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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8/20
    주연
    m-1
  2. 2005/08/18
    2년
    m-1
  3. 2005/08/06
    아무것도 하시 싫다
    m-1
  4. 2005/08/05
    가족의 의미
    m-1
  5. 2005/08/01
    평화의 종이학 대장정 잠깐 다녀왔다.
    m-1

주연


 

 

주연이...

내친구 주연이...

사실 주연이를 언제 처음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오리엔테이션 언제가 였겠지

하지만 1학년때의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이란....--;;;;

어떻게 sec장인데도 나는 주연이를 몰랐을까

딴애들 다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희안하네...

어쨌든..제대로 알게된건 2학년때,,,

주연이는 성정치 위원회에서 일했고 나는 단대 학생회에서 일했었다.

원래 수연이가 자연대 성정치 위원회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수연이가 하기를 거부했고 그 대안으로 델꼬온게 주연이..

난 잘 모르는 애여서 뭐..그럭 저럭...지내다가 과선거를 준비하면서 부터

주연이와 제대로 알게 되었다. --;;

뭐...어느 학생회의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일 그러하듯 주연이와 나의 관계도 ~~~

무지무지 안좋았다.

뭐..잘 기억도 안나지만...어쨌든...결국 자연대 학생회 까지 같이하고...

사실...언제부터 이렇게 친했는지 잘 기억은 안난다.

자취할때쯤 부터였나?

뭐..암튼...

무엇때문에 친해졌을까

우리만 남아서?

뭐 그런 것도 있을 꺼다.

학교근처에서 얼굴볼수 있는 사람.

서로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

무지 중요한 것이니까

그녀와 나는 무지 많이 싸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얼굴 붉혀본게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

아마 몇년은 된거 같다.

아마 앞으로도 얼굴 붉힐 일이 없을꺼같다.

뭐..가끔 주연이가 유학간다고 하면 그래 가..꼭 가... 너 하고싶은 공부 계속해

막 그러다가도 속으로는 덜컥 겁이난다.

아..그럼 난..누구랑 수다떨지...누구랑 웃지... 누구랑 울지.... 뭐..이런것 때문에..

나에게 주연이는 가족이다.

진정한 가족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나를 이해해준다.

덮어줄줄 알고

그녀의 싫은 소리는 이제 싫지 않다.

나를 칭찬하든 비판하든 항상 내편에 서서 이야기 하니까

어쩌면 그래서 속상할 이야기도 그녀에게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라고 믿게 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우리가 기대고 있는

우리가 바라고 있는

우리가 거리를 두고 있는

딱 지금 만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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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필교가 떠난지 2년

 

무작정 슬퍼서 정말 이게 늪이구나 싶을 정도 였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나는 뱅글뱅글 돌고 있다.

 

어머님 아버님 앞에서 정말 잘사는 모습 보여드려야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내맘대로인 모습만 보여드리고

 

항상 언니들 신경써야지

 

지영언니 챙겨야지 생각은 했는데 막상 잘 되지도 않았다.

 

 

다시 2년이 지난 후에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마음잡았던 것들 변해 있을까

 

필교가 있었더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정말 재밌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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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시 싫다

이틀동안의 짜증으로 인하여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빠 면회 간다는 말에 엄마는 집 청소나 하라하고

-했는데

트레이닝은 못갔으며,

그 무엇도 하기 싫은 상태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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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

사실 난 오랫동안 가족의 의미에 치여 왔으며

강제당해왔다.

너무 싫다

가족

뭐 해준게 있다고 나한테 해달래!

라는 게 아니다.

너무 오바한다.

서로 편하게 놓아줄 부분과 잡고있을 부분을 정해야 하는데

무조건 적으로 부여잡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을 그에게 강조하고 그들은 나에게 그들의 생각을 주입시킨다.

가족아니까

가족은 원래 그런거니까

그럼 가족이 없으면 누굴의지하고 사니

저런 비러먹을 년

이런 거다.

 

아플때 가족이 있으면 약도 사다주고 좋다.

근데 가끔 귀찮아서 안사오거나 오다가 수다떠느냐고 나는 다 죽어가는데

오만시간 있다가 오는적도 있다.

사실 그정도는 룸메이트도 해줄수 있는일

굳이 가족일 필요까지야

가끔 아무이유 없이 선물도 준다.

안받아도 그만이다.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낀다.

난 다른사람들 한테도 그런거 느낀다.

