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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드는 사람들

책은 참 많은 이들의 손을 타요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관계합니다.
필동 처자가 곰곰이 생각해 본 걸로는 우선 글쓴이(저자)가 있고 출판사 관계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저자의 창작노동 과정에는 저자와 관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쓴이의 친구들, 글쓴이의 가족들, 글쓴이가 글을 쓰기까지 참고한 각종 자료를 먼저 생산한 사람들. 실천활동에서 만나고 지지고 볶은 사람들. 출판사관계자와 대화를 하기도 하지요. 글의 창작방향이나 모양을 어떻게 갖출지, 그런 따위를 얘기하기도 하고 대판 싸우기도 하고 뭐, 사람사는 게 다 그러하니 역시나 지지고 볶겠지요.

 

각종 고초를 겪은 원고가 오면 이제 출판편집자들이 글을 매만집니다. 이 때까지 텍스트는 그냥 텍스트일 뿐 책이라고 할 순 없겠지요.
그리고서 최종 오케이한 원고를 편집디자인의 과정을 거쳐 또 다시 수정과 오케이 등을 통과하고나면 이제 필름을 뽑는 출력실로 갑니다. 이 과정을 생략하기도 합니다만(마스터 인쇄 / 디지털인쇄) 디지털인쇄의 경우 아직 보편화된 공정이 아닌지라 대개 필름을 뽑습니다.
 
출력실에서는 글자(흔적)를 레이저로 쏴서 4색으로 뽑아냅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C, M, Y, K가 그것이지요. 요즘엔 금색이나 은색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색은 별색으로 뽑습니다. 필름도 오케이 사인이 나면 이제 인쇄소로 갑니다. 인쇄소에선 소부나 그런 과정을 거치고 인쇄에 들어갑니다. 흑백 1도일 경우는 그리 큰 부담이 없지만 4색 천연 칼라일 경우 인쇄감리나 기타 손이 많이 갑니다. 인쇄 뒤엔 제본소로 갑니다. 제본소에선 책이 양장인지 무선 반양장인지 중철인지 등에 따라 제본을 합니다.(중간중간에 많은 공정이 생략되어 있긴 합니다만 대충 이렇습니다.)

 

필동 처자는 원고가 순수한 원고로서 9부 능선을 넘는 공정이 따로 있고 출판편집자(코디네이터)의 손을 떠나 인쇄-제본으로 갈 적에 9부 능선을 넘는 공정이 따로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책이라는 건 참 많은 이들의 손을 탑니다. 여러 사람의 손이 타다보니 때로는 칭얼대는 아이처럼 속을 썩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 순해빠진 아이처럼 얌전하기도 합니다.

 

 

인쇄노동자들에게 감사하다

 

메이데이는 일산과 충무로에서 인쇄와 제본을 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이야기는 일산에 있는 B인쇄소의 노동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메이데이가 최세진 님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를 냈을 때의 일입니다.

B인쇄소에서 제작을 총괄하는 한 노동자는 자신이 인쇄하는 책의 서문(책머리에)을 항상 읽는다고 합니다. 어떤 책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어떤 책은 시간이 없어서 전불 읽을 수 없기에 가능한 한 서문은 꼭 읽는다는 것이지요. 자신들이 만드는 생산물인데 정작 노동자들이 그 내용을 전혀 몰라서야 되겠느냐, 는 것입니다.

 

어제 점심 무렵의 일입니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B인쇄소의 두 분이 오셨습니다. 결제독촉이겠구나, 하고 필동처자의 심장이 벌러덩했지만 두 분은 점심이나 같이 먹자며 웃으셨습니다. 이 두 분은 메이데이에 오면 거래처에 온 것 같지 않게(?) 마실 온 듯해 참 기분이 좋다고 하십니다. 필동 처자도 이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늘 메이데이의 책을 잘 만들어주시니 말입니다. '갑과 을'의 강퍅한 그런 관계말고 웬지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이런 관계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또 그 얘기를 하십니다.

 

"인쇄를 정말 이십여 년 했어도 서문에다가 책 만들어 준 노동자들에게 고맙다고 쓴 건 또 처음이야. 정말 그 최세진이라는 그 분은 무슨 생각으로.... 그래도 참 좋더라고."

('무슨 생각으로'하시며 말줄임을 하실 때 어쩐지 수줍어 하는 것 같았음.)

 

 

핸드폰으로 찍어서 별로예요.

 

 

최세진 님의 문제적(?) 그 책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B인쇄소의 그 분은 최세진 님의 이 책을 만들고 서문을 읽자마자 공장의 다른 동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메이데이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B인쇄소의 태도와 시선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억'이 기억에서 잊히기 전에

 

핫! 쓰다보니 메이데이 저자 자랑?

(퍽퍽! 자랑 좀 하면 안되냐고요. 나는야 팔불출 필동처자)

 

원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책이 만들어진다, 는 것이었어요.

(서론이 무척 길었구나)

 

어제 필동에 오셔서 점심도 사 주시고 맑은 날엔 남산산책도 가자고 약속하신 B인쇄소 노동자들의 '기억'을 필동처자의 기억에서 잊히기 전에 써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지요.

 

일하는 사람들(노동자들)을 기억하는 필자가 있다는 게 참 좋다, 는 말씀을 퍽 수줍게 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많이 뭉클했어요. 한두 번 들은 이야기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주책이야.

 

좀 주책이긴 하지만 메이데이와 함께 하는 많은 분들께 이번 기회에 감사하다는 말씀 드려요.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인데 주변머리가 없어서 애정표현을 많이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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