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3/03 10:54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가 안 되면 당연히 총파업이 중단될 것이라는 예상아닌 예상이 당연한 것이 끔찍하다.

 

본회의에서 처리가 안 될 거라는 예상을 하면서 당연히 총파업도 끝날 것이라는 예상하에 이후 일정과 동선들을 잡아가는 어쩔수 없는 나의 관성에도 깜짝 놀랐다.

 

환노위에서 통과가 된 비정규 법안을 철회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의 목표여야 하고, 철도가 힘들게 파업을 하고 있건만... 총파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안 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라는 것도 아프다. 그냥 그럴수 밖에 없는거 알잖아...라고 자위하고 말아야 할까?

 

3월 1일과 2일, 일터의 개편을 맞이하여 동지들과 함께 편집작업을 하면서 (드뎌 일터도 재정의 문제 등등으로 인하여 자체 편집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ㅠㅠ) 끊임없이 드는 생각은 '총파업 몇일 못 갈텐데... 표지를, 그리고 일터 이야기를 이렇게 가도되나?'였다.

 

그냥 참고 보기에는 끔찍하다. 이러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바닥부터 차근차근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이 유난히 이뻐 보이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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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저녁, 핸드폰 문자가 ‘딩동’하고 울렸다. ‘국회 환노위 비정규법안 강행처리 예정’이라는 문자였다. 질서유지권을 발동해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출입까지 막으며 진행된 환경노동위의 본회의라고 했다.


민주노총이 혼란속에서 지도부를 뽑기 전날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 민주당, 국민중심당의 야 4당은 국회 귀빈식당에서 비정규법안을 차기 임시국회로 미루기로 합의했었다. 열린우리당은 합의가 안 되면 직권으로 전체회의에 상정을 해서라도 2월안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았었다.


당선된 집행부는 예정된 28일 총파업을 연기했었다. 하지만 결국 27일밤 비정규 법안은 개악되었다. 쟁점이 되던 사유제한은 논의조차 하지 않았고, 일정 시일이 지나면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는 고용을 하는 의무만 있는 ‘고용의무’로 변해있었다.


통과되었다는 소식에 우리는 예정되어 있던 회의를 취소하고 일정을 연기했다.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단병호 의원은 눈물을 보였다. 급하게 모인 집회대오는 국회를 향해 돌진했다. 여기저기서 울분을 그리고 한숨을 토해냈다.


28일 추적추적 비가오는 가운데 열린 집회에서 비정규직들은 피울음을 쏟아 내었다. 이제 그들의 삶은,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아니 이 땅 전체 민중들의 삶은 벼랑으로 내몰렸다. 850만의 비정규직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의 삶이 태풍 속을 헤매이는 쪽배와 같다.


2년을 주기로 거듭되는 해고를 겪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정규직이라고 해도 언제 짤릴지 몰라 물량과 임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골병이 들고, 과로로 죽어도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엄청난 노동강도하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노사 ‘상생’이라는 허울좋은 이데올로기하에서 내 삶을 잃어버린채 일하고 있다. 당연한 요구와 저항에 공장 밖으로 내 몰리고 있다.


빼앗기고 또 빼앗기는 것이 비정규직의 삶이다.


#1.


참으로 오랜 세월 열심히 일했습니다.

11년의 세월.

그 세월 속엔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가는 긴 시간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모든 노동자라면 그 누구도 그렇듯 최선을 다하리라. 가족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1997년 이후 8년의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IMF 경제위기 이후 꽉 물어버린 임금은 내 가족들의 행복을 깨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전 열심히 일하면 그래도 넉넉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살 줄 알았어요. 참으로 살기 힘드네요. 나와 당신이 맞벌이를 해도 말이예요”하며 건네는 아내의 말에 뭐라 답변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매년 변함없는 백만원이 갓 넘는 임금에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중략)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매년 임금에 5만원이라도 올려 달라는 요구에 응답하지 않던 당신들이 병문안을 핑계로 병원까지 회유하러 오다니요. 참으로 너무했습니다. 일 년 이상의 수입 없는 긴 싸움에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이젠 오기도 생깁니다.


작년부터 큰 애는 “아빠! 회사로 다시 들어가면 S보드 하나만 사주세요”라는 말이 못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젠 마음의 준비가 됐네요. 하청업체의 삶, 아니 비정규직 노동자의 위태한 삶을 저를 통해 만 천하에 낱낱이 알리고 싶네요. 이 사회의 바른 눈을 통해 하이닉스매그나칩 대기업의 비도덕성을. 비정규직은 십년 이상 일해도 A4용지 한 장의 정리해고 안내문에 언제든지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중략)


우리 조합원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내 한 목숨 던져 평화적 해결을 맛볼 수 있다면 참으로 마음 편히 갈 수......


사랑하는 제현아, 하은아. 늘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기 바란다. 늘 엄한 모습으로 야단 쳤던 아빠 용서하고, 엄마 말씀 잘 들어라.


여보 당신에겐 참으로 미안하구려......


[하이닉스매그나칩 지회 조합원이 사측에게 보내는 유서 중]

 


#2.


1년 6개월을 공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 다니며 싸우고 있다. 직장 없이 싸우는 게 너무 힘들다. 일하고 싶다. 일할 직장만 있으면 어떤 싸움도 두렵지 않겠다.


