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2/07 11:41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여기 저기 이동하면서 다니다가, 혹은 회의와 회의 사이에 시간이 어정쩡하게 남거나, 혹은 집에 들어온 IPTV로 밥 먹으며 즐기다가 보게 된 것들.

 

#1.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기대가 너무 높아서인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감동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땅의 여성 노동자의 삶을 보는거 같아서 마음만 짠 했다.

 

개인적인 능력은 있지만 빌어먹을 남편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일은 경제성을 이유로 못하고 그저 정규직이고 벌 수만 있으면 자존심 숙이고 일 할 수 밖에 없는 노동빈곤 여성, 능력도 있고 돈도 벌었고, 성공도 했지만 이혼 경력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차별 받는 여성, 일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호르몬 먹느라 자기 몸도 상해버린 불건강한 여성. 여기에 여성들간의 나이를 넘어서는 연대까지.

 

한국사회에서 나이 먹은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길들의 총합같은 영화였다.

 

뭐 기대만큼 감동스럽지 않고. 비행기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전화받고 바로 아테네 공항으로 바로 달려갔다가 경기 끝나기전에 돌아온다는 설정도 좀 말이 안 되고, 김정은의 연기가 좀 딸리고 튀지만 이런 하모니를 만들어 낸 시나리오와 감독, 배우들에게 박수를. 

 

#2. 싸움

 

하드보일드 로맨틱코믹이라고 했나? 연애시대의 감수성이 아직도 아련하여(지난 12월에도 연애시대를 1회부터 다시 봤다. ㅠㅠ) 한지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이끌려서 거금 3,500원을 주고 IPTV를 통해 봤는데...

 

별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정말 실망. 김태희의 그저 질러대거나 울기만 하는 연기도 지겹고, 설경구도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것 같았다. 헤어진 연인간의 '싸움'을 소재로 '사랑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명제를 차근차근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았으나 그 디테일이나 상황이 억지스럽고 오버다 싶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서로의 집착(설경구의 강박장애와 김태희의 애정집착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나 할까?)이 부른 비극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성은 거세 된듯 붕붕 떠 다니는 영화였다.

 

한지승 감독의 그 섬세함과 아련함, 그리고 유머는 도대체 어디 갔단 말이냐~

 

#3. 내 사랑

 

귀여운 커플들의 귀여운 사랑이야기. 러브 액츄얼리 이후에 트렌드가 된 크리스마스에 데이트 하는 연인을 겨냥한 대표적 옴니버스 영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비교적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

 

감우성은 연애시대의 동진을 다시 보는 것처럼 섬세한 연기를 했고, 최강희는 4차원 소녀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해주시고, 정일우와 이연희는 사랑과 감정표현에 미숙한 어린 커플을 귀엽게 표현하고, 임정은과 류승룡은 직장연애사를 비교적 무난하게 표현하고, 엄태운은 비현실적인 로맨티스트인 프리허그 운동가를 잘 소화했다. 배우들의 비교적 괜찮은 연기가 순정만화의 클리셰를 몰아 넣은 듯한 허술한 플롯에 죽은 듯. 하지만 최강희의 동그랗게 깜박거리는 큰 눈이나 이연희의 귀여운 음주가무는 정말 귀엽다.  

 

그저 흐뭇하게 감상하기에는 좋은 사랑이야기들이다. 감우성을 보면서 지하철 승무 노동자들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고 말이다.

 

이 영화의 발군은 단연코 음악이다. 파스텔 레이블의 음악들을 모아 허밍어반스테레오와 소규모 아카시아밴드 등 내가 완전 조아라 하는 밴드들의 음악이 그 달콤함과 말랑말랑함을 배가 시키는 효과가 대단했다.

 

#4.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네명의 배우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한 기획 상품이다. 서로의 다른 점에 끌려 결혼햇던 커플이 그 다른점에 지쳐하다가 비슷한 감성의 사람을 만나 연애를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부부 대 부부의 멤버 체인지더라... 라는 이야기이다. 뭐, 몇 년전 스와핑 부부의 이야기들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국사회에서 오히려 조금 늦었다 싶은 기획이다.

 

배우들은 자신의 이미지에 맞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적절히 소화했다. 물론 엄정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지나치게 몸에 베어서인지 자꾸 웃기려고 오버하는 게 안쓰럽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이야기나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라 드라마적인 재미는 꽝이다.

