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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A. 의식 II. 지각 (다시 읽기) §7

{헤겔의 볍증법을 폼내다 <지각>을 엉망으로 읽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한 칼로 곪은 것을 좀 찢어야 겠다. 우선 §7부터 교정해 나갈 생각이다.}

 

 

(§7) 이제 의식이 지각행위를 펼쳐가는 가운데 실지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지켜보자. 다만, 지켜보는 우리들은/헤겔은 바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상이 전개되는 과정과 또 그 대상을 대하는 의식의 태도에서 이미 의식이 하는 경험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의식이 어떤 모순에 빠지고 어떻게 허우적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지] 의식의 태도[경험도정]에 널려있는 모순의 전개과정만 살펴보면 된다. — 지각으로서의 자아가 받아들이는 대상은 순수한 일개의 것으로1 제시된다. 의식은 또한 일개로 제시되는 대상에서 보편적인 성질을2 지각한다. 그런데 성질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개성Einzelheit안에 있지 않고 그것의 밖에 있다. 그 결과 의식은 대상으로 자기 곁에 와 있는 것의3 존재양식을4 일개성의 존재양식으로 파악했는데, 그것이 대상의 참다운 존재양식이 아니었다고 하게 된다. 이어 의식은 대상이  참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어긋나는 참답지 않는 일은das Unwahre자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결론 짖고 자기가 대상을 잘못 파악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의식은 성질의 보편성을 담아내기 위해서 대상으로 자기 곁에 와 있는 것을5 [일개가 아니라] 오히려 [같은 종에 속하는 모든 일개성을 관통하는] 공동성으로eineGemeinschaft überhaupt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의식은 여기서 멈출 수 없고 나아가[또한] 다른 대상과 대립하고 그것을 배제하는 제한된bestimmte성질을6 지각하게 된다.7 그 결과 의식은 대상으로 그 곁에 와 있는 것을 다른 것들과의 공동성으로, 달리 표현하면 다른 것들과 이어지는 연속성으로 규정했을 때 사실 잘못 파악했다고 하고, 오히려 성질의 제한성Bestimmtheit der Eigenschaft담아내기 위해서는 연속성을 절단하고 대상으로 그 곁에 와 있는 것을 배타적인 <하나>로ausschließendes Eins자리매김할 수 밖에 없게 된다.8 그런데 이렇게 절단되어 있는 <하나>에서 지각하는 의식은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다수의 성질들도9 발견한다. 그래서 지각하는 의식은 대상을 배타적인 <하나>로 지각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대상은 이젠 오히려 앞에서 이야기된 [같은 종의 개물들을 관통하는] 연속성과die Kontinuität überhaupt 같은 것이 되어, [쓴맛, 크고 작음, 부드러움 등] 감각적인 보편성들로서의10 다수의 성질들이 각기 홀로 있고jede für sich, [각 감각에 따라] 규정된 것으로서 서로 다른 성질을 배척하는 가운데 공존하는 보편적인 매체가allgemeines gemeinschaftliches Medium된다. 그러나 자아가 [예지적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실로 지각하는 것은[쓴맛이면 오로지 쓴맛일 뿐인] 단순하고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으로서11 보편적인 매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따로따로für sich 있는하나하나의einzelne [감각적인] 성질일 뿐이다. 이런 [감각적인] 성질은 성질이 아닐 뿐만 아니라[<뭔가 하얀 것>과 같은 구조를 갖는] 특정한 존재가bestimmtes Sein 아니다.12 왜냐하면, [감각적인] 성질은 [tode ti와 같은] 어떤 종이로서의 <하나>에 있는 것도 아닐an einem Eins 뿐만 아니라 [to ti esti와 같은 <ousia>로서의] 다른 것과의 관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성질은 이렇게 오로지 [tode ti와 같은 어떤 종으로서의] <하나>에 달려있거나 [to ti esti와 같은 <ousia>로서의] 다른 것과의 관계 안에 있을 때만 규정되고 [존재하는] 것이다. [뚝 떨어져 홀로 있는 감각적] 성질은 더 이상 스스로 부정[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단지 순수하게 자기자신과만 관계하는것으로dies reine Sichaufsichselbstbeziehen 머무르는, 온통 감각적 존재sinnliches Sein 뿐이다. [이 단계에 오면] 의식은 [결국] 감각적 존재를 대하게 되어 단지 하나의 사념이ein Meinen 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의식은 결국 [예지적?] 