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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2/03/13
    엘자 트리올레 (Elsa Triolet)
    ou_topia
  2. 2012/02/14
    즐거운 번역(1)
    ou_topia
  3. 2012/02/04
    횔더린 - "Hälfte des Lebens"에 관한 몇가지 단상 2
    ou_topia
  4. 2012/02/03
    횔더린 - "Hälfte des Lebens"에 관한 몇가지 단상
    ou_topia
  5. 2011/08/21
    번역은 연대다(1)
    ou_topia
  6. 2010/11/17
    Taebaek Sanmaek, Buch 1: An-Feuerung des "Han"
    ou_topia

엘자 트리올레 (Elsa Triolet)

« Ainsi, moi je suis bilingue. Je peux traduire ma pensée également en deux langues. Comme conséquence, j’ai un bi-destin. Ou un demi-destin … Être bilingue, c’est un peu comme d’être bigame : mais quel est celui que je trompe ? »


(Elsa Triolet, La mise en mots, 1969, zit. nach:http://www.florence-herve.com/page-daccuei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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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번역

10대 말 아리따운 나이에 간호보조사로 독일에 온 짝지가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한다. 허리를 구부리고 웃는다. 남도 어느 보건소에서 근무하다가 독일로 오게 되었다. 아이 복이 많았던 시대, 가족계획이 중요하다며 시골 동네 공동 우물터를 찾아 다니면서 아낙네들에게 콘돔을 나눠주다가 독일에 오게 되었다.

„처녀는 잘 모른당께“
„뭘 몰라요. 날짜 계산해서 조심하면 되잖아요.“
„글쎄, 아가씨는 잘 모른당께. 남자를 모른당께.“

암튼, 이러다가 독일에 오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독일 사람과 똑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녀를 둔 간호사들은 자녀수당 등 독일 간호사들보다 급여가 훨씬 더 높았다.

어젠 당시 독일말 구사때문에 한바탕 웃었다. 종종 웃는다.

음주운전하다가 음주단속에 걸리면

„Polizei Onkel, ein Auge zu ja?“

한번 눈감아 주라는 이야기를 직역해서 표현한 것이다. 독일 경찰이 아마 어리둥절해서 눈감아 주었을 것이다.

„Doktor, eine Maus, hoch und runter Bein, und ganz sauer.“

의사 선생님, 다리에 쥐가 나고 시큰거려요란 말이다. 왠 놈의 생쥐가(Maus) 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고, 다리에 왜 신맛(sauer)이 나는지 아마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처방이야 제대로 했겠지.

독일 간호사들이 쉬는 시간에 수다를 떨고 있으면 뭔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 듣지 못해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뭘 할지 몰라 하다가 환자실에서 벨을 누르면 구세주 만난듯이 얼른 일어나 달려가기 일수였다.

„Schwester, ich brauche eine Pfanne.“

저 환자 왜 저러지. 후라이팬이 왜 필요하지. 병동에서 환자가 왜 후라이팬이 필요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것다하면서 부엌에서 후라이팬을 들고 갖다주었다.

„Schwester, nicht diese Pfanne.“

이런 후라이팬이 아니다? 다른 종류의 후라이팬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생긴 거지?

종잡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수간호사에게 가서 말한다. Pfanne(후라이팬)을 갖다 달라 해서 후라이팬을 갖다 주었더니 그게 아니래요.

병원에서 쓰는 납작한 요광을 보여주면서 이것도 „Pfanne“라고 설명.

번역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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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더린 - "Hälfte des Lebens"에 관한 몇가지 단상 2

2.2 Ihr holden Schwäne

‚hold’의 의미도 쉽지 않다. 요새 쓰지 않는 말이다. 좀 아이러니하게 가미하지 않으면 느끼하기 때문이다. 횔더린이 살던 당시에는 안 그랬단다 (Ulrich Knopp, 같은 곳 참조). 그냥 ‚사랑스럽다’란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루크레티우스 „De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첫 줄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Aeneadum genetrix, hominum divomque voluptas,/alma Venus“/’에네이스 가문의 시조이시며, 인간과 신이 모두 군침 흘리며, 젖 가슴이 풍부한 비너스여’. 근데 이 표현에서 „alma Venus“/’젖을 주는 비너스’를 독어로 흔히 ‚holde Venus’로 번역한다. 이에 기대어 ‚hold’의 의미엔 젖 먹이면서 아이를 굽어 살펴보는 엄마의 자세가 스며있다고 짚어보자.  
 