 

굳이 왜 나는 성격도 맞지 않는 이들과 평생을 살것을 약속해야 하는가

뭐..그렇다고 다른 사람은 성격이 잘맞는 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들과의 관계를 좋게좋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하냐는 것이다.

내가 걍 싫어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우리 가족은 가족 사이의 정이 넘처흐르고 너무 너무 좋다.

그래서 너무너무 부담스럽다.

 

난 점심값도 아끼는데 아부지 퇴직 기념으로 오십만원을 내노라 하질 않나...

휴가를 시골 외가에서 보내라고 하지 않나

제사 때 안가본다고 뭐라 하질 않나

아...

왜그러는 거야...부담 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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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종이학 대장정 잠깐 다녀왔다.

후기 쓴건데 ...내 블로그에도 올려 놓고 싶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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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챙겨갈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집에서 나온게 12시반

일단 다주 쇼핑부터 들렸다. (미주 쇼핑이었나 --;; 매번 헷갈리)

퍼포먼스에 필요한 검정색과 흰색 다후다천!!!을 사서

다리게 깁스를 해서 대장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고마를 데릴러 갔다.

사무실 은밀한 곳에 숨겨놓은 남은 준비물을 챙겨들고 정말 출발!! 한게 1시반이었다.

대전 도착시간! 8시반!

episode01.그렇게 막히던 차는 우리가 대전에 들어갈 때 쯤 풀리기 시작했다.

아니! 근처에 바다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럼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대전에 가는거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후훗! 다들 평화의 대장정 가는구나 ㅋㅋ 했다.


결국 숙소인 배재대학교로 직행-사실 길을 몰라 대충 가다가 어떤 버스에 배재대 라고 쓰여져 있길래 그 버스 뒤를 졸졸 따라가서 배재대 찾는데 성공 ^^

조금 기다리니 대원들이 도착했다. 대장정 둘째날 봤을때 보다 훨씬 서로에게 정겨워진 대원들. 그 빗속에서도 틈틈히 그을린 얼굴들. 약간은 피곤에 지쳐보이는 어깨들까지도 대견하기도 하고, 이뻤다. 나에게 있었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 지기도 했다.


기숙사 로비에 앉아 너무나도 친숙한 1솥도시락 (청년진보당  정면돌파 시절 한끼도 빼놓지 않고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이라기 보다는 걍 잠깐 났다.--;;;)을 먹고 조별 토론 시간과 조별 캠페인 준비시간들을 가졌다.-대원들은 각지역을 돌면서 길거리 캠페인을 갖기도 하는데 그 길거리 캠페인의 출연, 연출, 기획, 제작 기타등등의 것이 모두 대원들의 몫! 그 준비를 하기위해 대원들은 매일저녁 잠을 줄이고, 수다를 줄이고 (이건아닌가), 커피도 줄이고(이것도 아닌가), 담배도 줄이고(이건 더더욱 아닌가?) 아무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의 환영을 받으며 도착한 고마는 조를 배정 받아 그 조와 함께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다행히.. 노래공연을 준비하는 조의 친구들이 나를 그 심심함에서 구출하여 줬다. 너무 열심히 준비하다보니 새벽2시반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모임을 정리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여전히 배정받은 조가 없는 나는 여성집행국 친구들과 함께 방을 쓰기로 해서 나름대로 배정받은 숙소로 갔다. 헐~ 너무 좋다 이층 침대방이라니! 심지어 뽀송뽀송한 이불. 단!!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신데렐라도 아니고 무신--;;)


7월 31일

원래 계획했던 시간 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친구들 그동안의 잠자리와는 사뭇 달랐던 편안한 잠자리에 너무나도 푸~~욱 잠들어 버린 탓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을 먹고 광주로 출발!!!

episode02.광주로 가고 있는데 집행국 한 명(이름을 밝힐 수는 없고 남학생이었다.)이 식당에서 버스를 못 탔다는 연락을 받았다. 버스가 다시 돌아가기 힘드니까 우리한테 가서 데리고 와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버려진 집행국 한명을 태우고 급하게 버스를 쫓아갔다. 이유인즉, 기사를 써서 올려야 하는데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근처 피씨방에 갔다가 버려졌다고 했다. (홀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집행국의 모습이 궁금하시죠.? ㅋ곧 사진 올라옵니다.)


