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9/23 21:46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한국땅에서 '연봉도 쎈 것들이 맨날 파업한다'고 욕(?)도 먹고 '비정규직 투쟁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도 듣고 있는 노동조합의 보고서 일부를 손보고 있는 중이다. 내일 무박 2일의 연구진 합숙을 앞두고 서론 부분을 정리중에 있다.

 

몇 개월을 걸려 고생 고생한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 지도 궁금하고, 최근의 정세와 관련하여 함께한 동지들이 겪었던 마음의 고생과 부담과 짜증도 생각났다. 그리고  38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아이구 동지의 걱정과 집요함이 부담스럽고 눈물나게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에 보고서는 나와야만(!) 하는것... 계속 쓰기 싫어지는 마음을 다 잡으며 컴터 앞에 앉아 있다가 문득, 내가 어제 오늘 보고 들은 '그' 대공장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1.

 

추석 연휴전 부탁받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그' 대공장의 연구소에 노동조합 노안간부로 있는 동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제까지가 추석 연휴였는지라 어제는 연휴 바로 다음이라 너무 바쁠것 같아서 일부러 하루 늦게 한 전화였다.

 

"추석연휴 무쟈게 길더만요. 추석은 잘 보냈어요?"

"아니요. 계속 너무 바빴어요. 계속 사망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아니 무슨일인데요?"

 

라는 나의 질문에 추석 연휴 내내 사고 수습하느라 바빴다는 동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랬다.

 

추석연휴 기간에 3명의 '그' 대공장의 정규직 동지들이 3명이나 죽었다고 했다.

 

한 동지는 기러기 아빠였는데, 이런 저런 문제들로 인하여 자살을 했고, 한 동지는 뇌출혈(소위 과로사)로 사망했고, 한 동지는 전에 작업중 크게 사고가 나서 치료중이던 동지였는데 패혈증이 생기는 바람에 사망했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였다는 동지는 돈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미국이나 캐나다도 못 보내고 베트남에 부인과 자식들이 있었다한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기러기 아빠여도 이렇다. 뇌출혈로 사망한 동지는 일하다가 잠시 쉴 만한 추석 명절에 사망한 것이고, 작업 중 다쳤던 동지는 결국 그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이게... '그' 대공장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병원에서 보건관리대행을 하고 있어 3개월에 한번정도 방문하는 사업장중에 '그' 대공장의 정비지부가 있다. 200여명의 보건관리를 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2003년까지 우리 학교 병원에서 특수건강검진을 하던 '그' 대공장은 올해 대한산업보건협회라는 곳에서 검진을 받았다 한다. 검진 결과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200여명이 조금 넘는 사업장에 직업병, 일반병(개인질환)을 다 합쳐서 4명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일반인구의 유병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병률이라니... 장기 근속자가 그리 많고,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이 동네에 말이다.

 

의혹이 확 생기면서 집요함이 발동되어 사람들의 검진결과를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이 안된다.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신장 질환등이 의심되어 '당장' 병원 진료를 받아야 될 사람들이 병원에 가보라는 판정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리' 정도의 판정을 받았고, 심한 경우에는 '정상'도 있었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에도 그랬다. 2003년에 우리 병원에서 분명히 직업성으로 판정을 냈었는데 그 기관에서는 비직업성이라는 판정을 했다. 결과를 봐도 직업성이 맞다. 어떤 경우에는 한 노동자에 대해서 직업성으로 요관찰자라는 판정을 내렸다가 다른 문서에는 비직업성 난청으로 판정을 하기도 했다.

 

화가 났다. 사업장의 담당자를 불렀다.

 

"어떻게 판정이 이렇게 나올 수가 있나요? 2003년 검진 결과 좀 가져다 주세요."

 

하나씩 비교를 해가면서 담당자에게 설명했다. 판정이 무쟈게 잘못됬음을...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대학병원은 기준이 너무 엄격해요. 제가 이번에 검진하면서 판정을 좀 헐렁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게... 과연 근골격계 환자땜시 산재보험 재정을 뭉터기로 쓴다는 '그' 대공장의 이야기란 말인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장을 돌면서 판정이 이상하게 나간 노동자들을 다 불러서 꼭 병원에 가야 되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함을 설명했다. 이미 열을 받아 있던 상황에다가 4시간 가량을 같은 얘기를 힘을 줘서 이야기를 했더만 목도 아프고 몸도 지쳤다. 그 와중에도 이 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가 계속 고민이었다.

 

현장 순회를 마치고, 관리자를 불렀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거 아니예요? 당장 병원 가야 될 사람들인데 이러면 어쩔거에요? 이사람들 이러다가 사망하면 책임지실거예요?"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명단을 주시면 제가 꼭 병원에 가시라고 전달할께요"

"제가 이미 현장 돌아다니면서 판정이 이상하게 나갔다고 다 이야기했어요. 어떻게 하실거에요. 노동부에 고발할까요?"

 

이런 이야기를 냉정하고 차분하게 하고 있는 와중에 간호사 샘이 자리로 오셨다.

 

"아이고~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나셨네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다. 노동부에 고발을 한다해도 조사한번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작년에 한 구두 제조업체가 엄청난 유기용제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특검이나 작업환경 측정을 안 한다는 사실을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찔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는 어떤 '조사'도 받지 않았고 우리는 보건관리대행 계약이 해지되는 상황을 겪었다. 그 이후에 그 사업장은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

 

"선생님은 다음에 언제 오시나요?"

"12월에 올거에요"

"그 때까지는 치료 받으시라고 다 조처해놓을께요. 한번 봐주세요" 한다.

 

아무 대답없이 보건관리대행의 의사기록지에 '건강검진 판정상 오류 많음. 특별한 관리 및 조치 필요'라고 꾹꾹 눌러 적었다. 노동부에서 감사가 나와서도 잘 보지 않는 부분이다.(이들은 감사나와서도 그저 횟수를 채웠는지만 확인한다. 대행의 내용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야기를 해도 조사를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한 노동부와 그렇게 되면 대행마저 이상하게 되어버릴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를 해보지만 내가 왠지 비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게 정의롭지는 못하지만 옳은 것 같기는 했다.

 

이게 '그' 대공장의 이야기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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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3 21:46 2005/09/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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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슬이 2005/09/25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음 그런 일이 있었네...-_-
    주랄인 찾았수?

  2. 해미 2005/09/27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이/ 주말에 보고서 검토하고 있는데 그 주말에 또 한명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줄 초상인게지요. 주랄동진... 홀연히 나타나더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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