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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17
    어느 공무원 노동자(1)
    mush
  2. 2004/11/15
    노동자 대회(2)
    mush

어느 공무원 노동자

언론에서는 공무원 노조의 파업이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떠들석하다.

이제는 낯설지도 않은 저들의 호들갑, 왜곡, 그리고 탄압...

그러나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들이 있다.
다시 일어서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그렇게 승리를 향한 진군은 시작한다.

"가장 무서운 적은 주저하는 것이다.
모든 싸움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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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 노동자


11월 14일...
공직생활 10여 년 동안 오늘같이 출근길이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따라 나서며 안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마저 부담스럽다.
평소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이면 술렁거렸던 구청 앞도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참 멀리로 달려왔지”
순간 그동안 공직생활을 뒤돌아보며 한숨 같은 독백이 흘러 나왔다.

공무원노조의 총파업 D-1.
나는 오늘도 예전처럼 처자식이 있다는 변명을 내세워 책상 앞에 앉았다.
“처자식 있는 것이 벼슬도 아닌데”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동료들도 삼삼오오 모여 총파업투쟁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노조원들과 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소 나와 친하게 지냈던 동료도 총파업 투쟁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고 빈 책상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 친구의 용기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나서지 않은 내 자신이 다행이라며 위안하고 있었다.
구청 분위기가 술렁여서 인지 아니면 내 자신이 심난해서 인지 오전 내내 좌불안석 이었다.

“김 선배 안 올라 가셨어요”
깔깔한 입을 달래며 점심을 먹으려는 찰라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감사과 직원이 정색을 하며 물어 본다.
“왜?”
순간 그의 질문에 불쾌감을 느낀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총파업에 참가한 OOO선배와 언제나 함께 다녀서 김선배도 함께 올라 간줄 알았죠”
“올라가면 안되나?”
가뜩이나 불편 나의 심기를 건드려 더 이상 밥을 먹으면 체 할 것만 같았다.
“왜 벌써 식사 다하셨어요. 김선배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닌데...”
변명을 늘어놓는 그를 뒤로 한 채 휑하니 식당을 나와 버렸다.

거리의 차가운 바람은 어느새 속옷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추울텐데...”
서울로 올라간 친구가 걱정이 됐다.
“정부에선 벌써부터 총파업 참가자 전원을 중징계 한다며 야단들인데...”
그러나 어제 밤부터 내 마음 한편엔 죄책감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이곳으로 발령을 받은 이후 7년 동안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던 친구가 총파업에 동참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 앞에 순간순간 나의 추한 모습이 투영되었다.

책상을 지키고 앉아있던 오후 내내 나는 그저께 밤일을 생각했다.
“니가 나선다고 말단 공무원이 하루 아침에 기피고 살겄나”
동네 맥주 집에서 설전은 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쓰잘떼 없는 일에 마음 두지 말고 적당히 몇일만 참으면 되는데 뭐할라꼬 니가 나서나”
“니 집사람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어제 밤에 애 엄마한테 전화해서 너 짤리면 어떻게 하냐고 울더란다”
“이 문둥이 자슥아 쬐만 참으면 된다. 니가 독립투사도 아니고...”

술이 건하하게 취했을까. 나의 거침없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그 친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슥아 니가 공무원이가. 니가 진짜 국민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든 적 있나. 공무원생활 15년 동안 니가 한게 뭔데...”
술잔을 비우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오히려 나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다.
“나는 처자식 걱정 안 되는 줄 아나. 난 니같은 인간이 제일 경멸 스럽데이. 동료들 눈치 때문에 공무원노조에 이름만 걸어 놓고 적당히 윗사람들 눈치나 살피는 너같은 공무원 때문에 공직개혁도 안되고 국민들로부터 공무원하면 비리의 온상인양 손가락질 당하는 것 아니가”

소주를 어지간히 마셨는데도 그의 눈은 오히려 반짝이고 있었다.
“난 내일 올라 간데이.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올라 간데이. 썩어빠진 공직사회 바꾸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올라 간데이. 너 같이 비겁한 공무원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라 간데이”

내 자신이 창피해 나는 탁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주잔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떨림은 공무원노조 총파업을 앞둔 그의 열정과 정부와 싸워야 한다는 두려움이 교차된 심정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아이고 피곤하다. 이제 퇴근 합시다”
과장의 목소리가 나의 생각을 깨웠다.
난 7년만에 처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과장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공무원노조의 총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근 일주일 동안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과장의 모습을 볼 때 마다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기회주의자...”
사무실을 빠져 나가는 과장의 뒷통수를 보며 입속으로 그를 비난해 본다.

순간 또 다시 내 마음 한편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죄책감이 꿈틀거렸다.
“과장만 기회주의자 인가. 나도 기회주의자 아닌가. 친구가 어떻게 되던, 공무원노조가 파업을 하던 하루 종일 책상을 지키고 있었던 나야 말로 기회주의자 아닌가. 눈치 살피며 공무원노조 조끼를 입고 책상을 지켰던 나야말로 기회주의자이다”
갑자기 목이 탔다. 냉수라도 벌컥벌컥 들이 키고 싶었다.

