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3/06 09:31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죽음의 조선소 어딘가에 열사의 영혼이

 

2월 14일 오늘은 연인들이 사랑의 표현을 주고받는 밸런타인데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날이지만 어떤 노동자들에게는 4년 전의 오늘이 분노와 안타까움의 날로 기억되어 있다. 2004년 2월 14일 새벽 5시경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이름은 박일수이다. 박일수 열사가 이야기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다쳐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산재율을 근거로 업체의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아픈 것도 숨겨야 하는 지경인 것이다.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하청업체에는 물량을 주지 않도록 하여, 하청업체 스스로 문을 닫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사망사건에 있었으니 산재처리하면 안된다.”, “니가 산재를 신청하면 같이 일하는 동료, 형들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원청에서 회사를 폐업시킬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다친 노동자에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많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무재해 100만시간, 무재해 200만시간 달성 등 각 팀 반과 하청업체 간의 무재해 기록을 세우기 위한 경쟁들이 가속화되어 왔다. 매달 월요일에 진행되는 부서별 안전결의대회에서 무재해 포상이 수여되는데 무재해 포상을 받은 부서 및 업체에는 일하다 다쳐 병원에 입원한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지경이다 보니 사고는 은폐되기 십상이다. 그나마 사망이라도 해야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는 현실이다. 2007년 11월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는 광주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5월 이후 광주·전남의 생산현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41명에 달하며 29명(70%)이 비정규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에서도 비정규직의 사망이 정규직의 2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원인이 명백한 사고도 이 지경인데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는 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박일수 열사가 외쳤던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는 물론 건강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병들면 치료 받는 건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다치고 죽어가는 조선소 어딘가에서 박일수 열사는 아직도 안타까워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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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6 09:31 2008/03/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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