헛다리 짚은 것일까? 어원사전을 보니 안 그런 것 같다. ‚hold’은 (광산이나 채석장 등에서 석탄 혹은 돌을) ‚비스듬하게 높이 쌓아 올린 더미’란 의미가 있는 ‚Halde’와 어원을 같이 한다. 이런 어원에 기대어 롤프 쭈버뷜러(Rolf Zuberbühler)는 ‚hold’가 백조가 머리와 목을 비스듬히 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다고 한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 다. 그리고 1793년 요한 크리스토프 아델룽(Johann Christopf Adelung)이 편찬한 사전 „Grammatisch-kritisches Wörterbuch der Hochdeutschen Mundart, mit beständiger Vergleichung der übrigen Mundarten, besonders aber der Oberdeutschen“은 ‚hold’를 „Geneigt, des anderen Glück gerne zu sehen, Liebe gegen denselben zu empfinden/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것을 즐겨 살펴보고 애정을 느끼는 쪽으로 기울어진 [그런 disposition이 있는]’이라고 설명한다 (Ulrich Knopp, 같은 곳 참조).

„Ihr holden Schwäne“하면서 백조를 부르는 말걸기(Anrede)에는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 말걸기로  시적 주체가 등장하다. 근데 한가지 눈에 띄인다. 주체가 주체로 등장함과 동시에 아무런 형태없이 사라진다.

시적 주체(poetisches Subjekt)는 보통 강력한 창조자(poietes)로 등장한다. 시적 주체가 등장하는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 호라티우스가 „반두지아의 원천/fons bandusiae“을 노래하는 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 네번째 연, 2행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me dicente“. 문장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따로 우뚝 서 있는 소위 ‚ablativus absolutus’격으로 시적 주체가 등장한다. 해석해보자면 반두지아의 원천이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노래하기/말하기 때문이다’란 것이다.

근데 여기선 그렇지 않다. 백조에 말을 거는 시적 주체가 대려 객체가 되어 ‚날 좀 봐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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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더린 - "Hälfte des Lebens"에 관한 몇가지 단상

ou_topia님의 [횔더린 - Die Hälfte des Lebens (반쪼각난 삶)] 에 관련된 글.

 

횔더린의 시 „Hälfte des Lebens“에 관한 몇가지 단상


1.

번역에도 „유물론“을 적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유물론적 번역“이란 용어가 있다면 아마 번역할 때 작품의 „정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작품의 문자에, 그 몸에, 그 몸의 짜임새(Textur)에, 그리고 그 몸에서 나오는 소리에 주목한다는 말을 담고 있을 것이다.

2.   

„Hälfte des Lebens“의 번역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우선 횔더린이 사용하는 낱말의 의미가 생소하다.

2.1    „hänget“

„hängen“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의미를 보자면 ‚달려 있다’다. 이 의미로 첫 문장 „das Land hängt  in den See“를 번역하면 ‚들판이 호수(안으)로 달려 있다’가 되겠는데 생소하다. 이 생소함을 이런 저런 그림을 그려 해소할 수 있겠다. 그러나 횔더린이 이 시를 쓸 당시 „hängen“이 가졌던 의미를 보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 당시 „hängen“은 ‚einen Abhang bilden/경사를 이루다’란 의미로도 쓰여졌다 (Ulrich Knoop, Hälfte des Lebens, Wortgeschichtliche Erläuterungen zu Hölderlins Gedicht, http://www.klassikerwortschatz.uni-freiburg.de/admin_storage/file/literatur/knoop_ulrich_haelfte_des_lebens.pdf 참조)

„hängen“의 이런 의미는 해당 행 소리의 흐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Mit gelben Birnen hänget
Und voll mit wilden Rosen    
Das Land in den See.

1, 2행에서는 올림음(Hebung)과 내림음(Senkung)이 잔잔하고 느릿느릿하게 잇대어 이어진다. 마치 구릉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같다. 마리 루이제 카쉬니쯔(Marie Luise Kaschnitz)가 „Hälfte des Lebens“를 처음 읽었을 때 보덴세(Bodensee) 호수 근방의 풍경을 연상했다고 했는데 (M.L.Kaschnitz: Mein Gedicht, in: Zwischen Immer und Nie, Essays 1971, http://www.zum.de/Faecher/D/BW/gym/hoelder/haelfte.htm 참조) 그 이유가 여기 있지 않나 한다. 보덴세로 이어지는 슈바벤 알프의 산세는 거칠지 않다. 잇달아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구릉지대여서  아늑하다(lieblich).
 