광주에 도착해서 처음 간곳은 미군 공군기지. 항의 집회가 시작되고 준비된 노래들과 발언들이 끝난후. 대표단이 종이학 전달식을 진행하였다. 그동안 우리가 있어야 했던 곳은 아시다시피 전경들로 둘러싸인 뜨거운 아스팔트위. 미 공군기지 측에서는 종이학 전달을 거부하고, 대표단은 전달하려고 하고 이런 실랑이가 벌어지는 동안 대원들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준비되지 않았던 공연들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결국 종이학 전달은 거부되고 종이학을 미군기지 앞에 흩뿌려 놓고 왔다.

episode03.실랑이가 벌어지는 동안 참다못해 아무래도 우리가 종이학을 미군 기지 안으로 날려보내야 겠다. 우리가 미군 기지 쪽으로 가서 종이학을 날리자. 뭐 이런 발언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미군기지 쪽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경찰중 지휘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전투경찰들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막아부려!” 정말 긴장되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구수한 광주 사투리에 모두들 풋~ 웃어버렸다.


도청앞 금남로 우체국으로 이동하여 길거리 콘서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너무 더운 날이었고, 우체국 앞에는 발디딜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준비하는게 너무 힘들 듯 했다. 일단 풍물패가 우체국앞 사거리를 싸악~ 평정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준비된! 노래공연들과 연극,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연습시간이 많이 없어서, 아직 화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부산에 도착할 때쯤이면, 대장정이 진행되는 순간순간 그 노래는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조금씩 조금씩 완성될 꺼 같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연극과 퍼포먼스는 올라오는 사진을 봐야 할듯...ㅋ 꼭 보셔요 정말...좋은 내용에 재미를 겸비한 좋은 연극과 퍼포먼스였다. 역에 계시는 노동자회 사무국장님께서 응원 발언도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쿄쿄쿄 꿈찾기의 공연이 있었다. 뭐...여전히 ...광주에서 잘하고 ...(민망 민망...이부분은 더 이상 생략~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체질이어싸서...)

episode04. 길거리 콘서트가 진행될 때 잠깐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려 손을 씻다가 .... 옆에 있던 양동이속에 핸드폰이..꼬로록... 잠수를 하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덥긴 더웠나 보다.


전남대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진행된 것은 다름아닌 평화벨을 울려라!!! 교양내용과 자료집등을 참고하여 문제를 선정한 것들이었다. 두번의 패자부활전 속에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꿈찾기의 막내인 김*섭 군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다. (조용히 있다가 돌아오겠다는 처음의 다짐과는 무관하게 무척이나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훗....그럴 줄 알았다...조용하게는 무슨 --;;;) 전남 당원들이 대원들에게 선물한 수박을 함께 먹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생일을 맞은 대원의 생일축하파리~~대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마련한 케잌과 축하메세지가 적힌 대장정 포스터 --;; 가 전달되고, 생일 맞은 대원은 그 답례로 바위처럼을 추기도 했다.  배재대의 기숙사와는 달리 남여 숙소가 다른 건물에 있었고. 심지어 1시에 문을 닫으면 오갈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아저씨께 부탁드려 야외에서 조장회의와 조별 모임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모임이 끝나 돌아온 대원들의 발목은 모기에 쪼여서 거의 벌집이 되어있었다.

episode05. 첫 번째 패자부활전 문제는 평화의 대장정의 주최를 풀네임으로 쓰는 것이었다. 답안지로 사용된 종이는 바로 평화의 대장정 포스터였다. 그런데, 포스터에는 정답인 주최가 적혀있었던 것이다. 다들 힐끗 보기도 하고 하면서 답을 들어서 올렸는데. 한조에서 사고가 터졌다. 바로 예전 포스터를 보고 반핵평화 사업단 이라고 적은 것이다. 결국 그 조는 대거 탈락! 나중에 그 조에서는 학을 천마리 접으면 사업단도 바꿀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저서 밤새도록 학을 접었다는.....


8월 1일

아침을 먹고 대원들은 합천으로 떠났고 우리는 서울로 왔다. 대원들이 떠나면서 눈물을 훔치며 우리에게 초코파이 세 개를 쥐어주었다. 흑흑...보고싶을꺼야~~


이박삼일의 짧은 일정을 함께 했지만 항상 즐겁고, 신나하던 대원들의 모습이 그리고 진지해하던 대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지금은 합천에서 조별 모임을 하고 있겠군. 벌써부터 보고싶다.


오겡끼데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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