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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박노자가 전하는 유럽발 '떼법'

 

유럽 2009년, '반란의 해'

[나의 혁명론⑤] 한국은?…촛불 횃불되고 피는 피를 부를 것
 
요즘 유럽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전쟁터에서 전황을 알리는 소식지를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곳곳에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고, 또 가면 갈수록 그 강도가 세지기만 합니다. 사실, 여태까지 본 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하니 금년은 어쩌면 역사에서 '반란의 해'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1968년 이후로 이미 40년이 지났으니 한 번 더 그런 해를 겪는 것은 의미 있지요. 요즘 정부가 '떼법'을 억수로 욕하지만, 사실 민주성이 거의 없는 형식뿐인 우리 '민주주의' 하에서는 대규모 집단 행동 이외에는 지배자들에게 그 어떤 뜻 있는 양보도 따낼 방도는 별로 없습니다, 이 '떼법'이란 사실 위기 시대 민중들의 생존법일 뿐입니다. 그것까지 봉쇄한다면? 아예 화약고 전체가 다 터져버릴지도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 준주변부에서의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었는데,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배자들도 몸 보전을 좀 잘 하려면 '떼법 지수'를 좀 덜 들먹이기를 권합니다예...

 

사실 국가 파산 상태가 다 된 종전의 신자유주의의 모범국, 아이슬랜드는 바로 지금 '터지고' 있는 것입니다. IMF 구제금융과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자매국들의 구제로 겨우 살아남았지만, 소비 수준은 동유럽 수준으로 떨어지고 인구의 약 25%가 노르웨이 이민을 꿈꾸는 곳은 지금 아이슬랜드입니다. 뭐, 그 쪽 분들에게는 노르웨이 이민에 제한이 없기에 그렇게 될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성장'의 폐허에서 드디어 오래간만에 적기(赤旗)가 꽂혔습니다. 지금 며칠간 야당(좌파적 사회주의자 - 노르웨이의 사회주의좌파당과 동격의 당임)과 노조 등이 주도하는 시위로 국회가 포위 당하여 수도 레이캬위크가 비상 상황입니다. (☞관련링크1) 사민주의자들마저도 지금 정부를 떠나 야당 진영에의 합류를 할까 고심하고 있는 중이랍디다. 잘 되면 미구(未久)에 그 섬에서 지금 노르웨이 정부와 같은 성격의 강력한 좌파 블록 정부가 들어설지도 모르겠어요. 문제는, 좌파가 권력을 거머쥐어도 국가 책임이 된 부실 은행들의 채무를 어떻게 갚아야 할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번 아이슬랜드판 신자유주의 경제 몰락으로는 그 섬에서 앞으로 아마도 한 세기 동안 1980년대초반 이전의 국가주도, 어업/관광업 위주 모델을 절대 떠나지 않을 거에요. 아이슬랜드로서는 최적의 모델이지요, 뭐.

mbl.is/golli

(1) http://www.icenews.is/index.php/2009/01/22/iceland-government-faces-serious-new-challenge/#more-5406 [By Alex on Jan 22, 2009 in Iceland, MBL, Politics, Society//A special open meeting held by the Reykjavik section of the Social Democrats last night in the National Theatre basement attracted hundreds of people and national attention as it became clear the Section would recommend the party disengage from the current coalition government partnership with the Independence Party. With hundreds of protesters outside chanting slogans and making bonfires, the hundreds of attendees inside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party should leave the government and effectively force new elections.(...)]

 

아이슬랜드도 이제 사람들이 다 짐을 싸가지고 떠나는 '북구판 동유럽'이 됐지만 '원조 동유럽', 즉 구소련, 구 동유럽 국가들은 1929년 이후의 최악의 위기로 '반란' 상태입니다. 약 1주일 전에 - 제가 소련 시절에 자주 여행다녔던 -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에서 노조 등 대중 개혁주의 조직들이 주도하는 격렬 시위로 비상상태가 돼버렸어요.(☞관련링크2) 스웨덴, 독일의 투자와 차관으로 이루어진 여태까지의 '고성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대중들의 소비력이 급격히 떨어지니 서구형 소비자가 되려다가 갑자기 다시 빈민이 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또 제가 동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인 리투아니아도 공무원 연봉 감봉과 연금생활자 연금의 인플레이 연동제 포기 등 정부의 반민중적 위기 대책에 노조 등이 대규모 시위를 조직해 결국 '반란'의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부상자까지 다수 나왔으니 조용한 나라 치고는 아주 비상한 일이지요.(☞관련링크3) 지금 불가리아 등도 '민란'을 대비하고 있는 긴장의 상태고, 앞으로는 공업 생산량이 약 25%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감히 예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 이야기한 대로 유럽의 준주변부, 즉 1인당 1~2만불 안팎의 중간 규모 소득의 중진국들은 국제적 질서의 '약한 고리'가 된 셈입니다.