지각행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 안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일이 따 끝나지 않고 한 쌍을 이루는] 감각적 존재와 사념이Meinen 스스로 지각행위로 다시 넘어간다는 데 있다. 자아는 이렇게 {시시포스가 애써 정상에 굴려 올려놓은 돌이 다시 원점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과 같이 애써 지각한 것이 결국 감각적 존재가 되어 다시 지각의 원점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과 함께} 원점으로 굴러 떨어져 다시 처음부터 똑 같은 운동을 반복해야 하는 걷잡을 수 없는 되풀이에Kreislauf 휘말려 들어가 {시시포스가 다음에 돌을 굴려 올라갈 때에 여기서는 이렇게 하면 되고 저기서는 저렇게 하면 되고 전체적으로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좀 쉽게 할 수 없듯이} 매 순간마다의 애씀과 모든 애씀이 아무런 흔적과 결과를 허용하지 않는 파기에 의해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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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 <als rein Einer>.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순수하다>란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대상에서 모든 것이 사상되어(abstrahiert) <휠레/Hyle>와 같은 <뭔가>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이 <일개>로 제시된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단지 맛만 감각으로 남아있다고 해보자. 소금의 짠맛을 지각하면서 <일개>라는 것이 과연 의식의 표상으로 나타나는가? 여기서 <일개>라는 것은 시각이 지배적인 역할을 할 때 그런 것 같다. <순수하다>를 모든 것이 사상되어 어떤 언명도 불가능한 상태로 이해하면 <순수한 일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에서 이야기한 개물(個物/Einzelding/Individual)로 이해할 수 있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 1a 19이하에서 명제(Aussage)의 4가지 유형을 토론한다. 언어적인 차원과 존재적인 차원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거기서 주어부에 해당하는 것을 <바탕/hypokeimenon>, 그리고 술어부에 해당하는 것을 <존재하는 것/to on>이라고 하면서 <to on>과 <hypokeimenon>간의 유형을 1) <x는 사람이다>에서와 같이 <to on/여기서는 사람>이 x(바탕)에 대하여 언명되지만 x(바탕)안에 들어있지 않는 경우, 2) <문법지식/grammatike>이 <혼/>에 들어 있지만 그것에 대하여 언명될 수 없듯이 [<혼은 문법지식이다>하면 말이 안 된다.] <to on/여기서는 문법지식>이 <hypokeimenon/바탕>안에 있는 경우, 3) <지식/episteme>과 같이 <바탕>(예컨대 혼)에 들어있으면서 또한 <바탕>에 대하여 (예컨대 문법지식/grammatikē는 지식이다) 언명되는 경우, 그리고 4) 어떤 <바탕>에도 들어있지 않고 또 그 <바탕>에 대하여 언명되지도 않는 경우, 즉 <여기 이 사람/ho tis anthropos>, 혹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개물/Einzelding/Individual>을 구별한다. 그리고 <개물>로서의 이 네 번째 <to on>을 엄밀하고 첫째가고(protōs) 본래적인 의미로서의 <ousia/“본질“>이라고 한다 (범주론 2a 11).텍스트로 돌아가기
  2. 원문 <die Eigenschaft … , die allgemein ist>. 이 표현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형이상학>에 기대어 이해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7권 1028a 10-15에서 <to on>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1) <to ti esti/“이것은 [본질적으로]무엇이냐“에 대한 답>, 2) <tode ti/어떤 종으로서의 이것>, 3) 양과 질, 그리고 4) 양과 질과 같은 방식으로 카테고리가 되는 것들로 구분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되는 <보편적인 성질/allgemeine Eigenschaft>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에서와 같이 <사람>이라는 종으로서 1)에 해당한다고 해야겠다. <보편적인 성질>은 이런 <ousia>로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필연적인 성질/essentielle Eigenschaft>이다. 이런 성질은 <범주론>에서 보았듯이 <소크라테스>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3. 원문 <das gegenständliche Wesen>. 여기서 <Wesen>을 <Anwesenheit>란 의미로 번역하였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 원문 <das Sein>. 여기서 <Sein>은 <ousia>란 의미인 것 같다.텍스트로 돌아가기