“식사안하면 과일 깎아 드려요”
아내의 물음이 귓전에서 윙윙거렸다.
“전국공무원노조가 사상 첫 불법 파업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정부는 파업 참가자를 대상으로 곧바로 직위해제 절차를 밟은 뒤 3~4일 내에 지방자치단체별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중징계를 요청할 방침입니다...”
9시 뉴스를 보는 순간 화면 속에서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연세대 앞을 달려가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그 친구는 무엇을 위해 낯선 서울의 밤길을 내달리고 있었을까. 어깨에 조그만 가방을 들러 매고 조합원들과 함께 연세대학교를 내닫는 모습을 보며 따뜻한 안방에서 텔fp비전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잠깐이지만 친구의 얼굴엔 근심보다 확신에 찬 의지로 빛이 났다. 아니 마치 연세대학교가 해방구인 듯이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 이었다.

“여보 나도 밤 열차타고 서울에 가야겠어”
나의 말에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요. 당신이 왜요”
아내는 애써 내말의 의미를 피하려 했다.
“아니.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서울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료들이 십자가를 매고 있어. 이 추운날 서울에선 동료들이 상경투쟁을 하며 길거리를 헤메고 있어. 똑같이 월급을 받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 내 약한 의지 때문에 그들의 가슴에 한과 불신이라는 대못을 박아 버릴 순 없어... 두툼한 점퍼랑 모자 좀 챙겨 줘”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녀올께”
나는 아내의 눈물을 애써 못 본 채 하며 역전으로 향했다.

“어! 김선배님”
노조 지부에서 나를 따르던 후배도 대합실에 나와 있었다.
“자네는 웬일이야”
“아버님이 어제 대장암 수술을 하셔서 상경 투쟁을 못했어요. 뒤 늦게라도 동참하려고 부랴부랴 나왔는데 선배님은 웬일 이세여. 이 야심한 밤중에”
“나... 공직생활이 이제 지겨워서 한번 짤려 보려구”

열차가 깊은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서울을 향해 내 닫고 있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어둠을 가르며 내닫는 열차와 같이 14만 공무원노동자가 하나 되어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어둠을 뚫고 전진해 나간다면 반드시 승리하리라”
가장 무서운 적은 주저하는 것이다. 모든 싸움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며 핑게를 대는 것은 영원히 패자가 되는 것이자 굴종의 길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결단과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 찬바람을 뚫고 정부의 억압에 맞서 가열찬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여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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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회

# 1

 

노동자대회 날이다.
회사에는 "친구와의 약속때문에 특근을 할 수 없다"고 말해 놓았다.

급하게 주문이 들어왔는지 생산계획이 다시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야간 2주가 끝나는 이번주 금요일께에 관리자들이 야간 2주 연장이라고 공지한다.
특근도 계속 잡혀 있다.
한편에서는 빡센 생산계획으로 인한 노동강도 강화, 높아만 가는 스트레스, 불규칙적인 근무계획과 이로 인한 개인적인 일정 차질로 불만을 토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달동안 야간에 특근일정이 잡혀 있어 돈 많이 벌겠다며 좋아라한다.
특근 못 나온다는 나의 말에 동료 작업자들은 "야간특근 안하면 돈 많이 못 벌텐데.."라며 이상야릇한(!) 눈빛을 날린다.

사실 노동자대회를 기다렸다.
아니 기다렸다기보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한번의 위력적인 투쟁이 그야말로 단 한번으로 끝나면 문제이지만, 지금같이 정권의 공세적인 탄압에서는 그것조차 너무나 소중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작년 중하반기부터 흘러나오던 '로드맵'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정권의 로드맵 구상이 사실상 노동계급의 분절화 전략이 성공하면서 얻은 자신감의 표현이자 자기 위기의 생존전략(!)임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자본과 노동은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시점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 정책과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이미 파견법 개악은 입법절차만을 남겨두고 있으며 그것은 비정규직의 대량양산과 정규직 고용을 노리는, 사실상의 전체 비정규직화에 다름아닌 공격이다.
내년 상반기에 처리될 '로드맵'은 남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무엇을 공격해야 생존(자본가정권의)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그것을 위한 수순과 일정을 저들, 자본가 정권이 차근차근 처리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을 같이 들었다가, 당근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지 요즘엔 채찍만 열라 휘두른다.

그런데 계급대중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리고 이러한 공격에 우리는 어떤 행동과 실천을 조직하고 있는가.
무엇을 선동하며, 무엇을 선전하고 있는가.
사실, 너무나 암담하다.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사방으로 막혀있는 장벽에 파열구를 낼 수 있을까, 어떻게 들고 일어설 수 있을까.
이것은 비단 현장의 모든 활동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일게다.
하지만 작지만 소중한 실천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랜만에 나설 거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그 많은 동료 작업자들이 뼈빠지게 일하고 있을 시간에 혼자 거리의 흥분을 느끼자니 뒤가 조금 구리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일단은 오늘과 그 이후만 생각하기로 하자.