(2) http://www.ng.ru/world/2009-01-14/100_riga.html [Президент Латвии Валдис Затлерс объявил, что намерен распустить Сейм в случае, если до 31 марта не будут приняты поправки к конституции, сообщает латвийское информационное агенство LETA. Затлерс уверен, что одна из основных причин вчерашних беспорядков в столице Латвии Риге - недовольство населения правительством. По мнению Затлерса, новые поправки, которые дадут народу право инициировать роспуск Сейма, должны улучшить ситуацию. (...)]
литва, латвия, эстония, кризис, мвф / Протест в Вильнюсе имел масштабный характер.Фото Reuters (3) http://www.ng.ru/world/2009-01-19/6_latvia.html [Власти балтийских стран во всем винят русских // В конце минувшей недели массовые волнения состоялись в еще одной балтийской столице – Вильнюсе. Как и ранее в Риге, они начались сразу после окончания мирной акции протеста против экономической политики правительства. Но если в Латвии организаторами выступлений были политические силы, то в Литве инициативу в свои руки взяли профсоюзы. (...)]


그들과 구조적으로 매우 닮은 - 그리고 복지제도는 그들보다 훨씬 못하는 - 한국에서는 금년에 어떤 일이 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번 용산 참사를 보시면 가히 아실 것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경제가 쇠락해가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민생고를 해결하기는커녕 '강경 진압'과 살인적 망동으로 대응할 경우 민중의 행동은 대개 '비폭력' 수준에 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고금동서의 통례입니다. 이게 걱정이에요, 걱정. 피가 피를 부르거든요. 그 사실을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2009년판 촛불 사태가 횃불 사태, 또는 투석전 사태로 발전될 경우에는 민중을 제발 탓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준주변부가 이제 들고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혁명'이 도래할까요? 글쎄, 지금까지 제가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슬랜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지에서는 대중의 행동들을 좌파적/급진적 사회주의자 - 노르웨이의 사좌당이나 독일의 좌파당 격의 정치조직들과 노조들이 주도해온 것이고, 그들이 선언한 목적은 제가 몇 달 전에 이야기한 '급진적 개혁'과 거의 동질적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윤 추구가 아닌 복지 지향적 국가 주도의 경제 (여기에서 은행의 국유화가 중심적임), '자유무역'의 중지와 민중의 요구에 맞추어진 통제된 무역만의 허용, 외국 투자를 위시한 일체 투자에 대한 철저한 통제 등은 핵심적 아젠다입니다. 케인스주의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것은, 예컨대 은행을 비롯한 대규모 기업체들의 국유화에 대한 요구일 것입니다. 어차피 경제가 폐허화되는 상황에서는 국유화는 유일한 생존 방안일 수도 있구요.

 

하여간 제가 깊이 사랑하는 동유럽의 리투아니아 같은 곳들은 일종의 '민주화된 소련', 즉 국가 주도의 경제이면서도 현실적 소련과 달리 민주주의/인권주의의 틀을 유지하는 사회가 된다면 저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요. 물론 구소련과 다르게 국가가 중소부문까지 다 잠식하여 경제를 송투리째 통제할 필요성까지야 만무하지요. 요컨대 볼셰비키들의 일당 독재/비밀경찰의 횡포만 빼고 개인 인권 보호 위주의 성숙된 민주주의로 대체시킨다면 1921~1929년 사이의 소련의 국가 자본주의적 혼합경제시스템과 같은 모델은 유럽 준주변부의 나라들에게 - 물론 시대적 변화에 따라 알맞게 손질한 뒤에는 - 어느 정도 맞을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열찬 싸움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레디앙 2009년 01월 23일 (금) 09:30:55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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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기를 넘어서는 진보운동을... (김상봉)