 

이 영화에서 흥미롭거나 맘에 들었던 점은 세 가지인데. 조명디자인이라는 직업이 참 예뻐보이더라는 것. 홍콩에 한번 놀러가고 싶어졌다는 것. 그리고 성격 드러븐 놈의 심사 맞추느라 고생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있는 척 해야 하는 고통까지 감수하는 패션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더라는 것. 아마도 특수고용직일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5. 나인(nine)


 

행복에서 반해버린 황정민의 기럭지가 사단이었다. 황정민이 뮤지컬에 나온다는 소식에 냉큼 예매를 하게 된 것은...

 

하여간 개막 공연에서 황정민의 멋진 기럭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비교적 박진감 넘치는 구성도 괜찮았고, 황정민의 연기 포스가 공연장을 꽉 채운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뮤지컬을 몇 편 했다지만 노래도 꽤 괜찮았다. 물론 그 대~단한 연기 포스는 정말 황정민이 왜 훌륭한 배우인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만 흥미진진하고 진행속도가 빨랐던 1부에 비해, 2부는 좀 느슨한 것 같았고 개막 공연이라 그런지 무대적응 좀 덜 되서 황정민은 땀도 많이 흘리고 노래 중간 중간 약간의 삑사리도 있었다. 무대는 1부의 경쾌한 분위기에는 비교적 잘 어울렸지만 2부의 싸이키 델릭한 분위기와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았다.

 

뭐, 뮤지컬이라는게 드라마와 플롯으로 보는 장르는 아니지만 마초인데다가 몸만 큰 아이같은 귀도라는 캐릭터는 일단, 재수가 없었다.

 

뭐, 황정민의 연기와 그 카리스마를 직접 감상한 것만으로도 훈늉하다. 혹시 황정민이 연극한다면 꼭 찾아봐야겠다.

 

#6. 반 고흐전

 

뉴욕을 여행하던 당시 3박 4일 동안 내내 미술관을 찾았던건 원화가 주는 그 감동이란게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당시 메트로 폴리탄에서 봤던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은 아직도 내 방의 벽 한면을 장식하고 있고 핸드폰의 바탕화면이기도 했다.

 

물론 메트로폴리탄의 컬렉션이 인상파에만 쏠려있어서 그 전의 그림들은 많지 않았고 이후 이탈리아 여행에서 우피치와 바티칸을 보면서 고전주의, 바로크, 르네상스의 그림들도 너무 너무 멋지고 재미있었지만... 본격적인 미술관 관람의 충격을 주었던 그 사이프러스 같지만은 않았다.

 

반 고흐 미술관과 클륄러 밀러 미술관의 컬렉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고흐의 일생과 미술 시기에 따라 미술의 흐름을 볼 수 있게 배치한 점이 좋았고, 다양한 드로잉과 사진자료로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전시 기획이 좋았다. 최고로 유명한 대표작들이 오지는 않았지만 고흐 그림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노란 집, 아이리스, 프로방스의 시골 야경)도 있는, 최근의 대규모 기획전 중에 그나마 나은 수준을 보여준 전시회다.

 

하지만, 토요일 점심이라 비교적 한적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한 미술관의 풍경과 12,000원이나 하는 비싼 관람료와 오디오가이드, 어두운 조명과 대기업의 후원...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규모 기획전의 한계를 고스란히 간직해서 고흐의 일생이 드러나지 않아 더 안타까웠다. 동성애와 가난, 자살까지도 상품화가 되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시끄러울 것을 예상하여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꽂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환경도 그지 같고 맘에 안 드는 것도 많지만... 그래도, 원화를 보는게 이리 좋은 것을 어찌하란 말이냐. ㅠㅠ

 

이번 전시회에서 내 맘에 가장 끌렸던 것은 파리에서 그린 버드나무 사이로 강렬히 빛나는 햇빛과 생 레미 병원의 정원을 그린 그림의 꽃과 푸르름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보이던 놀라움, 노란집의 한 귀퉁에 슬쩍 보이는 '밤의 카페테라스'의 그 카페의 희미한 흔적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조아라 하는 보라색이 너무나 이뻤던 아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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