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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당운동에 대한 사고의 편린들

아래 글은 5월 초에 쓴 글이다.

문화과학의  청탁을 받고 아무 생각없이 'yes'했다가, 마감일에 쫓겨 급하게 썼다.

54호에 실렸다.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내용이 없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도 불분명하다.

제목 그대로 조각들이 모여,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것도 부재하다.

 

작년 말과 올해 초, 총선을 거치면서 분분했던

 '진보의 재구성' '진보정당운동의 재편' 등의  논의는 지금은 靜中動의 상태이다.

아마 10월, 11월을 지나면서 가시적으로 드러날 게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지긴 했지만

사고의 흐름을 쫓아 보니라 포스팅한다.

 

 



-1-
2007년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을 거치면서 한국사회 정치의회권력의 지형은 보수우익세력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에 통합민주당으로 대표되어지는 자유주의세력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은 이전에 비해 절반수준에 그치는 패배를 경험하였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원인으로 작용했든, 아니면 제도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표현한 것이든,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대중의 제도정치에 대한 이탈이 심각하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보수우익의 압도적 우위와 대중의 제도정치에 대한 이탈이란 두가지 현상은 ‘대중의 기대와 욕망’이라는 동일한 발화점을 갖는다. 747공약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 뉴타운이라는 개발이익에 대한 욕망으로 전자가 대표된다면, 후자는 삶의 곤란, 어려움과 고통속에서 더 이상 제도정치권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 이를 해결해 줄 자리를 찾고 있지 못한 정서와 욕망이 표현된 것이다. 단순히 숫자로만 파악한다면 보수우익세력은 국민의 25%만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결국 보수정치전반의 ‘불안정성’으로 귀결된다.
보수정치의 불안정성은 ‘강부자’ ‘고소영’으로 불려지는 이명박 초기 내각, 청와대의 인사정책에 대한 불신, 영어몰입교육과 교육자율화로 표현되는 불도저식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 국민 2/3가 반대하는 대운하 강행의지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어져서 ‘광우병 쇠고기 협상’의 무능, 졸속, ‘조공 외교’로 표현되어지는 일방적 굴욕이 이어지고 맞물리면서 두달밖에 지나지 않는 정권의 지지율이 반토막 나버리는 데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촛불집회’로 대중들의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정부는 7,80년대식의 대응을 통해 이를 무마하려는 ‘반동성’ 마저 내비치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의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대를 진보운동은 마주하고 있다.

 