시대적-역사적 요청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진보진영이 '권리찾기'를 위한 노력에 운동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그런 운동을 진보적 가치의 중점 사항으로 여겼던 것이 어느정도는 사실이겠다. 요즘 많이들 부르짖는 소수자나 장애인 권리찾아주기, 혹은 더 나아가서는 페미니스트들의 '권리찾기'(를 넘어 다시 자기네들의 '권리 만들기')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범주에 스스로를 묶는 방어적(외양은 적극적인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방어적인) 진보를 지양하고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좋은 말씀이 있기에, 옮겨오면서 몇 자 보탤까 한다. [나의 어설픈 '보태는 말씀'이 지겨울 경우 아래의 펌글로 바로 이동해도 됨.]

 

그러고보면 권리라는 개념이 무슨 엄청난 진보적 가치를 담고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태생적 연원으로 봤을 때, 힘 쎈 부자놈들이(힘이 쎄서 부자가 되고 부르조아가 됐는지 그 역인지는 따질 필요도 없이) 저희들 맘대로 땅을 구획치고는 '이건 내꺼다' 라고 외치는 배타적 권리가 그 뿌리일 것이다. 힘이 없어서 무주공산에 널린 권리를 미처 행사하지 못한 자들은 나중에 인권이라는 개념에 구원을 요청해 보지만, 권리의 속성은 언제나 강자의 논리였던 것이 우리네 역사 아닌가 (아니 우리네만이 아니라 동물의 왕국에서 더 자연스러운 질서). 그렇게 권리란 본연적으로 상호적 관계 속에 있으므로, 힘이 없거나 기회가 없어 '구획치기'를 못한 놈이 있기에 구획친 놈의 권리가 의미있는(?) 것이지, 모두가 똑같이 구획치고 사방에 땅주인만 있고 고용할 일꾼이 없다면 그런 구획치기의 의미는 무화되고 어떠한 권리도 발동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실상은 그렇지가 않고 힘센놈의 권리가 충실히 작동되는 것이 현실이니, 이제 권리 개념은 항상적 대결과 투쟁과 저항를 낳을 수밖에 없도록 규정되어진다는 말이겠다.

 

