날 수 있어요…

 

블랙번: 하지만, 요코, 억압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은 변화가 없는 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권력과 재산을 보호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공격받죠. 북아일랜드의 보그사이드와 폴스 거리의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자신을 권리를 위해 시위했다고 특수경찰에게 무자비하게 공격받았어요. 1969년 8월 어느 날 밤에 7명이 사살 당하고 수 천명이 집에서 쫓겨났죠. 그들에겐 자신을 방어할 권리도 없나요?

 

요코: 그게 바로 그런 상황이 생기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이유죠.

 

레넌: 그렇죠.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할거죠?

 

블랙번: 압제자에 대한 민중의 폭력은 항상 정당해요. 피할 수 없는 일이죠.

 

요코: 하지만 새 음악이 보여주듯이 새로운 의사소통의 채널로 세상은 변화될 수 있어요.

 

레넌: 그래요, 하지만 제가 말했듯이 아무것도 제대로 바뀌지 않았어요.

 

요코: 아니, 무언가 바뀌었고 나은 쪽으로 바뀌었죠. 제가 말하는 모든 건 아마 우리가 폭력없이 혁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이죠.

 

레넌: 하지만 투쟁 없이는 권력을 장악할 수 없어요…

 

알리: 그게 핵심이죠.

 

레넌: 핵심에 다가가면 그들은 민중들이 어떤 권력도 갖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들을 위해 연기하고 춤출 모든 권리를 주겠지만, 실질적 권리는 주지 않죠…

 

요코: 핵심은 혁명 이후에도 사람들이 자신들을 믿지 못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길 거라는 점이죠.

 

레넌: 혁명 뒤에도 상황을 유지하고 모든 상이한 견해를 조정하는 문제가 있어요. 혁명가들이 상이한 해결책은 갖고 그 때문에 상이한 그룹들로 분열하다가 개혁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거죠. 그게 변증법이 아닌가요?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적에 대해 단결해야 하고, 새로운 질서를 공고화해야 해요. 답이 뭔지는 몰라요. 명백히 마오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공을 계속 움직이게 하고 있죠.

 

블랙번: 위험은 일단 혁명국가가 창출되면 새로운 보수적 관료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거죠. 이 위험은 혁명이 제국주의에 의해 고립되고 물질적으로 궁핍하면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레넌: 일단 새로운 권력을 잡으면, 그들은 공장과 철도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현상유지를 수립해야 되죠.

 

블랙번: 그래요. 하지만 억압적 관료주의가 혁명적 민주주의 체제 하의 노동자들보다 반드시 공장이나 철도를 더 잘 돌릴 수 있는 건 아니죠.

 

레넌: 그렇죠. 하지만 우리는 모두 우리 내부에 부르주아적 본능을 갖고 있죠. 우린 모두 피곤해져서 약간 쉴 필요가 있어요. 목표를 성취한 다음 어떻게 계속 모든 것을 유지하면서 혁명적 열정을 지속할 수 있나요? 물론 마오는 중국에서 지속하고 있지만, 마오가 가고 난 다음 어떻게 될까요? 그는 또 개인숭배를 이용하죠. 아마 필요하겠죠. 제가 말한 것처럼 모두가 대부같은 인물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흐루시쵸프 회고록을 읽었는데, 제가 알기에 그는 다소 어린 아이 같지만, 그는 개인을 종교로 만드는 게 나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게 기본적 공산주의 사상의 일부인 것 같지 않아요. 여전히 민중은 민중이고, 그게 어려움이죠. 만약 우리가 영국을 접수하면 우리는 부르주아지를 일소하고 민중을 혁명적 정신상태로 유지하는 일을 해야 되요.

 

블랙번: …영국에서 진정으로 대중들에 의해 통제되고 대중들에게 책임지는 새로운 민중권력을 창출하지 못하면, 여기선 기본적으로 노동자권력인데, 혁명을 할 수 없죠. 오직 진정으로 뿌리깊은 노동자권력만이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할 수 있죠.

 

요코: 그게 젊은 세대가 장악할 때 상황이 달라지는 이유죠. 레넌: 저는 이곳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전진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자유롭게 지방의회를 공격하고 또는 대학의 억압을 파괴한 학생들처럼 학교당국을 파괴하도록 자유를 주어야 되요. 민중들이 더욱 단결해야 하지만, 그건 이미 일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여성들도 아주 중요해요. 여성이 참여하지 않고 해방되지 않는다면 혁명은 없어요. 남성의 우월성에 대해 배우는 방식은 매우 미묘하죠. 요코 덕분에 제 남성성이 어떤 영역에서 떨어져 나가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녀는 열정적인 붉은 해방주의자이고, 비록 제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같을 때에도 제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재빨리 보여주었죠. 바로 그 때문에 저는 항상 급진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는 데 관심이 많은 이유죠.

