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3/13 10:22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지난 12월 한 지하철 기관사가 선로에 떨어진 후 뒤따라오던 전동차에 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냥 한 노동자의 사망으로 짧은 뉴스로 취급될 뻔 했던 이 소식은 그 기관사가 철로에 떨어지게 된 이유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그 기관사는 용변이 급해 기관실의 손잡이를 붙잡고 열차 밖으로 용변을 보다가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신기해했다. 어떻게 화장실도 못 가고 길바닥에 볼일을 본단 말이냐는 것이었다.

 

파업을 한다고 하면 매번 귀족 노동자라고 비판받는 가장 대표적인 노동자들이 그들이 아닌가? 더군다나 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하던 2004년 7월 서울지하철노조의 전면 파업에 맞서 서울시는 ‘지하철 근로자 1인당 평균연봉이 4480만원에 달한다.’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통해 노조의 파업이 부당하다고 선전했고 들끓는 반대 여론으로 노조는 사흘 만에 파업을 접었다. 파업 주동자들은 해고되거나 사법 처리됐다. 고액 연봉이라고, 귀족 노동자라고 비난 받던 노동자들이 화장실도 편하게 못 가서 볼일을 보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것이다.

 

몇 년 전 지하철 기관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중에는 여성 기관사도 있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지하철을 운행하는 동안은 화장실에 갈 수 없다. 이러다 보니 운행 시작 전에는 물도 한 모금 안 마신다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고 설사병이라도 나는 날에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검은 비닐 봉투와 신문지, 빈 페트병은 기관사들에게 필수적인 도구이다. 수천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면서도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화장실에도 못가서 기관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대변을 본 후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기관실에 매달고 운행시간 내내 운전을 하고 페트병에 소변을 보고 가방에 싸 들고 나와서 화장실에 가져가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여성 기관사들의 상황은 도대체 얼마나 더 나쁜 걸까?

 

비단 지하철 기관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거리 운행을 하는 버스기사는 휴식시간이 빠듯해서 왕복으로 버스가 오가는 동안 화장실에 갈 수 없고, 대형 마트의 계산원은 손님들이 몰아닥치는 시간에는 아무리 바빠도 계산대를 비울 수가 없고, 건설현장에서는 지저분한 간이 화장실이 너무 적어서 가려면 10층이 넘는 위치에서 내려와 10분을 걸어가서 다시 돌아와야 하니 화장실에 못 가는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크레인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위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서 근무시간 내내 용변을 참아야 한다. 이러다 보니 방광염을 달고 사는 노동자들이 넘쳐 난다.

 

이 사건이후 서울시에서는 기관사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기관실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관실의 간이 화장실에서 마음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있는 노동자는 별로 없다. 혼자 운전을 계속하는 이상 잠시라도 주의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최근 철도 기관사들이 1인 승무를 시작한다고 한다. 부기관사라도 있으면 화장실을 다녀오겠지만 이제 혼자 운행을 하게 되면 그 긴 시간동안 화장실은 어떻게 가나 걱정이 된다.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얼마든지 편하게 화장실을 가서 편한 마음으로 볼일을 볼 수 있는 그런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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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10:22 2008/03/1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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