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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 세상 소식지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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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을 생각했다. 민족주의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당국에 쫓기다가, 배에 올라 최하층 노동자가 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노동계급의 현실에 눈을 뜨고, 식민모국 프랑스에서 제2인터내셔널의 유력인사가 되고, 이내 코민테른의 조직활동가가 되어 이름을 계속 바꿔가며 중국남부와 인도차이나에서 수많은 조직을 건설했던 불세출의 혁명가. 그러니까 아직 '호치민'이라는 베트남 국민국가의 상징이 되기 전,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신화화된 지도적 인물이 되기 전의 호치민.
그는 나와 너무나도 다른 인간이었다. 강철같은 의지와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유교적 — 권위주의가 아니라 백성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여기는 혁명의 전통으로서 — 도덕과 품성으로 무장한 지하혁명가의 삶과, 언제나 골골대면서 일신의 건강을 챙기기에도 바쁜 내 꼬락서니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래서 더욱 생각했나보다. 두리반이 승리로 마무리될 무렵 시작된 명동의 점거농성장 '마리'에 연대를 결심하면서. 나는 내 마음 속의 영웅, 내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고귀한 삶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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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청(소)년들을 모든 것을 바닥에서 다시 발명해야 한다. 광주에서 시작되어 87년, 91년에 한 정점을 찍고, 97년 이후 몰락했던 '87년 체제' 혹은 '80년대 운동권'의 역사는 이제 다시 복구될 수 없을만큼 부패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사는, 그 역사를 담지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여전히 현실의 운동을 지도하고 있었고, 다시금 바닥에서 시작하는 청년, 청소년들의 운동은 이들 운동의 보충물이 되어서 '젊고 발랄한 새로운 세대의 운동'으로 소비되었다.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두리반이 보여준 것은 그러한 '꿘의 세계'의 최종적 몰락이었다. 청(소)년들이 오롯이 독자적인 기획 속에서 운동의 내용과 스타일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의 모든 지점들이 성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밝혀야겠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은 열락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난한 좌충우돌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코 낭만적이지도, 자족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조직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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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이 끝날 무렵, 명동성당 앞 블록의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두리반도 그랬지만, 도심재개발 과정이란 건 철저한 아웃소싱의 과정이다. 기업은행이 입주를 약속하고 대우건설에 돈을 투자하고, 대우건설은 사실상 유령회사인 시행사를 만들어서 토지를 매입하고, 시행사는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세입자들을 폭력으로 내쫓고 건물을 부수도록 한다. 그리고 그 반대쪽은 그들과 반대로 움직였다. 전철협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운동단체를 믿고 그 아래에서 투쟁을 하던 철거민들은 카페 '마리'를 점거하면서 조끼를 벗고 투쟁의 주체로 나섰고, 그 소식을 들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마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6월 19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일요일 오후에 용역들이 용역들이 들이닥치자 이내 트위터를 보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항의집회와 몸싸움 끝에 마리를 되찾은 사람들은 그 공간에 눌러앉았다. 빼앗길 어떤 기반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 '요새 젊은 것들'은 가지고 있던 삶의 기반을 빼앗긴 철거민들의 투쟁에 연대, 혹은 '기생'했다. 그들은 노래하고, 술마시고, 세미나를 열고, 몸싸움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농성장의 수칙을 정했다. 두리반에서 마지막까지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그들은 마리에서 곧장 성취했는데, '명동해방전선'이라는 독자적인 단체를 만들어서 농성장을 함께 꾸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20세기의 게릴라투쟁을 연상시킬 이 이름은 사실 패러디에 가까운데 — 이를테면 윤성호 감독의 영화 <은하해방전선> 같은 — 단체의 정확한 회원이 정해지지 않은 유령단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쪽의 유령회사가 돈으로 용역을 사서 부려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달리, 이쪽의 유령단체는 정말로 유령처럼 인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날마다 튀어나와 공간을 지키고, 저들을 괴롭힌다. 이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저들의 시선으로는 인식불가능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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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농성장의 2층을 확대 점거하는 과정에서 용역들과 다시 몸싸움이 붙었을 때, 시행사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순수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놀고 싶은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해 주었다. 이 평가는 묘하게도 반대쪽의 운동권들에게서도 나오는데, 그들은 이들의 투쟁이 '자족적'이며, 명동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의 정당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행사건, 운동권이건 이미 도달한 어떤 자리에서 현상을 바라볼 때 어떤 시차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달한 역사 — 그것이 선진화건, 민주화건 — 가 준 범주를 통해서 현상을 본다. 그것은 무언가를 삭제한다. 이미 역사를 통과한 그들에게는 오늘날, 그러니까 아직 역사가 되기 전, 이 현장에서 아래에서부터 연대와 투쟁을 구축하는 명동해방전선의 실천과 삶을 읽어낼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명동에서의 투쟁은 그들의 세계(상)를 파괴하고, 재구축을 강제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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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치민을 생각한다. 그는 장차 사회주의 민족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 그 험한 경로를 거쳐간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자신이 맞닥뜨린 현장에 사로잡혔고, 운명 앞에 섰던 것이 아닐까. 오늘날 엄청나게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호치민과 '요새 젊은 것들'이지만, 이 둘은 절망의 시대에 자신들의 싸움을 새롭게 발명해야 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넘어 공명하고 있다. 사실상 역사란 켜켜이 쌓여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공명하는 어떤 이미지들의 모음인 것은 아닐까. 승리자들의 기록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들의 싸움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싸움의 발명 속에서만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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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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