자취방에 기름 떨어진지가 오래 됐어요. 가스렌지도 켤 수 없지요. 가스 살 돈이 있어야지요. 전기장판을 틀고, 부탄가스 한 통 사와 휴대용 렌지에 밥을 해 먹어요. 정말 비정규노동자가 되지 않고서는, 비정규 해고자가 되지 않고서는 이 마음 모를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절실한 지를.


[참세상 2006년 2월 24일. 하이닉스 매그나칩 조합원]


#3.


“작년 11월에 확약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제 살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꿈은 금방 깨지고 말았지요. 채용은커녕 72억원이라는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다니. 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살인 행위랑 마찬가지잖아요.”


“우리 신랑은 구속되었다가 나왔어요. 어디 구속된 사람을 채용해 줄 공장이 있을까요. 하루빨리 원청사에서 약속을 지켜 채용해 줘야죠. 애가 어린 집들은 부인들이 일을 나가기도 힘들잖아요. 월세도 내지 못하고, 우유값도 없어 눈물을 삼켜야 해요. 먹고 살기가 힘드니 부부싸움도 잦아질 수 밖에 없어요.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생계가 해결되지 않고, 시간이 오래 지나니 싸울 수 밖에 없죠.”


지금보다도 어려웠던 시절(크레인 농성, 구속)도 견뎠는데,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고 남편을 격려한다. 딸이 둘 있는데, 중학교 다니는 큰딸은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건데, 아프지 말고 꼭 회사에 복직하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버지가 구속 되었을 때는 밤마다 큰딸이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참세상 2006년 2월 8일. 현대하이스코 조합원]


#4.


솔직히 나는 근로기준법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법에만 있는 것이었지 현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이해하고 국민 누구나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먹고 씻고 쉬고 일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것 뿐입니다.

밥알보다 모래알을 더 씹어야 하는 점심 도시락도 그나마 비가 오면 빗물에 말아먹는 꼴이 됩니다.

공장 담벼락에 숨어서 도둑놈처럼 작업복을 갈아 입어야 됩니다.

누가 우리들의 이런 짐승같은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답게 생활하고 좀더 인간답게 일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30년 전에 전태일 열사가 외친 근로기준법을 우리가 외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얼마 전에 나는 알았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살아온 날을 이렇게 이야기하려니 눈물만 납니다.

서러움이 무엇인지 한 번 보고 싶다면 나를 보면 됩니다. 우리 동료들을 보면 됩니다.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서 옷 갈아입을 장소가 없어 도로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쇳가루 시멘트 가루 날리는 낙장에서 비가 쏟아져도 피할 곳이 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이런 현실, 내 돈 주고 먹는 도시락 모랫바람 없이 한 번 먹어보자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화장실 한 번 당당하게 가 보자는 것입니다.

먼지 구덩이 쇳가루라도 털고 퇴근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땀에 흠뻑 쩔어도 손 씻을 세면장, 샤워장 하나 없는 게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오늘의 현실입니다.


[430 문화제. 울산 플랜트 SK 상경투쟁단 대표]


#5.




오늘 눈물도 마르고 숨도 멈춰버렸다

비정규 노동자 국회를 응시한 채

갈곳을 잊어버리고 비정규노동자

타는 가슴 봄비에 젖어버리내

내 목소리 들어보소 누구를 보호했나

목놓아 울어봐라 비아냥은

열어놓은 대문 앞에 열우당은

비정규 노동자 갈빚대 밑에

대못을 박아놓내

성냥갑 대머리 국회야

내 창자 꺼내어 오랏줄 만들어

목줄을 끊어 놓다


[방송사비정규지부 주봉희]


#6. 


“아무리 사회생활이란 것이 힘들고 더러운 꼴 많이 본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저에게는 이곳이 첫 직장인데, 노동조합이 생긴 이후 담장도 바뀌었어요. 원래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요(손가락질 하며). 화단이었고 꼬챙이 몇 개만 여기저기 있었을 뿐이었는데 노조가 생긴 후 안에 들여다보지 말라고 틈틈이 용접질 해놓고 철조망도 쳐 놨어요”

 

“저보다도 아주머니들이 더 심했어요. 꼭 성희롱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격적으로 무시했어요.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이도 많은 너희가 이곳 아니면 어딜 가느냐’는 식으로 대했지요. 저는 아직 어리다지만 아주머니들도 관리들에게 잘못 보여 해고될까봐 알아서 싹싹하게 대해야 했어요. 말대답도 못하고, 잡담도 조심하고, 커피도 타다 주고. 관리자들이 권력이 됐어요. 자기 마음에 안들면 문자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되니깐요”


[참세상 기륭전자조합원]


국회앞에서는 연일 ‘총파업’과 ‘투쟁’을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다. 빌딩 숲 사이를 가르는 칼바람 속에 멀리보이는 국회의 지붕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총파업 집회에 모인 동지들이 희망이지만 그 대오의 적은 몸집이 아쉽기도 하다. 이미 우리는 절박함을 표현할 여력조차 없는 현실에 직면한 것은 아닐까?


나와 내 가족이 그리고 우리의 아이와 그 가족이 빼앗기고 또 빼앗기면서 살게 할 수는 없다.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 속에서 동지들의 체온으로 봄을 느끼는 것처럼 일상과 현장에서도 봄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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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3 10:54 2006/03/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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