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9/17 01:10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오늘은 하이텍 심사청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노숙농성을 시작한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고 단식을 시작한지 31일이 되는 날이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불안해 하면서 농성장으로 향했다.

 

농성장으로 들어가는 영등포 로타리 입구에 전경차가 서 있다. 병력이 늘어난 것을 보고 '설마...' 했다.

 

집회를 하는 와중에도 근로복지공단 앞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는 근로복지공단의 직원인것 같았고 일부는 경찰들이었다. 사회를 보던 동지가 '단식 동지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절반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범이 되는 것이고 노동운동이 공범이 되는 것이다'란 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인다.

 

가슴속으로 뜨거운 것을 삼켰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찰들과 직원들을 보면서 '안 돼는구나' 싶었다.

 

영등포역으로 문화제를 하러 이동하여 준비하는 사이 결과를 들으러 들어갔던 노무사 동지는 '전원 불승인'이라는 결과를 알려주었다. 이 결과를 알고도 즐겁고 힘차게 문화제를 진행해야 하는 집짱이 안 쓰러워 보였다.

 

다들 대충 알고 있건만 크게 웃고, 크게 박수 치고, 크게 움직인다. 모두들 그러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신나게 웃고 신나게 떠들고... 아무도 우울해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그게 더 아팠다.

 

"이거 보다 더 심한 일도 많았는걸..."이라고 지회장 언니가 이야기한다. 도대체 지난 세월동안 얼마나 힘들게 싸웠으면 전원 불승인이나도 저럴까싶어 다시 한번 뜨거운 것을 가슴에서 삼켰다.

 

전술회의를 하고 몇몇 동지들이 모여 뒷풀이를 했다. 다들 술이 점점 취해간다. 지회장 언니는 단식하는 와중에도 매운탕을 끓인다고 난리다. 평소와는 다르에 힘이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사람들이 "오늘 이상하네, 뭐 먹었어요?"하고 묻는다. 지회장 언니 "13명 전원 불승인 먹었잖아"한다. 또 뜨거운 게 가슴에서 넘어간다.

 

솔직히... 도망갈 곳을 만들어 주길 바랬다. 정말 말도 느려지고 행동도 느려지고, 걷는 것도 휘청거리는 단식자들을 이러다가 죽이겠다 싶었다. 병원이라도 미리 알아놔야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너무 말라서 광대뼈가 드러나는 그 얼굴들이 너무 아파서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주길 바랬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결국 도망갈 곳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이제는 자기들 소관이 아니니 알아서 하라면서 벼랑끝으로 밀어 버렸다. 쥐도 궁지에 처하면 고양이를 문다했다. 정말 끝장내는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정말 "도저히 분해서 방용석의 손가락에 상처라도 하나 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물러 설 수가 없다"는 집짱의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벼랑끝에 몰렸으니 떨어지더라도 밀어 붙인 놈들 다리라도 잡고 같이 떨어져야겠다. 160여명의 동조단식자들이 1600명이 되고 만 6천명이 되도록 싸워야겠다.

 

언니들의 얼굴에 환환 웃음을 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진심으로 기쁘게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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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7 01:10 2005/09/17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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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총 2005/09/19 0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이사간다. aortan.egloos.com으로. 친구들하고 같이 이사가기로 했거던...
    그래봐야 집에 잘 안들어가니까... 놀러와도하고 별 볼일 없을 거야...ㅋㅋ
    그냥... 이사갔다는 얘기 하고 싶어서...^^

  2. 해미 2005/09/20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총/ 그래요. 종종 놀러가지요. 글구 아랫글에 형이 얘기한 변화와 발전에 대한 문제는 좀 더 이야기가 필요한거 같아요. 동의하지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형의 활동에 대해 이런 저런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겨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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