-2-  
지배정치구도, 보수정당체제의 불안정성이 곧바로 좌파정당의 도약과 약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97년 이후 좌파정당운동은 2004년 총선에서 단기간의 약진을 제외하곤 노동자․민중의 희망으로 자리잡은 적이 없다. 지금 현재에 있어서 그 가능성은 커지기는 커녕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결과로 확인되었듯이 현상유지조차 장담키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다. 이 상황을 낳은 원인으로 널리 알려지고 지적되는 것이 ‘민주노총당’ ‘종북정당’ ‘데모당’이란 평가이다. 이 세가지 지점은 보수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지적된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내부와 민주노동당에서 이탈하여 진보신당을 결성한 세력 내부에서도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토론이 되었던 쟁점이기도 하다.
민주노총당이란 평가는 ‘대기업 정규직’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더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이 평가내용은 좌파정당의 대중적 토대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보다는 보수정치와 언론의 ‘정규직 이기주의’이데올로기 공격에 방어적 혹은 이를 회피하려는 시각에서 제기된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방향을 둘러싸고 노동자․농민 등 계급대중 속으로 더 파고들 것이냐, 아니면 외연 확장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속으로 파고들 것이냐 라는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계급대중과 국민을 대립시키는 잘못된 쟁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데올로기적․정책적으로 오른쪽으로 경도될 것이 분명한 외연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좌파정당이 대중의 바다에 얼마나 깊고 넓게 자리잡을 것인가이다.
종북정당이란 평가는 민주노동당의 노선이 이북의 노선과 이북의 조건에 기대거나 비판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제출된다.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는 것이 북핵자위론 발언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북한인권에 대한 태도로도 이어진다. 북핵이든 북한 인권의 문제이든 이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태도와 입장의 문제로서, 이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분명 있을 수 있다. ‘종북’이란 평가는 이를 넘어선다. 정당의 강령, 노선, 전략의 문제이다. ‘종북’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서로의 차이가 분명하다면 이는 하나의 정당안에서 논쟁과 토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또한 대중의 ‘반북’ 의식에 편승한 비판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데모당’이란 평가는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을 폄훼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그리고 다양한 대중행동의 양식을 부정하는 사고도 내포되어 있다. 이들은 파업과 시위가 유력한 무기이므로 자신의 권리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데모’를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대중에게 설득력있고 다가갈 만한 정책과 의제를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원내 의석이 극소수인 조건에서, 대중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아직은 대중운동이 더 활성화되어야 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더욱 기여할 진보정당은 지금보다 더 많은 ‘데모’를 해야 한다. 그것도 제대로 말이다.
만약 위와 같은 근거 때문에 좌파정당이 위기에 봉착됐다고 하면, 그것은 매우 편협한 사고이거나 번짓수를 잘못 짚었다. 이는 한국사회당이 하나의 세력으로 대중적인 인지를 획득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3-
좌파정당운동이 위기를 맞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현 신자유주의 체제를 뛰어넘을 비젼과 가치, 그리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전략과 운동의 부족에 있다 할 것이다. 대중의 욕망에 자리잡은 ‘성장과 그에 따른 이익’을 뛰어넘을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가치와 삶의 원리,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데에 있다. 2002, 2004년 선거에서 보여줬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등의 사안별 전략에서 더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전략과 운동이 부재했다. 이는 어쩌면 좌파정당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지 못한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대선 시기 어느 좌파정당후보의 말처럼 ‘신자유주의 반대’ ‘자본주의 반대’는 ‘가치와 도덕’일 순 있어도 ‘전략과 운동’으로 설정하기엔 ‘2% 부족’하다. 역설적이게도 좌파정당에 좌파정치가 부재하다. 그 결과가 위기를 낳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단초는 우선적으로 최근 회자되고 있는 ‘진보의 재구성’이란 언명처럼 자기정체성에 대한 정립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의 확립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평등, 평화, 연대, 생태’를 지향한다느니, ‘초록좌파’를 지향한다느니 하는 일종의 가치중심의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치 중심으로 정체성을 얘기한다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한국사회당, 초록당, 계급정당으로 나뉘어질 필요가 없다. 하나로 뭉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러한 가치에 모두들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각각의 진보정당은 ‘운동권 동창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가치중심의 정체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좌파정당이라 일컬어지는 제 세력은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있지 못하다.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사회민주주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앞에서 얘기한 가치를 공통적으로 추구한다고 천명한다. 이와는 다르게 ‘혁명적 사회주의’를 내걸지만, 강령은 사회민주주의나 다른 사회주의와 별로 다를게 없는 세력도 있다.
후보 경선을 포함하여 대선 시기 제출되었던 제반 공약의 내용을 보면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은 신케인즈주의적 정당(혹은 사민당의 우경화노선)으로의 정립이냐, 아니면 “현대적 사회주의정당”으로의 정립이냐라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경선 당시 권영길 후보의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력을 고려해 볼때,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이라는 선거케치프레이즈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진보적 성장론’ 등에 근거하여 판단하건데 민주노동당의 주류노선은 반자본적인 성격을 외피로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중국경제가 자본주의 경제인 것처럼 말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남북한 통합을 통한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의 길이다. 북의 자원과 값싼 노동력은 남한 자본이 막힌 길을 뚫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다. 남북FTA, 남북경제공동체, 동북아경제공동체, 환동해경제공동체 등 문국현, 자유주의 세력이 주장하는 길과 그 개념을 달리할 뿐 동일한 프레임 위에 서 있다. 이윤을 창출할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즉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프레임이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우는 경제론 또한 그 지반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심상정이 제창했던 세박자 경제론도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사회당은 ‘사회적 공화주의노선’을 내세움으로써, 사민주의정당도 아닌, 사회주의정당도 아닌 서구의 신좌파정당노선에 가까운 정체성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당이 대선기간에 발표한 공약이나 정치적 언명을 보면 이같은 규정이 정확하다고 볼 수 없는 근거도 여럿 제시된다. 이념적 지향과는 별도로 정책이나 공약은 자유주의적 좌파공약에서부터 사민주의적 색채수준의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본주의의 견실한 발전’ ‘지식과 사람중심의 경제’ ‘통제적 개방론’ 등 경제정책을 언급하는 면에서는 문국현과 가장 가깝고, ‘국민기본소득’ 도입 등에 있어서는 사민주의 좌파의 냄새를 풍긴다. 여러모로 ‘진보대연합’ ‘진보운동의 혁신’ 등을 내걸면서 한국사회당 내부는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었고, 총선 전술을 둘러싼 논쟁과 총선 이후과정에서 한국사회당의 일부는 탈당을 하였다.
노동자계급정당세력이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반자본’에서는 명확히 규정하지만, 그 외 ‘혁명적 수사’를 천명하는 것 말고는 아직은 구체화된 것이 없다. 다만 당의 성격으로 ‘사회주의’와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가장 명확하게 천명한다.

