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8/03 15:09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근 3개월만의 포스팅이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꼭 바쁠때가 되면 이런걸 하고 싶어진다. 오늘도 밤새는 구나~ 야간노동과 함께하는 열대야여!) 전주 영화제에서 영화보고 끄적여 놓은 것들이 생각나서 3달만에 포스팅이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온 이후 근 10년만의 영화제 나들이는 연휴 휴가 인파에 밀려 고단했지만 영화와 사람들과 맛난 음식으로 가득찬 즐거운 경험이었다. 간만에 하루 4편씩 영화를 보는 재미도 좋았고, 아침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음악을 기다리면 티켓부스가 문열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도 좋았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다시 가보고 싶은데... 올해 갈 수 있을까?

 

#1. 어느 여자 노예의 부업 (part-time work of a domestic slave) 1973, 독일, 알렉산더 클루게

 

클루게의 회고전에 상영된 영화들 중에 하나이다. 엥겔스와 브레히트에 충실한 감독이라더니 domestic slave라 얼마나 직설적인 표현인가? 그녀가 하는 part time이 뭔지 궁금했더랬다. 73년 독일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전반부와 그녀가 활동가가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흑백화면에 펼쳐졌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남편은 아내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능력한 남성이고 지식인이다. 수십년전의 독일 영화가 여전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지금이었다.

 

좀 더 높은 이윤율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회사와 이에 대한 사전 공유나 정보도 없고 또한 투쟁의 의지도 없는 노동조합, 피해가기에 급급한 자본의 모습, 이에 대응하는 원초적(?) 형태의 해외 원정투쟁. 홍콩가서 고생하는 뉴코아 동지들이 겹친다.

 

이런한 가부장성과 자본의 횡포에 균열을 내는 것은 불법 낙태 시술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여성들의 비밀 네트워크이다. 그녀가 공장앞에서 유인물로 싸서 파는 소시지는 그리하여 가장 불온한 소시지가 된다. 잘 모르는 감독이었지만 감독의 서슬퍼런 비판의식이 위트와 유머 속에 녹아나는 영화였다.

 

 

 

#2. 스트리츠, 2007. 카자흐스탄. 아바이 클비예프

 

쥐파먹은 머리를 한 여주인공이 계속 기억에 남는 영화다. 아네사 키슬로바라는 불안한 영혼이 눈빛으로 드러나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였다. 이런 비슷한 모습의 톰보이형 소녀를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지금 찾아보니 그르바비차의 딸내미가 비슷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동유럽 또는 전쟁의 향기인가?)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과 같이 봤다. 내 바로 뒷자리에 심사위원단이 앉았는데 거기에 봉준호 감독이 있었던것. 바로 이런것이 영화의 묘미 아닐까?

 

원래 내가 본 시간은 GV가 예정되어 있던 시간이고 주연 여배우가 오기로 했었다. 영화를 보면서 여배우의 눈빛과 어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GV가 취소된게 우찌나 아깝던지...

 

가난한 10대 소녕의 몇일간의 방황을 다룬 영화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시끄러운 집안가 그 어려움을 살피지 못하는 학교, 겉돌기만 하는 친구들, 소녀를 성폭력의 피해자로 만들고 마는 무심한 택시기사와 돈 많은 아저씨를 보여주면서 그녀에게 남은 상실감을 그린다. 달리던 것을 멈추고 도로 한복판 그녀가 우뚝 서 버린 것은 그 과정에서 그녀의 외로움과 상처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지금 그 상처를 무시하고 툭툭 털고 일어났기 때문에 두고두고 그녀를 아프게 할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미타에서 찍었다는 영화는 풍경과 정서가 너무 비슷하다.

(오늘 이 메모를 다시 보니 신나래 학생이 생각난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

 

 

#3. 캡틴 에이헙, 2007. 프랑스. 필립 라모스

 

모비딕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이다. 모비딕이란 소설의 주인공이 에이헙 선장이 어떻게 그런 캐릭터를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에이헙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딘 배경을 일종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서 찾는 것 같다.

 

에이헙에서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자 어머니였던 루이자는 간절히 잡고 싶지만 절대 잡을 수는 없었던 모비딕과 같았다. 루이자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풍만하고 육감적인 몸매와 이를 가리는듯 하면서도 묘하게 도발적인 그 시대 여성과 같지 않은 바지 차림의 여성이다. 보티첼리의 그림을 보는 듯한 초반의 화면도 좋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는 GV에 나온 배우 드니 라방의 포스에 대한 인상이 가장 강하다. 레오 까락서의 모든 영화에 알렉스라는 이름으로 그의 페르소나의 역햘을 해온 세계 최고의 배우인 바로 '그' 말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그의 모습이 자그마한 체구안에 꼭꼭 담겨있는 느낌이다. 마임으로 연기를 시작해서 인지 다양한 표정과 유연한 몸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4. 콘티넨털. 2007. 캐나다. 스테판 라플뢰르