 

블랙번: 항상 다른 어떤 곳과 마찬가지로 좌파에도 최소한 상당한 남성중심주의가 있었죠. 비록 여성해방의 발전이 그걸 없애는 데 도움을 주지만요.

 

레넌: 그건 말이 안되요.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이란 걸 깨닫지 못하고서 어떻게 민중권력을 얘기할 수 있어요?

 

요코: 어떤 사람과 동등하지 않으면 그들을 사랑할 수 없어요. 많은 여성들이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에 남성에게 매달리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죠. 기본적으로 여성이 남성을 증오하는 이유죠.

 

레넌: 역도 마찬가지죠.

 

요코: 만약 집 주변에 노예가 있다면 어떻게 집 밖에서 혁명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여성들에게 문제는 만약 우리가 자유로우려고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외롭게 된다는 거죠. 아주 많은 여성들이 노예가 되려고 하고 남성들도 대개 그걸 선호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상 '내 남자를 잃지 않을까'하는 위협을 무릅써야 되는 거예요. 아주 슬픈 일이죠.

 

레넌: 물론 절 만나기 전에 요코는 이미 상당히 해방되어 있었죠. 그녀는 남성의 세계에서 싸워나가야 했어죠. 연예계는 완전히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서, 우리가 만났을 때 요코는 혁명적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죠. 거기엔 의문의 여지가 결코 없었죠. 우리는 50:50의 대등한 관계를 가져야 했죠. 그렇지 않았으면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빨리 배우죠. 요코는 그 2년 전에 <노바>지에 여성에 관한 글을 썼는데, 그 글에서 '여성은 이 세계의 깜둥이'라고 말했어요.

 

블랙번: 물론 우리는 모두 제3세계를 착취하는 제국주의 국가에 살고 있고, 심지어 우리 문화도 연관되어 있어요. 비틀즈 음악이 <미국의 소리>에 계속 나오던 때가 있었죠…

 

레넌: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자본가의 로봇이라고 표현했지만, 제 생각에도 그래요…

 

블랙번: 러시아인들은 아주 멍청해서 뭔가 다르다는 걸 보지 못했죠.

 

요코: 사실을 제대로 보자구요. 비틀즈는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20세기의 포크송이었죠. 그 틀 안에서 의사소통을 원한다면 아무것도 못할 거예요.

 

블랙번: <서전트 페퍼>가 발매되었을 때 저는 쿠바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때는 라디오에서 록음악이 막 연주되기 시작하던 때죠.

 

레넌: 그들이 록앤롤이 코카콜라와 똑같지 않다는 걸 이해하길 기대해 보죠. 우리가 꿈을 넘어 가면 이 일은 쉬워져요. 그게 바로 제가 요즘 보다 강한 메시지를 담아서 히피를 흉내내는 10대 소녀의 이미지를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이유죠.

 

블랙번: 당신의 최신 앨범은 시작하기에 매우 간단한 것같지만, 복잡한 앨범의 가사, 템포, 멜로디가 점차 이해하게 되죠. '우리 엄마는 죽었어'라는 트랙은 '세마리 눈먼 쥐'라는 동요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건 어린 시절의 상처에 관한 거죠.

 

레넌: 음조는 그렇죠. 그것은 일본 하이쿠 시조와 같은 종류의 감정이었죠. 저는 최근에 일본의 하이쿠에 빠졌는데, 아주 환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명백히, 정신에서 환상 전체를 빼버리면, 대단한 정확성만 남죠. 요코는 저에게 이런 하이쿠를 오리지널로 보여줬죠. 하이쿠 시조와 롱 펠로의 차이는 엄청나죠. 길고 화려한 시구 대신에 하이쿠는 '나무 탁자 위의 흰 사발에 노란 꽃잎'라는 식이죠. 전체적 그림을 보여주죠. 정말로…

 

알리: 현재 영국에서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존?

 

레넌: 저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처한 정말로 불행한 상태를 인식하도록 하고, 그들을 둘러싼 꿈을 깨뜨림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훌륭한 자유언론의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동차와 TV가 있고 인생에서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죠. 노동자들은 사장들이 군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엿먹는 걸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어요.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의 꿈을 꾸고 있어요. 그건 심지어 자기 자신의 꿈은 아니죠. 노동자들은 흑인과 아일랜드인들이 학대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으며 자신이 다음이라는 걸 깨달아야 해요. 노동자들이 이 모든 걸 깨닫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정말로 뭔가를 시작할 수 있죠. 노동자들이 접수하기 시작할 수 있죠. 맑스가 말한 것처럼,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인 거죠. 저는 그게 영국에서 잘 적용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또 군대에도 침투해야 되요. 왜냐면 군대는 우리 모두를 죽이도록 잘 훈련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억압받는 곳에서 이 모든 걸 시작해야 해요. 저는 자신의 필요가 큰데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거짓이고 천박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기분 좋게 느끼도록 하는 게 아니라, 기분 나쁘도록 느끼고 끊임없이 그들이 생계임금을 얻기 위해 겪는 타락과 비참함을 직접 느끼도록 하는 거죠.

