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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국가론

최정운, <지식국가론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의 노동통계 발달의 정치적 의미>, 삼성출판사, 1992

 

부제를 보면 알듯이 '지식국가론'이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싸구려 경영 분야 책 같은 느낌을 준다. (나만 그런가?) 1989년 아메리카 시카고대학에서 쓴 정치학 박사 논문을 한글로 번역한 책인데 원 제목은 'The Rise of the Knowledge State: the establishment of labor statistics in Great Britain, France, and the US'다. '지식 국가의 등장: 영국, 프랑스, 아메리카에서 노동통계의 확립'쯤 되는 것이다. 훨씬 낫지 않은가?

 

구체적인 필요성 때문에 앞 부분 조금과 세 나라의 초창기 노동통계 역사 부분만 읽었지만, 끝까지 읽을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읽으려고 정해놓은 책이 너무 많아 언제 이 책을 마저 읽을지는 장담 못하지만, 읽은 부분에서 몇 구절을 적어둔다.

 

통계란 어떤 종류의 데이터를 이떻게 수집할 것인가를 사전에 결정한 조사계획에 근거하여 수집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통계는 피동적 관찰이 아니라 대상물에 대한 계획된 의도적 개입을 통하여 생산되는 지식이다. (72쪽)

 

노동통계는 일견 구체적인 집단에 대한 것 같지만 그 집단의 경계와 내부관계들은 매우 유동적인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그 집단은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다. 노동통계는 집단을 계급적 편견 외에 경제학적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73쪽)

 

공공지식의 타당성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고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주도권에 의하여 창조되고 유지되어 있는 것이다. (74쪽)

 

(영국)

1890년대에 나타난 사회문제에 관한 신조어는 '실업'이었다. 경제학자로서는 알프레드 마셜이 1888년에 최초로 사용하였으며 1895년에 존 홉슨에 의하여 경제학의 개념으로서 최초로 정의되었다.

곧 실업은 노동통계의 중요한 분야로 확립되었다. 이 시기에 있어 실업의 문제는 1930년대식의 대량 실업의 문제를 의미하기보다는 날품팔이 임시 노동자들(casual workers), 특히 런던 부두 노동자들의 잠재실업(under-employment)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들 노동자들은 1880년대 이후 잦은 폭동의 주역이었으며 위험한 계급으로 지목받고 있었다. 결국 실업문제란 이들 노동자들을 정부나 사회개혁가들이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였던 것이다.(96, 97쪽)

 

(프랑스)

영국에서 실업의 문제가 노동통계의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면, 프랑스에서 1880년대를 통하여 노동문제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산업분쟁 즉 파업의 문제였다. 1890년대에 공식적인 통계자료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통상업무를 맡은 행정부처에서 각 지방행정청(Préfectures)으로부터의 보고체계를 1880년대를 통하여 발전시켜 왔다. 1883년 7월부터는 각 보고에 통일되게 인쇄된 보고서 용지의 각 항목을 채우도록 되었고 보고서의 양식은 11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석: 11개항목은 지방명, 지역, 기업체 이름, 파업기간, 파업에 동조한 숫자, 파업자들의 요구사항, 고용주의 제안, 노사의 타협조건, 파업 전의 임금수준, 파업자들의 재원, 법률에 위반된 사항이었다.)

1884년 앙쟁(Anzin)의 광부들이 일으킨 대규모 분규는 분기점을 이루었다. 중앙정부는 지방 행정청으로부터 계속 많은 양의 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157, 158쪽)

 

(아메리카)

미국은 전세계에서 최초로 정기적인 노동통계의 생산을 위한 국가 행정기관을 창설한 나라였다. 그러나 미국의 노동통계와 행정의 역사적 발전과정은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적대적 이해집단들과의 투쟁으로 점철되는 험난한 길이었다. 결국 뉴딜 시기에 이르러서야 노동통계는 공공지식의 지위를 확보하고 노동부와 더불어 국가 정책과 전국적 정치 형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노동통계국은 1871년 최초로 매사추세츠주에서 창설되었고 1879년에 이르러서는 상설기관이 되었다. 1870년대 후반에는 펜실베니아, 코네티컷, 그리고 오하이오 주 등에 노동통계를 위한 유사한 행정기관이 설치되었다. 1884년에는 연방정부의 내무부 산하에 연방노동국이 조직되었다. (209쪽)

19세기 말에 이르러 통계는 사회개혁의 논의와 계급 갈등의 장에서 사회 지식의 권위있는 형태로 인정되고 사용이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LS(노동통계국)에서 만들어지는 실제 통계는 공공지식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BLS와 다른 공공기관에서 생산되는 통계는 당파 권력과 이익집단에 의하여 왜곡되었다고 보여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의회도 BLS에게 어떤 특별한 조사활동을 요청한 적도 없었다. (211, 212쪽)

20세기 벽두까지 미국의 노동통계는 노동자들의 도덕성에 관한 것과 경제적 조건에 관한 것 등 두개의 이질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두가지 요소에서 전자는 노동계급의 도덕적, 정신적 조건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그들 요구의 타당성과 나아가서는 인간적 존엄성을 잠식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220쪽)

 

 

2005/11/01 15:44 2005/11/0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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