 

환타지 소설에 어울릴거 같은 이름을 가진 31살의 감독이 GV에 나왔는데 토론토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차지했다는 그의 약간 가벼운 듯한 웃음이 좋더라. 캐나다라는 나라가 제목의 느낌처럼 총만 없을 뿐 미국과 똑같이 외롭고, 소통 불가능한 절망적 사회라는 느낌에 대해 감독은 블랙코미디라고 이야기를 했고 모듈레이터조차 따뜻한 영화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절망적인 느낌이 강했다고 개인적이 감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호텔 카운터에서 야간고정으로 일을 하는 애인도 없지만 아이는 가지고 싶은, 그러면서도 무서워 하는 20대의 여성과 보험 영업사원으로 새 삶에 도전하지만 가족과 떨어져서 일로 인한 관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30대의 남서, 치과 치료비 15,000달러를 벌기 위해 도박에 매진하는 노년의 남성과 남편의 급작스런 실종으로 아노미에 빠지고 마는 노년의 여성까지.

 

서로의 몸을 건드리지 않고 혼자 추는 춤인 콘티넨털처럼 무리에 속해 있고 똑같아 보이지만 약간씩은 다른 춤울 각자 추는 것이 삶인가 보다.

 

작은 변화가 만들어가는 또 다른 변화에 대한 감독의 희망과 긍정성이 좋아보였다. 사진과 같은 이미지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귀여운 젊은 감독의 다음이 궁금하다.

 

 

#5. 무용

 

다큐멘터리라는데 너무 아름답다. 사진같은 느낌도 있고... 중국 패션의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포괄한 영화는 지금의 중국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깨끗하고 차가운 거울같다.

 

무용(Useless)라는 자신의 브랜드로 하이패션에 나선 젊은 디자이너. 그녀는 대량생산되는 옷을 반대하고 자연을 주제로한 파리 컬렉션에 선다. 그녀의 패션의 주제는 자연과 역사 같은 중국 고유한 것이다. 모델들이 런웨이를 활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현대 미술의 한 퍼포먼스처럼 조명에 따라 동상처럼 서 있는 형식의 실험적인 패션쇼를 선보일 정도로 창조적이고 의욕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이다.

 

한편, 그녀가 혐오한다던 대량생산된 옷을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들은 쉴 틈없이 조명아래에서 일을 한다. 잠깐의 쉬는 시간동안 의사를 만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아픈데를 이야기하고 상담받는 그들, 점심시간에 각자의 그릇에 무언가를 담아 허겁지겁 먹어치울 정도의 시간밖에 없는 그들이 있기에 옷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개발이 한창인 중국의 한 시골에서는 옷을 수선해주는 집들이 장사가 안 되 파리가 날리고 있다. 옷이 구하기 쉬워지고 가격이 떨어지니 수선하는 집들은 암담할 수 밖에 없다.

 

개발이 한참인 그곳에서 노동자들을 쥐어짜 만든 옷을 입고 자신들의 일을 빼앗겨 버린 그들과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는 노동자와 가장 창조적인 옷을 만드는 개인이 공존하는 중궁이었다.

 

지아장커는 깊이가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같은 화면도 좋고 섬세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감독의 시선이 좋았다.

 

 

 

#8. 하늘, 땅 그리고 비, 칠레, 2008

 

계속 자서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엄청 많았다.

 

다만 대사도 거의 없이 그림을 보는 것처럼 이어지는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숲의 나무를 찍는 방식이 회화적이었다. 현대미술 전시를 110분쯤 본 느낌이었다. 컨디션이 괜찮았으면 영화가 아니라 미술을 감상하는 느낌으로 봤을텐데... 그렇게 버티기에는 그 전날 막걸리 골목에서 먹어댄 끊임없던 막걸리와 안주가 너무 많았다.

 

(나중에 영화제가 끝난 후 받은 소식지에는 이 영화가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드라마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한국의 일반적 관객과 다르게 미학적으로 회화같은 이 영화의 촬영과 화면이 멋지고 새로워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보너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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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15:09 2008/08/0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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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wa 2008/08/03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주에서 봤던 분이 해미님 맞죠? 기억나실런지 ^-^;
    영화제 때 <어느 여자 노예의 부업> 참 보고팠는데 놓쳤어요. ㅎㅎ
    혹 기회가 닿으면 난중에 또 영화제에서 ㅋ

  2. marquez 2008/08/05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eally envy you - -/ I 'm writing this reply via my ipod, so i can use only in english!

  3. 해미 2008/08/05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iwa/ 저도 반가왔어요. 최근 작업과 관련해서 저희한테 자료 때문에 연락하신거 맞죠? 카피 레프트니 좋은 다큐 만드시길 빌어요. 또 언젠가 영화제에서 뵙죠. ^^
    마르케스/ 오호~ 영작? 훈늉하오. 결국 ipod은 질렀구려. 음질 좋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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