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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인권대통령과 '푸른 생명'

[조정진 기자의 冊갈피] 인권대통령과 '푸른 생명'

 

이명박 정부가 ‘실용’ 구호와 함께 출범했다. 때를 같이하며 ‘인권변호사 출신’ ‘노동자들의 대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과 동시에 고향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TV로 생중계되다시피 하는 가운데 KTX를 타고 떠들썩하게 움직이는 모양이 흡사 조선시대 어가 행렬을 연상시켰다. 임기가 끝나 물러난 분이나 마을 주민 입장에서야 환고향하는 전직 대통령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소외됐던 시골마을로서야 더할 나위 없는 경사일 게다. 노사모 회원들도, 관광객도 많이 갈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지켜보며 한숨 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들은 아는지 궁금하다. 다름 아닌 구속 노동자들이다. 그것도 ‘노동자 정부’ ‘인권변호사 정부’를 고대하며 인간 노무현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다. 노무현 정부 5년간 파업 또는 집회 과정에서 구속된 노동자들은 1052명이나 된다. 김영삼 정부 시절 632명, 김대중 정부 때의 892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이들 중 아직도 많은 노동자가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다. 즉 ‘구속 노동자’들이다.

수백억원, 수천억원을 횡령해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최소’ ‘최저’ 생존권을 주장하다가 구속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푸른 생명’(메이데이)은 바로 이들 구속노동자들의 옥중 서한집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구속됐던 노동자들의 시와 편지를 묶었다. 행간마다 한과 서러움이 절절 흐른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세상을 물려줄 순 없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등등. 어찌 보면 소박한 바람들이다. 그들 중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이역만리에서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도 포함돼 있다.

‘푸른 생명’은 재소자들이 입는 ‘푸른 수의(囚衣)’에서 따왔다. 그들은 한두 평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에 구속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푸른 생명’과 희망의 미래를 일구어낸다. “더 왼쪽으로 더 아래 쪽으로” 나아가야 함을 다짐하기도 하고, “원칙이 최고의 명분”임을 확인하기도 한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지만, 시작할 때 비로소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세련된 문장은 아닐지라도, 정제된 글은 아닐지라도 ‘푸른생명’엔 생명이 넘친다. 시 하나가 유독 마음을 저미게 한다.

“돌무덤의 콘크리트 벽에 갇혀/ 체념하고 웅크린 가슴에/ 싹을 틔우는 거야, 푸른 생명이지/ 살아있는 것들끼리 부대끼며/ 푸른 생명으로 호흡하는 거야/ 뜨거운 가슴으로 생명을 품어내는 거야/ 기어이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겨울을 이겨내는 것이지”(조선남, ‘푸른생명’ 중에서)

 

출처_ <세계일보> 3월 1일자 북섹션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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