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4/14 12:24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간만에 하이퍼텍 나다를 찾았다. 최근에 유난히 정신없이 지내는 와중에 영화를 보는것도 영화를 보고 글을 한 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남기고 싶어졌다. 그 이미지라도...

 

망종은 조선족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족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사로 짐작컨데 남편은 돈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감방에 가 있는 상태구 그녀는 기차길 옆의 쓰러져 가는 세트같은 허허로운 집에서 연애하는 엄마에게 돌을 던질줄 아는 아들과 함께살고 있다. 옆집에는 몸을 팔지만 여전히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여성들의 공동체가 있다.

 

 

 

영화는 유난히 말을 아낀다. 흔희 영화에서 말을 대신하는 음악도 없고, 이야기도 많지 않다.

 

젊고 아름다운 그녀의 몸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탐할뿐인 비겁한 조선족 김씨, 김치 판매를 미끼로 몸을 요구하는 비열한 식당 주인, 노점상 허가증을 내주고 도와주는 듯 하지만 매춘을 했다는 혐의로 경찰서로 잡혀온 그녀를 농락하는 왕씨까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남성'들의 비겁함과 비열함에 비해, 그녀는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여성들은 오히려 당당하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연애도 적극적으로 하고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성들의 폭력앞에 코피를 흘릴지언정 슥 피를 훔치고 다시 당구를 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의 캔디 컨셉인지는 몰라도 그리고 그렇게 현실의 폭력에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힘들게 사는 그녀들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들이 좋았다.

 

반면 영화는 남자들의 발기도 하지 않은 초라한 벗은 몸을 보여주고 옷을 들고 헛헛하게 걸어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비겁함과 초라함을 극대화시킨다.

 


 

그녀가 경찰서에 잡혀갔다 온 다음 그녀는 아들 창호를 사고로 잃고 만다. 쥐약을 먹고 죽은 쥐 한마리 마저도 창호가 없으면 치우지 못하더 그녀는 이제 담담하게 쥐를 가져다 버릴 수 있다.

 

그리고 헛헛하게 바깥을 피우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쥐약을 김치에 섞는다. 그녀가 머리를 묶고 집을 나가는 순간... 블랙 아웃이 되면서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그리고 상영시간 내내 조용하기 그지 없던 영화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라가는 엔딩크레딧과 함께 사박사박 빨라지고 경쾌해지는 그녀의 발소리...

 

고독과 외로움이 읽히기고 하고 가느다란 희망이 읽히기도 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몇분간의 발소리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지는 정말 몰랐다. 침묵과 소리로 표현하는 영화 망종...

 

간만에 각막에 그리고 귓가에 깊게 남는 영화를 본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4/14 12:24 2006/04/14 12:24
TAG :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ptdoctor/trackback/193

댓글을 달아 주세요

About

by 해미

Notice

Counter

· Total
: 426647
· Today
: 267
· Yesterday
: 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