좌파정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모색과 논쟁, ‘진보의 재구성’과정은 사민주의, 사회주의, 사회적 공화주의 등 80년대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이어 21세기에 걸맞는 사회적 이념과 대안전략을 둘러싼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현대적 사회주의정당노선과 신좌파정당노선, 혁명적 사회주의정당노선의 사이는 필자가 판단하건데 ‘한강’이 아니라 ‘샛강’이 놓여 있으므로 얼마든지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는 ‘반자본’이란 바리케이드의 이쪽이다, 저쪽이다라고 하면서 서로를 비판한다. 이러한 좌파정당운동을  ‘하나로 모여라’라는 당위로 결집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갉아먹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상승하는 길항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윤리가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4-
현재의 좌파정당운동의 분열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의 노선 차이속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진보의 재구성’등의 논쟁과 모색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좌파정당으로 재결집할 수 있을 지는 불분명하다. 3-4개의 좌파정당이 출현하고 서로 경쟁하는 현실이 대두될 지도 모른다. 좌파정당의 재구성과 재편은 1-2년내에 이루어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과 2012년 총선을 염두에 두면서 보다 중기적인 수준에서 벌어질 것이다.
좌파정당들의 재편과 재구성은 사실 당운동 그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87년 이후의 노동자운동의 성장과 96,97총파업투쟁의 효과가 민주노동당을 낳고, 노동자 대중운동과 학생대중운동에 기반한 여러 정치세력이 한국사회당을 비롯한 현재 정치세력의 흐름을 탄생시켰다.  현재 좌파정당운동의 위기는 노동조합운동, 학생운동 등 대중운동의 위기와 동떨어진 게 아니다. 향후 ‘새로운 좌파정당운동’을 추동할 대중운동은 침체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 정치가 아니라 ‘문제는 대중운동이다’ 라는 클린턴이 선거구호에서 써먹었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프레임의 복사판이 떠돌기도 한다. 그러면서 2002년 미선․효순 촛불집회,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 그리고 최근의 광우병 쇠고기반대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대중의 흐름의 뒷꽁무니도 쫓아가지 못하는 운동진영의 무능을 꼬집기도 한다.

이를 본따서 얘기한다면 ‘문제는 정치야, 좌파정당운동이란 말이다’라고 하고 싶다. 사실 한국사회내의 운동의 질곡과 정파적 분열은, 그리고 그에 따른 대중운동의 질곡은 민족주의 노선을 제외한다면 ‘당운동 노선’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당운동’과 관련한 논쟁은 ‘전략당이냐 전술당이냐’ ‘합법정당이냐 아니냐’ ‘혁명정당(전위정당)이냐 아니냐’ ‘반자본 정당이냐 아니냐’ 차원에서 제기되었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진보적민주주의, 사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적 공화주의, 21세기 사회주의, 당운동비판(비국가변혁) 등으로 콘텐츠를 함유한 논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이 구체적인 대중프로그램과 전략으로 이어질 때 좌파정당운동은 대중조직운동과 함께 상승과 침체의 운명을 같이 한다.

 

-5-
이 지점에서 정당운동과 사회운동, 대중운동 내부의 ‘좌파’-좌파의 좌파-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흔히 당운동 좌파, 사회운동 좌파, 노동운동 좌파라 일컬어보자. 이렇게 나뉘어지게 된 데에는 87년이후 다양하게 분출한 계급대중운동과 사회운동 속에서 각각의 강조점이 달랐던 것에도 이유가 있지만 91년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좌파운동의 통일된 좌표를 형성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분화되는 사회적 스펙트럼 속에 각각의 운동을 성장시켜 왔기 때문이다. 즉, 87년 이후 분화되는 대중의 다양한 요구 속에 그냥 몸을 내맡겨 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좌파세력은 생존권, 기본권 방어와 사수 차원에서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는 노조운동 수준만이 아니라 인권, 평화, 생태, 여성 및 각종의 부문운동에서도 개별적인 대응 특히, 방어적 수준의 운동으로만 대응해 왔다. 이에 따라 단 한 번도 현실적인 대안세력으로 한국사회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 결과 ‘좌파’들은 신자유주의 모순의 심화에 따른 ‘반자본의 정치’를 형성하지 못한 채, 대중에게 잊혀지고 있다. 누구보다도 신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운동의 정치로, 대중의 운동으로 형성하지 못하고 각각 운동 영역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수준으로 머물러 있다.