권리의 속성은 그렇게 늘 배타적이고, 이런 배타성의 성숙된(!) 면모가, 적극적으로는 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고 타인을 죽이는 것도 나의 권리이고, 소극적으로는 내 이웃이 굶어죽든 아파죽든 타인의 비참과 불행을 방관하는 것도 나의 권리라는 주장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성격의 권리에다 대고 야만과 반인류을 거론하며 도덕적-종교적 설교를 아무리 늘어놓아봤자 그것은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사실을 작금의 이스라엘-미국 사례가 잘 알려준다. 잘 못 자란 권리의 성격때문이 아니라, 권리개념이 함축하는 원래의 속성이 그러한 것이므로, 이제는 배타적 상호성에 바탕하는 '권리찾기운동'을 지양하고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보편적 권리를 어떻게 만들고 지켜낼 것인지를 함께 건설적으로 고민해 보자는 것이 아래에 옮기는 글의 취지로 보인다. [참고로 아래의 글은 진보신당 당원들을 상대로 쓰여진 것인 듯한데, 나는 그 당과는 전혀 상관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옳은 말씀이기에 퍼온다. 사족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이곳 '진보 블로그'에서는 사람들이 펌질보다는 풀질(설을 푸는 행위)을 더 좋아하는 듯한데, 나는 자꾸 이런 펌질만 하자니 좀 뭣하지만 그냥 이게 내 수준이려니 하고 간다. 이하 펌글이고 -진보신당 어쩌고 하는- 도입부는 생략한다, 좀 보편적인 글의 외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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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정당정치의 존재 이유…"권리찾기 운동을 넘어서야" (김상봉) // (...) 지금까지 정치적인 진보 운동이란 권리를 찾는 운동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노동운동은 자본가에게 빼앗긴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이고, 진보적 여성운동은 남성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는 것이며, 진보적 장애인운동은 비장애인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는 일일 것이다.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할 때 우리는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는 타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약탈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왕조시대와 식민지시대 그리고 독재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오는 동안 그나마 이 정도의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그것을 되찾으려 하는 운동이 진보적 정치운동이라면 그것은 당파적인 계급투쟁을 벗어나기 어렵다. 참된 진보 운동은 권리 찾기 운동이 모두를 위한 것일 때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노동자의 권리 찾기가 단순히 좁은 의미의 노동자계급의 이익 추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이 될 때 보편적인 정당성을 얻게 된다. 이런 이치는 여성해방운동이나 장애인 인권운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참된 진보적 정치 운동이란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 찾기를 뜻하는 바, 이런 문맥에서 보자면 진보적 정치 운동이 추구해 온 정의란 어떤 사람도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 사이에 권리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이며, 평등이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기준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진보 운동이 모든 사람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이야말로 그것의 대중성을 담보하는 근거이며 진보 운동의 현실적 힘도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빼앗긴 권리를 찾고, 확보한 권리를 지키는 것이 진보적 정치 운동의 궁극 목표가 되어버린다면, 내가 생각건대 더 이상 진보 운동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수하게 권리만이 문제라면 나의 권리와 모든 사람들의 권리는 원칙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리는 자기의 대상에 대한 권리이다. 권리의 충돌과 불균형이 생기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에 대상에 대한 권리의 양이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누구도 자기의 권리를 홀로 지킬 수도 없고 빼앗긴 권리를 홀로 되찾을 수도 없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권리를 되찾고 지키려는 운동은 반드시 집단적 연대와 결속을 통해서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빼앗긴 민족의 권리가 문제라면 민족이 하나로 결속할 것이며, 빼앗긴 노동자의 권리가 문제라면 노동자 계급이 단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권리를 찾고 지키려는 욕구 자체는 자기의 권리를 확장하려 할 뿐 그것을 스스로 제한하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이 무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기의 권리를 확장하려는 의지는 자연스럽게 자기와 같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대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리스의 자유 시민들이 노예를 배제하고 자기들만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한 것이나, 서양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를 식민지화하면서 자기들만의 시민적 공화국을 추구한 것,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에 눈감으면서 자기들의 권익을 추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한편과 연대하면서 다른 편을 배제하는 일이 모두 권리개념의 본질로부터 같이 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보운동이 일종의 자기모순에 봉착한 근본적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명목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의 균형을 지향하지만 권리 개념 그 자체는 권리의 보편적인 향유라는 진보적 이상을 자체 내에 포함하지 않는 까닭에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당파적인 담합과 배제로 퇴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이 정말로 새로운 진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려면 바로 이 권리의 개념을 넘어서야만 한다. 권리의 개념은 대상에 대한 욕망에 기초한다. 그리고 이 욕망이 결국 나와 너 사이의 대립을 낳고, 이 대립이 보편적 인간해방과 만남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대상에 대한 권리의 극대화가 아니라 너와의 참된 만남에 대한 욕구가 진보적 상상력을 추동하고 진보적 운동을 이끌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면 우리가 투쟁하는 것은 투쟁 자체를 원해서도 아니고 그것을 통해 대상에 대한 권리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불평등하고 왜곡된 만남을 지양하고 너와 나 사이의 참된 만남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권리의 균형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참된 만남을 위한 조건으로서 요구되는 것이다. 참된 정치란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것이다. 참된 만남에 대한 지향이 다른 모든 정치적 이념들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이념도 불화의 씨앗이 될 뿐이다. 그런 경우 우리는 진보의 이름으로 안팎으로 싸우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일상화된 불화 속에서 진보적 이념의 현실화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일상화된 불화는 우리를 하나 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직 싸움이 만남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을 때, 진보적 정치운동은 갈라진 사람들을 하나로 만나게 하고 그 만남 속에서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레디앙 2009년 01월 12일 (월) 08:50:27 김상봉 / 미래상상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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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익명, 베를린의 한 여인" (전쟁과 성폭력)

