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01/01 16:01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새해라고 뭐 별거야!'라는 기조를 가지고 사는 나로서는 사실 연말의 각종 호들갑(?)스러움이 억지스럽다고 느낄때가 많다. 대학 들어간 첫해의 12월 31일은 보신각 타종하는거 구경 갔다가 사람들한테 깔려죽을 뻔하고 '절대, 다시는 12월 31일에 이곳에 나타나지는 말아야지' 결심했으나.... ㅠㅠ

 

매년 벌어지는 송구영신 투쟁 땜시 줄줄이 보신각 또는 명동성당을 배회하던 기억이 있다. 작년 12월 31일에는  '꼭' 그 자리에 가 보고 싶다는 의견을 따라 종로 대로에서 사람들이 쏘아대는 폭죽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도 풍물패를 즐겁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램이 있었다. 왠지 무슨 커피 광고의 카피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해졌다'는 느낌이 강한 요즘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니면 기어이... (!)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한살이 되어가는 시점을 기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켁!)

 

하여간 낮에 간만에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도 가고, 필름포럼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비상'도 보고 모처럼 술 한잔 안한 맹숭맹숭한 정신으로 집에 들어갔더랬다. 좋아라 했던 드라마 연애시대를 되돌아볼겸 연기대상 시상식에 채널을 고정하던 순간, 전화가 울렸다.

 

전화는...

 

새마을호 승무원 투쟁땜시 단식을 시작한 한 동지의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은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KTX 승무원 투쟁땜시 빵에 갔다 온지 얼마 안 되는 그 동지는 빵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새마을호 승무원의 투쟁에 결합을 했고 이러다 보니 길거리 생활이 꽤 되었고 주변 동지들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단식에 들어갔다고 한다. 근데 오늘 하루종일 농성장에 누워만 있는 것이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은듯 하니 어디 따뜻한데라도 옮길 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아하.. 이를 우찌할꼬... 시간은 대략 밤 10시 반을 향하고 있었고, 내용은 단식자 진료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단식 동지들에 대한 진료연대를 싫어한다. 처음 갔었던 진료연대는 학습지 동지들이었고 이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건설 등등 부터 작년의 하이텍과 KTX 승무원 투쟁까지...

 

'의사'라는 정체성이 별로 없고 환자 진료하는 체(나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돌팔이란 말이닷! ㅠㅠ ) 하는 걸 워낙에 싫어하는지라 진료연대라는 형식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다. 특히 투쟁현장이나 단식 진료는 아무것도 해줄게 없는 '의사'라는 역할에 무기력함이 더욱 커져서 더 싫어한다. 차라리 같이 싸우는게 낫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단식 투쟁 진료 연대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활동이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은 12월 31일 그것도 제야의 종 소리가 울리기 약 한시간 전이니... 급히 TV를 끄고 벗었던 옷을 다시 주섬주섬 갈아 입고, 택시 잡기 무쟈게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생 차를 급하게 빌려 집을 나섰다.

 

사무실에 들려 혈당계 등등을 챙겨가기 위해 운전해 가는 사이...

 

을지로 1가를 지나는데 폭죽을 터뜨리며 신년을 맞이하는 들뜸이 가득찬 종로를 지나고 왠갖 휘왕찬란한 조명으로 장식된 루미나리에인지 뭔가가 한창인 사람들이 와글와글한 시청을 지났다. 그렇게 화려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바글바글 한데 도대체 우리는 뭔가! 하는 분노가 차 오른다.

 

2006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가는 카운트 다운을 서울역 농성장에 있는 라디오로 들었다. 다행히 걱정을 하게 하던 동지의 상태는 아직 괜찮은 상태였고, 온 김에 이런 저런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라디오에서 2007년에 대한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고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따위의 환호성을 지르던 그 순간,

 

농성장에서는 '이제 해고다!'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새마을호 승무원들은 2007년 1월 1일자로 해고된것이다. 젠장! 욕이 절로 나온다.

 

그날 오후 이철 사장땜시 열받은 한 동지는 처음 해보는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이철 사장하고 눈싸움을 해서 이겼다면서도 맥박수가 빨라진데다가 '내가 왜이러지?'라는 생각에 안절부절하고 있고, 결혼하고 임신준비를 했던 한 동지는 몸을 보해도 부족할 시기에 단식을 결의하고 있었고, 빵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동지는 '하루 종일 졸려서 잔 것 가지고 왜 이리들 난리야?'라며 걱정하는 동지들의 시선을 잠재우고 있었다.

 

아직 병원에 실려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단식을 하기에 적합한 몸의 상태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동지의 '고집'과 '결의'를 옆에서 봐온 나로서는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코 꺽을 사람이 아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정말 안 좋아지면 그때서야 설득이 가능할동말동한 상황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역시 아무것도 해줄것도 없는 상황에서 맥박 수 등만 확인하고 앞으로의 단식시 건강조치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누고 동지들의 취침을 위해 돌아왔다. 다시 서울역에서 돌아오는길 2007년 새해를 맞이한 시청과 종로는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어디선가 공연을 하는지 즐거운 음악소리가 서울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몇분 떨어지지 않은 서울역에서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해고된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서울역 대합실 농성장에서 감기몸살로 아픈 머리와 분이 안 풀린 떨리는 가슴을 안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젠장, 더러븐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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