현재 ‘당운동좌파’는 당운동에 대한 비젼과 전략에서 구체성이 없다. 단지 의회정당․선거정당이 아닌 사회운동적 정당을 노선으로 제출한다. ‘비제도정당’도 ‘사회운동정당’과 내용면에서 질적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사회운동좌파의 현실은 '시민없는 시민운동'과 비슷하게 '대중없는 사회운동'이라 명할 수 있다. 주요하게 소수의 활동가 중심의 실천이 전부이며, 계획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운동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단기적이고 즉자적인 대응이 중심이다. 2007년 사회운동포럼을 열면서 이들은 대중운동의 혁신과 강화에 대한 많은 고민과 실천을 모색중이다.
노동운동좌파 또한 미래전략이 부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항상 수식어 운동을 해왔다. 계급적 민주노총, 변혁적 산별노조 등이 그것이다. 즉 이들은 노동조합운동의 '일 분파'로서의 미래가 현재까지 그/녀들의 전략의 전부였다. 이제는 일분파가 아닌 ‘독립적 세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아직 마련된 것은 없어 보인다.

객관적으로 보건데 이러한 운동진영 내부 ‘좌파’의 현실은 그 전망에서 밝아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앞날을 열어나갈 현실 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10년간 신자유주의가 몰아부친 광풍의 결과로 대중의 삶이 어려워졌다. 이러한 조건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성찰,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운동내적으로는 정당운동의 위기가 다시금 정당운동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있었지만, 민주노총에 민주노동당 당원은 없었다’라는 언명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비정규직투쟁, 한미FTA투쟁 등에서의 공동실천과 대응 등 다각적인 흐름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싹들을 더 키워나가면서도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고리를 찾아낸다면 좌파의 미래가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6-
당운동 좌파세력은 최근 정당운동의 위기와 분열과정에서 필자도 참여한 바 있는 ‘변혁정당 논의모임’을 구성하여, 좌파정당운동의 방향과 성격에 대해 의견을 제출한 바가 있다. 노동자의힘은 2008년 총회를 통하여 올해 말이나 2009년 초쯤에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제출된 바 있는 당운동 노선과 관련하여 좀더 다듬과 성찰해야 할 내용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들은 크든 작든 ‘노동조합운동’과 그를 둘러싼 흐름과 실천에 기반해 있다. 따라서 생산현장중심의 노동자주의적인 색채가 짙어보인다는 점이다. 생산현장과 작업장에서 자본과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장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이 기업차원에서의 조합주의적 실리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설명은 임금 및 고용, 노동조건을 둘러싼 투쟁에서의 ‘비타협성’이외엔 거의 없다. ‘비타협성’ ‘전투성’이 자본의 ‘유연성’을 뛰어넘을 거 같지는 않다. 이들의 사회주의관 또한 경직되거나 편협된 측면을 내포한다. ‘소유’에 국한된 사고가 지배적이고 결국 실천에서는 큰 규모의 사업장 위주로 편향되어 있다. 조직운동적 측면에서 대중적 관점이 부재하다. 이들은 ‘자각되고 훈련된 사람’의 결집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구별이 모호한 시대이다. 이러한 구별은 고립되고 왜소화된 운동을 낳는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일면적이고 단편적임을 부정하지 않으며, 몇마디, 몇 줄로서 평가를 대체해서도 안됨은 물론이다. 당운동 좌파세력의 건강성은 무엇보다 ‘반자본’을 분명히 한다는 것 그자체에 있다.  운동의 ‘우향우’를 견제하는 현재의 존재감을 넘어, ‘장외세력’이 아닌 제도 안과 밖을 아우르는 세력으로서 대중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당운동 좌파의 일차적 과제이다.

