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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하셨습니다."

2016년 1월 파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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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어떤 문명이 미개함을 몰아내자는 캠페인으로 건설된 바 있을까. 있다. 오직 식민지들에서만 그것이 가능했다. 그것을 건설이라 부를 수 있다면. 오늘날 미개를 타파하고 문명을 갈망하는 목소리들에 (문명인 다운) 주체적인 자의식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문명 캠페인은 두 개의 타자화 형식, 즉 1. "미개"라는 타자를 설정하고 공격하는 것, 2. 스스로 "외국"이라는 대타자(오직 구미의 선진국들만이 이 "외국"이 될 수 있다)의 대상이 되는 것 속에서 이뤄진다. 그 속에서 문명을 갈망할 수록 주체는 더욱 더 식민상태에 빠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형식은 좌우, 연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건 발견되기 때문에 특별히 고를 것 없이 어젯밤에 트위터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인용해 보자. SBS스페셜이 충격적으로 미개한 다큐, <엄마의 전쟁>을 방송한 뒤 나온 말이다. 

 

"@Dxxxxxxk  1월 4일

다큐멘터리 하는 외국친구들이 한국 다큐멘터리는 왜 드라마틱하냐고 물은 적있다. 음악이 너무 많고 제작진의도로 쓴 자막이 많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에 입각한 진실을 전달하면 된다.감정은 관객의 몫이다. 

 

@Dxxxxxxk 1월 4일 @Dxxxxxxk 외국 다큐멘터리를 보라. 최대한 현장음을 살리고 음악도 나레이션도 최소화한다.그것은 제작진의 해석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감정적인 나레이션의 도배,인터뷰에도 넣는 음악,제작진이 멋대로 해석한 자막,이건 다큐가 아닌 의도된 영상일뿐이다."

 

미개한 내용은 물론, 미개한 형식에도 지친 반도의 다큐 시청자는 다큐의 이데아, 다큐의 문명을 찾으러 "외국"을 향한다. "외국"을 말하지 않고 무언가를 비판할 수 있는 길이 반도에는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

눈을 조금 돌려 보면, 이러한 '문명화'는 서구에서는 '원주민'이 '이민자'들을 향해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수 정당인 독일 바이에른 기사당은 최근 난민들에게 독일의 기본법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 독일(유럽)의 기본적 가치들을 인정한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난민신청자의 지위를 주자는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애초에 난민(이민자) 전체에 미개의 혐의를 씌우고, 문명 앞에서의 주체성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다. 물론 동성혼 반대라던지, 부부간에도 형법상 강간죄를 적용하려는 법에 반대표를 던졌던 것 등을 포함해서 바이에른 기사당의 여러 정책이 얼마나 '문명'적인지 감히 반도인인 내가 판단할 수는 없을 테다. 저명한 68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알리스 슈바르처는 그의 잡지 EMMA를 통해 이주민 무슬림(남성)들을 끊임없이 비판하는데, 그 내용이란 정작 이슬람 교도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게 "이슬람주의 십자군의 깃발", "21세기의 파시즘"을 보여준다는 식이다. 히잡을 쓴 여성이 이슬람주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거나, 최소한 자기 주체적인 여성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히잡을 벗지 않고서는 무슬림 여성이 문명인이 될 방법이 없다.

 

흥미롭게도 이들 '원주민' 혹은 '문명인'들 사이의 섹슈얼리티와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바이에른 기사당과 알리스 슈바처 사이는 동이 서에서 먼 것 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 동성혼이나 고용평등, 낙태 등의 이슈에서 이들은 전형적인 대립 관계에 속할 것이다. 백인-기독교-계몽주의-페미니즘-자본가-노동자…사이의 수많은 균열과 대립의 선들은 이들 모두가 '문명'이라는 대타자의 목소리에 복종할 때 깨끗하게 사라진다. 이 균열과 대립을 통해 탄생한 주체("문명인")의 역사는 오간 데 없고 미개를 향한 타자화만 남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서구 문명 자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의 부친살해(프로이트)도 없고, 모든 가치를 전복시키는 어린아이(니체)도 태어나지 않는 문명. 그야말로 "문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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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문명화 캠페인"은 문명을 사랑하고 미개를 멀리하는 이들의 소망처럼 반도인들이 문명인이 되는 결론을 낳을 수 있을까. 아이즈IZE의 신년 캠패인에서 내건 100개의 목록이건, 혹은 트위터같은 곳에서 '미개'와 '문명'이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이런 저런 행위건, 그 미개와 문명의 '내용'은 결코 문명화 캠패인의 성공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내용이 아니라 (수행적인) 형식이다. 사실 이런 캠페인의 진짜 내용은 그 형식에서 나온다. 그리고 문명과 미개라는 형식 속에서 발생하는 균열 혹은 적대는, 문명을 낳기엔 위험하고,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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