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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북한 인권문제 바라보는 다른 시각들 - 존 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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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문제를 보는 몇가지 다른 시각
한반도 전문가 존 페퍼 "인권을 인도적 지원에 연계시켜야 하나"
북한 인권을 둘러싼 논의는 거북스런 주제다. 매우 조심스레 다뤄져야 한다.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제인권상황을 재는 프리덤 하우스의 평가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자유국가’로 분류되지 못한 나라들이 절반에 이른다. 민주국가냐, 자유국가냐도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인권보고서를 펴내지만, 국제정치학자들로부터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 부시 행정부의 잣대로는 미국에 고분고분한 친미 국가는 ‘자유국가’이고, 그렇지 못한 자주적 성향의 국가는 ‘독재국가’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다. 한국에는 두 가지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북한 인권문제를 꺼내는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노리는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과 냉전 수구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미련한 짓이라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한 게 사실인 만큼 짚고 넘어갈 대목은 짚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돌이켜 보면, 인권에 관한 한 우리 한국도 투명하지 못한 지난 역사를 지녔다.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서나 1980년대의 5공화국 억압체제 아래에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프리덤 하우스가 한국을 자유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1988년. 정부수립 40년만의 일이다. 그 뒤 문민정부-국민정부-참여정부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한국의 인권상황은 갈수록 나아졌다는 평가다.

북한 인권문제 거론 현실적으로 현명치 않아

결론부터 대놓고 말한다면,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꺼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체제 특성상 인권보다는 다른 가치(이를테면 국가안보, 체제유지)를 우선하는 북한에게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북핵 폐기를 비롯한 현안을 둘러싼 외교적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9월 6자회담에서 북핵폐기를 전격 합의하고도 후속회담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여기에는 평양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미국의 비외교적 발언이 한 몫 해왔다. “북한이 달러 위폐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비롯, “북한이 범죄정권”이라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발언은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할 6자회담에 재를 뿌린 짓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은 “북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인권문제가 남아있는 한 북·미관계 정상화는 어렵다“고 토를 단다. 북한 인권문제는 두고두고 뜨거운 감자가 될 듯한 분위기다.  

미국 안에서도 북한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미 외교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민간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www.fpif.org)의 단골 기고자인 존 페퍼(John Feffer)의 글 ‘연계시킬 거냐, 말거냐’(To Link or Not to Link)'는 북한인권을 보는 미국 안의 다른 시각들을 보여준다. 페퍼의 의도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다 인권 문제를 연계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존 페퍼는 북한을 세 번, 그리고 남한을 25회쯤 방문한 경력이 말해주듯, 한반도 전문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2003년 겨울 뉴욕 시립대학원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심포지엄에서 페퍼를 만난 적이 있는데, “열린 시각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의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북핵 폐기를 둘러싸고 한반도와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줄다리기를 다룬 ‘남한 북한: 위기시대의 미국 정책’(2003년)의 저자다. 이 책에서 페퍼는 이렇게 미국 역대 행정부들을 비판했다.

“북한의 핵 개발 움직임을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고립시키는 냉전정책을 유지했다. 또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평양의 정권 교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디딤돌로 삼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인 허식을 벗어던지고, 평양 정부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관점에 서서, 북한의 정권 교체를 미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았다”

아래는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www.fpif.org)에 실린 글의 주요내용 요약이다.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기본적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는 문제점에 대해선 미국에서도 널리 공감하고 있지만, 미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합의된 바는 거의 없다.

미 행정부에서는 정책결정자에 따라 인권문제를 핵위기와 인도주의적 지원에 연계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시각이 다르다. 미 의회에서는 인권운동을 전 세계 독재국가들을 겨냥한 정권교체(regime change) 전략이라는 큰 틀에 넣으려 하지만, 재정 문제와 전통적인 세력균형(balance-of-power)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민간단체인 비정부기구(NGO)들도 저마다 입장이 다르다. 복음주의적 기독교단체들은 종교적 자유의 관점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접근한다. 그렇지만 미국 내 주류 인권운동 단체들은 그같은 복음주의적 열정과 강경 전략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처럼 저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전략적 접근 방식이 다른 것은 정책 대안들(policy alternatives)이 다양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미국 안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이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심각한 결점 중 하나는 행정부 차원이나 NGO 차원 모두 근시안적 이었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인권기록(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보인 인권침해기록-필자 주)과 다른 나라에서의 인권을 체제 변화의 명분으로 즐겨 삼아온 부시행정부의 행태에 비춰볼 때, 북한에 대해 보다 효과적인 인권 정책을 짜내기란 어려운 일로 보인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 다양한 행위자들이 전략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연계(Linkage)의 문제

미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 결정에 힘을 지닌 네오콘들(neoconservatives-신보수주의자들)은 1970년대 미 공화당 정권이 소련-중국과의 데탕트(동서화해)를 추구하는 데 대한 반발로 태동됐다. 당시 헨리 ‘스쿠프’ 잭슨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냉전적 사고 틀 속에 갇혀 소련과의 무역에서 최혜국대우를 주는 문제와 인권문제, 특히 소련 유대인의 이민문제를 연계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그들 냉전적 사고의 소유자들은 그 뒤 네오콘으로 탈바꿈,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의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맡았다.

네오콘들이 데탕트, 요즘 용어로 바꾼다면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어려움에 부딪치게 만들었을 것이란 강한 의혹은 현 부시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70년대 소련과의 군축 조약에 대한 불신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대한 거부와도 같다. 소련과의 교역이 늘어나면 소련 정권에게 도움이 된다는 냉전적 시각 또한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개입을 못마땅해 하는 오늘날의 대북 강경파들의 시각과 비슷하다. 포용정책과 인권에 연계시키려는 시도는 데탕트를 저지하기 위해 인권을 내세웠던 1970년대와 닮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안에는 네오콘 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는 미 국무부의 외교관들은 인권문제를 불필요하게 언급하는 것은 어떠한 북핵 합의도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9월 "인권을 무기로 삼는 것에는 관심 없다“(We have no interest in weaponizing human rights)고 말했다. 실용주의적 중도파와 네오콘 강경파들 사이의 화해를 모색하는 힐 차관보는 인권과 핵협상을 드러내놓고 연계시키지는 않으면서, 인권 문제를 (언제라도 논의할 수 있도록) 가시권 안에 두어 왔다. 그는 ”인권문제 해결 없이 북한은 국제사회에 합류할 수 없다“(North Korea won't be able to jo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ithout addressing these violations.)고만 말했다.

한편 제이 레프코위츠 인권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안개 속이다. 레프코위츠는 지난해 9월 “인도적 지원은 인권 문제와 연계돼야 한다”고 뜻을 나타냈다. 그렇지만 부시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미국의 정책이 변하지 않았고 연계 전략은 없을 것”(U.S. policy had not changed and that such linkage would not be made)이라고 즉각 부인 했었다. 레프코위츠의 발언은 미 북한인권위원회가 펴낸 북한의 식량과 인권에 관한 새 보고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 보고서는 "인도적 지원과 인권 문제를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 했었다. (원문 출처: http://www.fpif.org/fpiftxt/2998)

◎김재명:국제분쟁전문기자 겸 국민대강사. 1952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뉴욕시립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경향신문사 기자, 중앙일보 차장, 프레시안 뉴욕통신원 역임. 저서로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2003.선인출판사),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국제분쟁전문가의 전선리포트(2005.지형출판사)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등록일 : 200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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