  5. 원문 <das gegenständliche Wesen>. 위와 마찬가지로 <Wesen>을 <Anwesenheit>란 의미로 번역하였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6. 여기서 <Eigenschaft>는 <to ti esti/본질적인 성질>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성질인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구별하는 성질이 아닌가 한다. 두 대상을 연결하는 것이 둘 다 똑 같은 사람이라는 <to ti esti>였다면, 이 둘을 구별하고 서로 배제하는 것은 <몸>으로 매개된 <Diesdaheit/여기 이것 성(性)>가 아닌가 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7. 원문 <Ich nehme nun ferner die Eigenschaft wahr als bestimmte, anderem entgegengesetzte und es ausschließende>. 알쏭달쏭한 문장이다. 여기서 <Eigenschaft>는 뭐고 또 <Eingenschaft als bestimmte>란 무슨 말인지, 그리고 뭐하고 어떻게 대립하고 배제한다는 말인지 알쏭달쏭하다.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성질과 다른 성질이 대립한다는 번역은 분명 오류인 것 같다. 문법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성질과 성질이 대립한다고 하려면 <anderem>이 아니라 여성인 <Eigenschaft>를 받는 여성형 <anderer>나 복수형 <anderen>이 와야 한다. 근데 남성형 <anderem>이 와 있다. <anderem>이 다시 중성 <es>로 받아지는 것을 보면 <anderem>은 <gegenständliches Wesen>을 지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tode ti>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8. 이 <배타적인 하나>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tode ti/어떤 종으로서의 이것>이 아닌가 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9. 여기서 <성질/Eigenschaft>이 복수로 등장한다. 그전에는 단수일 수 밖에 없었다. <to ti esti>로서의 성질이 다수일 수 없고 <tode ti>도 역시 한 몸으로서 다수가 될 수 없다. 성질이 다수가 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비본질적인 성질>, 즉 양과 질, 그리고 양과 질과 같은 방식으로 카테고리가 되는 것들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성질들은 몸의 생김새, 성격 등 <tode ti>에 대하여 언명되는 성질(술어)들이라고 해야겠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0. <감각적인 보편성>이 있다는 것은 다른 <보편성>, 즉 예지적(intelligibel) 혹은 noumenal 한 보편성도 있다는 말인데, <to ti esti> 또는 <tode ti>가 이런 보편성인가? 그렇다면 지각이 단지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오성 혹은 이성과도 관계하는 것이란 말인가?텍스트로 돌아가기
  11. 원문 <das Einfache und das Wahre>. 데카르트의 제3성찰에 나오는 <clara et distincta>란 표현이 연상된다. <wahr>를 하이데거의 <aletheia/진리>해석에 기대어 번역해 보았다. <wahr>에 어원적으로 <aletheia>란 의미가 스며있는지는 모르겠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12.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살펴보자. <본질적인 성질>이 아닌 <부수적인/감각적인 성질>은 <ousia>에서 떨어져서 <to on>할 수 없다고 한다(oute chōrizesthai dynaton tēs ousias/형이상학 1028a 23-24). 그래서 <부수적/감각적인 성질>은 오로지 <ousia>에 붙어 있어야만 성질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걸어간다>에서 <걸어간다> 그 자체는 <소크라테스>에서 떨어져서 있을 수 없고, 또 <소크라테스는 술 취했다>에서의 <술 취하다> 그 자체는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란 명제에서 떨어져 나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