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12/07 01:07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오늘이 세번째 총궐기... 간만에 매주 집회판에 출석부를 찍으며 참석하고 있다.

 

잔디밭에 앉아 있었야만 했고, 지방대오들의 투쟁 보고만을 들어야 했고, 보이지도 않는 청와대를 향해 소리를 질러야만 했던 1차 총궐기와 연말연시 분위기 가득한 명동의 큰 길을 가로막고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아야 했던 2차 총궐기와 간만에 도로을 꽉 채운 깃발과 사람들을 보고 간만에 을지로 거리를 뛰며 기분이 좋아지다가 어처구니 없는 몸싸움과 연행소식에 다시 한번 허탈해지는 오늘까지...

 

이번 3차의 총궐기(혹자는 촛불집회로 정리되는 '초'궐기라고도 하던데...)는 FTA 반대에 대한 사회적 이슈로 '광우병'이 엄청 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인턴때였던것 같다. 우리병원의 중환자실 격리실에는 CJD(크로이치펠트 야콥병) 의심 환자가 있었다. 흔히들 인간 광우병이라고 부르는, 프리온에 의해서 뇌가 스폰지처럼 구멍이 뚫리면서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었다.

 

그 환자는 그닥 젊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미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은지 한참 되었었고 내가 하는 역할은 그 환자의 온몸에 생긴 욕창을 소독(드레싱)하는 일이었다. 어찌나 욕창이 많은지 제대로 드레싱을 하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릴만한 그런 환자였다.

 

하여간 그 과의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하던 첫날 나와 내 동료는 중환자실의 이 '특별한' 환자에 대한 인계를 꽤 받았던 기억이 있다. CJD일지도 모르니 보호를 위해서 장갑과 마스크 등등을 비롯한 각종 보호구(?)를 반드시 착용할 것을 말이다. 본과 2학년 병리학시간에 어렴풋이 들어본것 같았던 프리온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상기하게 되면서 확실하게 기억된 것이 그때였던것 같다. 그때 신경과의 선생님들은 부검을 해서 뇌조직검사를 해야만 확진이 가능한데 보호자들이 반대해서 결국에는 의증으로 남게 될거라는 이야기도 하셨더랬다.

 

하여간에... 그 때 내가 느꼈던 어렴풋한 공포감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 같다. 광우병 걸린 미국 소고기를 먹어서 그런 몹쓸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FTA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 그 논리일터...

 

근데 마음 한켠에 계속 불편하게 남는게 있다. 바로 '미친'소라고 하는 단어다. '미친'소가 몰려온다는 둥, '미친'소를 먹을 수는 없다는 둥... 물론 광우병이라는 단어 자체를 그대로 해석을 한 것일 테이고 CJD가 발병할 경우 나타나는 증상들을 쉽고 대중적으로 통칭한 것이란 느낌은 있다.

 

하지만 '미친'이라는 단어가 과연 적절한가는 의심스럽다. 이는 왠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건 내가 지나치게 예민해서 일까? 나는 왠지 '미친'이란 단어 속에 담겨 있는 경멸의 뜻이 이번에는 '미친'소라는 이름으로 계속 재생산되고 대중에게 '피해야할 무엇' 또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무엇'으로 정리되는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있다.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미친'년/놈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런 소리를 들으며 심지어는 감금되는 것이 당연했던(지금의 정신과 폐쇄병동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진짜 정신질환자를 가두는 감옥말이다.) 시절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고 여전히 그러한데 대중들에게 호소하는 방식이 그런 '악의적' 이미지에 기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즈를 빗대 FTA를 이야기는 것에 비판을 하는것이 당연한 것처럼, 정신 질환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미국소로 대표되는 FTA를 이야기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모르겠다. 이것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단어가 더 적절하고 대중적일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미친'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때 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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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7 01:07 2006/12/0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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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군 2006/12/07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해미 이야기에 공감이 되는데요? 이런문제가 서로 이야기되고 이해 되어야 운동이 제대로 될거라고 생각해요.

  2. 행인 2006/12/07 0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는 생각을 해보고는 있지만 "미친소"가 가지는 묘한 거부감은 저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구만요...

  3. 리우스 2006/12/07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친'에 대한 얘기 너무 공감되네... 그런데 '출석부' 찍었단 말은 별루여. 그 '출석부' 시러 ㅋㅋ

  4. 해미 2006/12/07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군/ 고맙~ ^^
    행인/ 언어라는것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걸까요? 언어가 주는 정서적 떨림과 같은것들은 어떻게 담아내고 표현해야 하는건지... 행인님이 알려주심 안될까요? ^^
    리우스/ 공감해주니 좋네요. 출석부란 말은 별로 안 좋아보이죠? 일반적으로 집회에 얼굴도장 찍는다는 의미의 출석부가 아니라 원래 조건상 집회참석을 꼬박꼬박 하기 힘든 제가 꼬박꼬박 나가려 하고 있고,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출석부에요. 제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출석부인것이지요. 마치 쿠폰을 모으는 것처럼요. '출석부'말고 '쿠폰북'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을라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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