 

# 2-1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던가.
아니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기대마저 없다면 애초부터 힘이 빠져 담배나 물고 터벅터벅 걷기만 하는 것이 싫어서 나는 "무언가 있겠지"라는 최면을 스스로 걸고 있었는지 모른다.

격전이 예상되던 곳의 투쟁도 이렇다할 충돌이 없었다.
물론, 공무원 동지들의 총파업 결의는 충분히 소중하다.
그러나 그 결의를 이어갈 수 있는 물리력과 응집력, 그것의 성과를 정치/조직적으로 어떻게 축적할 것인지의 계획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허탈하게(?) 마무리된 산개투쟁의 계획이 최소한 발전투쟁때만큼 이어갈 수 있을지, 사실 조금 미더운 것도 사실이다.
정권의 탄압이 광폭한데 반해 공무원 노조의 조직력-물론 공무원노조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일천하다. 그러나 오늘 보아온 바에 따라 판단해 보면 조합의 정치적 요구사안과는 별도로 조직력이 그다지 탄탄치 않음은 분명한 것 같다. 14만 조합원중, 4800명 상경에 노대회와 공무원 총파업전야제 집결인원이 1000명이라니.. 거기다 나머지 3800명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역별 독자 총파업도 한 군데라니 총파업 준비에 대한 부분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잘 모르겠다-과 총연맹, 단위노조의 연대가 그에 미치지 못하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이유로 눈앞의 투쟁을 버려둘 수는 없다.
진보넷의 속보기사중 어느 동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업장은 달라도 같은 노동자로서 함께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싸울 것이다."

그래,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 누군들 모를까.
다만 하지 못하는 것의 '변명'은 지겨운 현장상황이다. 동력이다. 조직력이다.
현장조직력을 핑계로 총파업을 총력투쟁으로 뒤바꿔 투쟁을 선언해 왔던 민노 지도부를 그렇게도 신랄하게 비판했던 그 전투적 부위마저, 자신이 날렸던 비판의 내용을 고스란히 반복하며 '선도투'를 회피하였다고 한다.

"현장동력이 되지 않는다. 조직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현실은 인정하자.
일단 현장 조직화, 잘 안된다.
싸우자, 골백번 이야기해도 하나 먹힐까말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단 한번의 선도투로 조직력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어쩌면 현장에서의 작은 실천하나가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예년처럼 마무리된 노대회에 나는 다시 한번 허탈한 웃음만 날린다.
오늘 투쟁이 마무리되고 걸친 한잔 술에 어느 동지가 이런 말을 한다.
"y앞에 있던 선봉대 동지들의 면면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희끗해지는 머릿발 날리며 아직까지 선봉대를 서야 하는 그 동지들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도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기 그지없다"고 말이다.
서른줄에 들어선 동지들이 선봉대의 막내격이었다니.. 하는 말을 덧붙이며.

우리는 어쩌면 주변을 조직하지 못하고 윗대가리만 씹는데에 익숙했는지 모르겠다.
정작 주변을 조직해야 할 그 때, 그러지 못하는 우리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는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본다.
하지만 작지만 소중한 실천을 벼리고 있는 동지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그리고 그 실천이 지금은 작을지라도 거대한 파도가 되어 언젠가 하나된 우리로 거리에서 마주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끊임없이 대중을 설득하고 대중과 '내'가 한 몸이 되는 작업들, 그러나 '자신'이 대중의 이해수준으로 하락하지 않는 작업, 대중의 정치적 의식을 끈질기게 끌어올리는 작업, 이 모든 것이 한 몸이 되게 하는 그러한 작업, 활동.
그것이 필요하다.

자,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를 보자. 그리고 내일을 계획하자.
희망은 아직까지 함께, 그렇게 끈질기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데 있다.
할 수 있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이길 수 있다고 어깨걸기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더 이상 자본주의에 희망은 없다고 선언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더이상 "노동해방 쟁취"의 구호가 낡아빠지고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현실의 절절한 구호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기에, 그리고 그것을 위해 당장은 성과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루하루 뜨겁게 사는 우리가 있기에 희망은 있다.

노동해방 쟁취!
그래 그거다.
이제 남은 것은 끈질기게 대중과 한몸이 되며 노동해방에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노동자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파견법 철폐를 위해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자본가정권이 쳐놓은 노동자 분절 그물망을 과감히 뜯어버리고 공무원노조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자기사업장의 현안과 타사업장의 투쟁에 연결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파견법 철폐와 투쟁사업장의 요구를 하나의 노동자 요구로 받아 안아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똘똘 뭉쳐야 한다.

그래, 그래야 한다.
적들의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자.
적들의 더러운 미소에 침을 뱉자.
적들의 개같은 도발에 맞장을 뜨자.
잊지 말자.
작년, 우리가 몇명의 동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는지를.
이제 적들은 우리 모두를 죽이려 한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당장 내일부터 공무원노조 총파업에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투쟁을 지원하자. 연대하자.
파견법 입법상정시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장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분투하자.
이제 패배감에서 헤어날 떄이지 않은가.
쏘주 한잔 빨며 그렇게 이빨까는 것이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는가.

투쟁이다.
다시 벼른다.
투쟁이다.


노/동/해/방/쟁/취/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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