3행의 소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짧은 내림음 „das“에 길게 이어지는 올림음 „Land“가 따른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잠깐 쉬었다가 „in“으로 넘어간다. 마치 구릉을 힘겹게 올라 잠깐 쉬면서 멀리 펼쳐지는 들판을 바라보는 듯하다. „Land“에  세개의 올림음이 따른다. 근데 그 높이가 천천히 떨어진다. 정상 „Land“에서 최하 „See“로 마치 미끄러지듯이 떨어진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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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연대다

 

종종 번역이 뭘까 묻는다. 번역이론으로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번역학이란게 나온다. 그니까 번역과학(Übersetzungswissenschaft)이다. 번역을 여태 경험을 요구하는 기술(Techne), 이론이 있다면 경험담(translation studies) 정도로 생각했는데 웬걸 체계적인 과학이란다.

 

번역을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고, 경험도 풍부하지 않은지라 번역해 놓고도 늘 자신감이 없고 만족하지 못한다.

 

근데 만족할 때가 있다. 이럴 때다.

 

아주 일상적인 표현인데 사전적으로(키케로의 표현을 빌리자면verbum pro verbo) 번역해 놓고 보면 뭔가 아닐 때가 있다. 그럴 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웅성웅성 수많은 독일말, 우리말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독일말 목소리와 우리말 목소리가 딱 만날 때가 있다.

 

이럴 때 번역은 어디를 출발해서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출발한 양자가 어디서 만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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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baek Sanmaek, Buch 1: An-Feuerung des "Han"

1. Tagesanbruch ohne Sonnenaufgang

 

Der abnehmende Mond hing – wann ist er denn aufgegangen? - windschief am östlichen Himmel. Sein Licht war, da er nun, schwindsüchtig, Nacht für Nacht ein bißchen mehr von sich abschabte, glanzlos und verlor sich im Nirgendswo, dass es einem unheimlich zumute war. Weder war das Mondlicht recht in der Lage, die Dunkelheit ganz durchzudringen, noch vermochte diese jenes souverän von sich zu weisen. Von beiden zur gleichen Hälfte durchdrungen, graute der Morgen und es war, als ob ein wässriger Nebel sich über die ganze Erde gelegt hätte. In dieser aschgrauen Fahlheit lag die Flußmündung, in die nun das Meerwasser eingedrungen war, sowie das Schilffeld, das, wie Baumwollpflanzen, die ihre Kapseln geöffnet haben, ein Meer aus weißen Blüten bildete, in einer unerreichbaren Ferne. Und der Weg auf dem langen Deich entlang der Küste setzte sich fort wie eine grau in grau gelegte Spur, an deren Ende die Kreisstadt, noch schlafend, lag. Die Felder und Dörfer jenseits der Stadt waren aber, vom mehrfachen Schleier des Halbdunkels eingehüllt, spurlos verschwunden.

 

Ki-ruk, Ki-ruk, Ki-ruk...

 

Plötzlich Rufe fortziehender Wildgänse. Sie brachen in die reglose Stille hinein und ließen die Luft vibrieren. Ein Zug von Wildgänsen flog in einer Formation, die einem seitlich und mit der Spitze nach vorn gelegten V glich, gegen Osten davon. Sie hatten noch nicht ihre Flughöhe erreicht. Anscheinend waren sie erst etwa vom Schilfrohrfeld nahe der Eisenbahnbrücke aufgestiegen. Vielleicht waren sie von einem Jäger aus dem Morgenschlaf aufgeschreckt worden und hatten sich gleich, sich dem Schlaf entreißend, auf die Flucht begeben, um dem Jäger und seinen gefährlichen Fängen zuvorzukommen. Sie hielten sich auf das offene Meer zu, das sich weitete. Da war das Schilfrohrfeld auch weiträumiger und tiefer. Sie flogen in Reih und Glied, was weise anmutete, und streuten dabei ohne Unterlass Rufe aus, deren Klang wie Glasperlen klar und durchsichtig in der luftigen Leere hall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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