 

-7-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고리는 많다. 우선적으로 ‘당운동(정치운동)’에 대한 관점 및 지향의 통일이 중요할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좌파정당’이 필요하다면 현존하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한국사회당과의 관계 및 이들의 재편을 비켜갈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당운동좌파들의 논의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당운동에 대해 ‘최대공약수’적 합의보다는 ‘최소공배수’적 의견을 중심으로 모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반자본’을 중심으로 하여 ‘통일에 앞서 평화’ ‘성장보다는 삶의 질’ ‘여성주의적 가치’ ‘인권과 민주주의’ ‘국제주의적 실천’ ‘생태적 가치’ 등의 가치와 ‘투쟁정당’ ‘대안정당’ ‘대중정당’ ‘운동정당’ ‘꼬뮨적 정당’ 등 당의 역할을 공통분모로 하는 개인과 집단(세력)이 참여하는 틀을 형성하는게 어떨까 싶다.     
당운동과 더불어 이데올로기(담론)지형, 대중운동과 전선(연대)운동에 대한 계획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 지점은 다음과 같다. 하나,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질서에 대한 대응을 공동의 실천과제로 삼아야 한다. 둘,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동실천과 모델의 형성이다. 이는 제도적, 비제도적 실천을 아우른다. 셋, 대중적 교육프로그램의 공동개발과 참여이다. 넷, 이념적, 전략적 모색의 공동 추진이다. 다섯, 공동의 이데올로기적 무기의 발전이다. 여섯, ‘민주노총’을 뛰어넘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 모색이다.
이러한 고리는 당운동좌파든, 사회운동좌파든, 노동운동좌파든 독자적으로 마련해 갈 수가 없다. 설사 마련한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매우 길 것이며, 그 수준은 '국가적'이라기 보다는 '써클적'인 차원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의 역량을 재배치하더라도 이 공동의 고리를 풀어가기 위한 역량투입과 실천을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고리를 풀어내기 위해 빈곤, 문화, 의료, 교육, 인권, 평화운동 등 사회운동의 다양한 영역은 그 자체로 발전하면서도 기여하는 메카니즘을 형성해야 한다.  
이 과정속에서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 사회적 소수자의 자기조직화와 권리 주장, 실현을 위한 운동 △제반 보편적 가치실현을 위한 사회적 의제를 중심으로 한 연대운동 △생태적 지역꼬뮌의 건설과 이들의 전국적 네트워크의 형성이라는 삼각축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당운동과 대중연대운동 그리고 꼬뮌건설운동은 좌파운동의 트라이앵글이다. 현재 좌파운동은 90년대 이후 20여년간의 긴 동굴을 지나서 이 트라이앵글의 각각의 변을 만들기 위한 초입에 서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가혹하긴 하지만 갈 길이 아직 먼 셈이다.    

 

-8-
다시한번 언급하자면 좌파정당운동은 ‘자각되고 훈련된’이들만의 운동이 아니다. 당운동 자체가 대중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색깔’만을 가진 정당운동이란 사실 없다. 만약 이를 추구한다면 대중운동이 아닌 소그룹운동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간다면 스탈린식 정당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울러 항상 강조하는 ‘계급성’은 선험적이거나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변혁적이냐 개량적이냐 하는 구분도 정당의 강령으로 대체되거나 구분이 가지 않는 것임은 일종의 ‘정치적 수사’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당운동을 중심으로 여타의 운동을 수직배치배열하는 사고 또한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한다면 향후 좌파정당운동의 전개 과정은 이념․조직․활동․문화의 재구성의 새로운 창출의 과정과 동일할 것이며, 이 과정은 또한 대중주체형성의 과정일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개입과 그것을 담보해 낼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신자유주의’노선을 추종하는 이명박정부의 집권, 보수우익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정치지형은 운동진영이 ‘진보의 재구성’ 자체에만 몰두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특히 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안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권력과 체제대안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어찌보면 현재의 좌파정당운동의 위기는 ‘87년 체제’에 머물러 있는데서 출발했을 지 모른다. 87년체제가 온전한 신자유주의체제로 자신의 생명력을 다했다면, 군사독재시기를 마감시키고 87년체제를 낳은 민주화운동처럼 신자유주의체제를 마감시키고 다른 체제를 형성하는 운동속에서 좌파정당운동의 운명이 결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운동을 미래의 운동은 무엇으로 기록할 것인가? 그 ‘무엇’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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