 

 

- 기관지 노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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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용기

                           

..."가장 큰 것에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가장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아내어라!"

휠덜린의 <히페리온>은 이런 구절로 시작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말을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예수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예수는 바로 이 말을 체현하고 살다 간 사람이었다. 예수는 신에 의하여 예정된 대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는 표준적인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느낌을 내가 실감하는 깊이까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처럼 예수를 닮고 싶은 갈망도 없고, 닮을 수 있다는 희망도 없고, 닮으려고 노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예수는 닮아야 할 대상일 수 없고, 다만 경배와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의 독생자'를 어떻게 감히 닮겠는가!

예수를 '추체험'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들은 끝끝내 예수의 삶과 죽음의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날엔가 또 한 사람의 예수가 이 세상에 나타날 때 또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야 말 것이다.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예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종교인들이 얼토당토않은 신학적 허구를 쌓아 올리면서 개소리를 하든 말든, 우리는 힘을 다하여 예수를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예수는 가장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아내었기 때문에 가장 큰 것에도 굴복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예수가 갈망했고 사람들에게 가르친 사랑의 공동체는 원수를 사람하고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공동체, 모든 사람이 천진스런 어린아이가 되는 공동체, 안식일에도 배가 고프면 벼이삭을 베어서 먹을 수 있는, 무수한 계율이나 터부의 그늘에서 벌벌 떨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공동체였다. 거기서는 개인 대 개인의 수준에서, 다시 말하면 '나 개인'에게 가하여지는 악의에 대하여 무한히 관대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구조적, 조직적으로 '나 개인'을 포함한 약자들을 괴롭힐 때, 그것은 예수가 갈구했고 또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아름다운 공동체의 존립을 허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의 삶을 방해하는 힘이 '가장 큰 것'일지라도 예수는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굴복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예수의 그 엄청난 분노와 용기는 바로 그와 상응하는 '작은 것에 대한 기쁨'의 강렬함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분노 없는 사랑이 과연 참된 사랑일 수가 있을까?

예수는 바리새파, 율법학자, 서기관들을 격렬하게 저주했고, 낡고 썩은 비인간적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개탄하고 분노했으며,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성전 지배체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성전 상인들을 격렬하게 몰아냈다.

예수의 '사랑'을 왜소화시켜서 일면적으로만 강조함으로써 달콤한 꿈나라와 같은 이야기를 날조하여 예수가 긍듸 죽음을 통해 가르쳐 준, '가장 큰 것에도 굴복하지 아니하는' 분노를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예수의 사이비 제자들은 예수 바로 그 사람을 닮으려는 노력을 포기함으로써 어느 시대에나 천 년 만 년을 가도 특정 이데올로기의 시녀 노릇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현실의 정치적 관계를 '초월'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인간집단에 있어서 그 어떠한 상황이든 정치적이 아닌 상황이 없는 이상 그들 역시 '정치적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이 하나님의 의사와 일치되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지극히 정치적인 판단이나 생활태도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즉, 신 역시 정치를 초월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가장 정의로운 '정치적 입장'을 신에게 부여해 주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을 공부해서 높은 사회의식을 소유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좋아하지 않고 예쁜 처녀와 함께 노래 부르기를 훨씬 더 좋아하니 신이 불쌍하다.

소박하고 거친 사람들이 신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도 신을 모독하는 일이 아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신에게 부정의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찌무라 간조를 통하여 기독교와 기독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복음서 학습을 통하여 '속류'에 대한 투지와 인간해방의 이상이 심화되어 감을 스스로 느낀다. 우찌무라의 저작이 '백발이 성성하고 갈색테 안경을 쓴 틀이 좋은 노인'의 은은히 울려 오는 음성이 되어 나에게 "양심의 자유를 지킨다는 신앙을 잃지 말도록!"하고 말해 줄 때, 나는 지친 정신에 채찍질을 가하고 다시 용감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나의 주위에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은 결코 그것을 기뻐해 주거나 축복해 주는 법이 없다.

"빛이 어두움에 비추이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어두움은 도대체 누구일까? 나일까? 아니면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일까?

 

 

-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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