Une scène du film

D.R./Une scène du film "Anonyma, eine Frau i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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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찌 베를린의 경우만이겠는가"라고 르몽드에서 기사 제목을 뽑았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은 거기에 있다. 이번에는 확실하다. 1945년 4월 말, 이 확실한 사실은, 포위된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만 말하는 몇 날을 만든다." ( Ils sont là. Cette fois c'est sûr. En cette fin avril 1945, cela fait des jours que, dans Berlin encerclée, on ne parle que de "ça".) 여기서 "그들"은 러시아 점령군이고 "그것"은 성폭력이다. 전쟁과 거의 어김없이 거기에 뒤따르는 성폭력, 결코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다가 한평생을 보내야 하는 희생자-여성의 삶, 그런 아픈 이야기를 조명한 영화가 나왔다고 한다. 지난 10월 말에 독일에서 개봉된 "익명, 베를린의 한 여인"(Anonyma, eine Frau in Berlin)이라는 제목의 영화에 대한 얘기다. 영화는 1945년 전쟁 말기에 베를린에서 기자로 일했던 당시 34세의 Marta Hillers (1911-2001)라는 사람이 1954에 영어로 출판한 책인 <베를린의 한 여인>을 모태로 했다 함.

영어로 처음 출판된 이 책이 독어로 번역되는 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나마 독일의 어떤 출판사도 출판을 달가워하지 않아서 결국은 스위스의 독일계 출판사에서 맡았다니,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독일이 얼마나 지독한 비밀로 숨겨두려 했는지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오랫동안 베일 속에 있던 비밀이고, 이제 6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들을 찾을 기회가 곧 사라질 시점에서, 영화의 개봉과 더불어 정신병리학자들도 역사상 처음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떻게 '베를린의 여인들'은 그런 몸과 기억의 상처를 안고, 단 한 번의 심리치료도 없이, 한평생을 견뎌낼 수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연구 대상이라고...

당시 나찌 정권은 러시아군의 성폭력 행위를 부풀리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기도 했다지만, 역사가들에 따르면, 1945년 4월에서 9월 사이에 베를린에서만 10만명, 독일 전체로는 200만명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사실을 말하려 들길 원치 않았고, 특히 동독에서는 "큰 형님에 대한 이런 비판을 방어"(surtout à l'Est, où critiquer le "grand frère" russe était défendu)할 필요가 있었다니, 반성할 지점이겠다. 물론 나찌정권이 애초에 원인을 제공했고 동부에서 추방된 사람만 1200만명이라는 공적 사실이 있고 그래서 소련군에게 승리의 상징물로 수많은 여성을 희생시킨(veulent des femmes, symboles de leur victoire)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기억을 평생을 짐으로 안고 살아야할 개인들의 사적 존엄성 앞에서 그 어떤 변명도 용서를 담보할 수는 없으리라. 

육체적 폭력에 의한 희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쟁 후 이어지는 남편과 가족으로 부터의 외면, 그리고 사회적 냉대 등의 2~3중의 고통으로 희생자를 몰아갔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녀들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잔인한 역사는 지금도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콩고 등에서 벌어지는 전쟁 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직접적 당사자들 외에는 누구도 적극적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우리 모두는 역사의 다음 세대에게 '비겁한 방관자'로 매도돼도 할 말이 없다고 글쓴이는 강조한다. (내가 이 방면으로는 거의 문외한인 연고로, 르몽드를 읽다가 새롭고 긴장되고 잘 쓰인 기사라는 생각에서 급히 퍼다놓고 보니, 한글 소개가 cine21에 벌써 있네, 책도 나와있고(밑에 사진 있음).)

(*) 제목에 물음표나 느낌표가 있다면 '이게 어찌 베를린의 경우만이겠는가'로 이해해도 되겠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내가 너무 내 맘대로 의지주의적 번역을 한 듯하다. 'Seules'이 여성 복수형인 것으로 봐서 아마도 '베를린의 고독한 여인들'  정도가 낫겠다.

 

 

Seules dans Berlin
LE MONDE | 20.12.08 | 14h27  •  Mis à jour le 20.12.08 | 14h27

 

Ils sont là. Cette fois c'est sûr. En cette fin avril 1945, cela fait des jours que, dans Berlin encerclée, on ne parle que de "ça". La soudaine amplification des tirs d'artillerie et des canons antiaériens ne laisse plus guère de place au doute. Les Russes sont là. Terrées, en compagnie des enfants et des vieillards, dans l'obscurité des caves ou des bunkers, pour la plupart sans nouvelles de leur homme parti sur le front, les femmes de la capitale du Reich savent à quoi s'en tenir. La propagande nazie contre les "russische Bestien" (ces "bestiaux de Russes") a bien fait son travail. 

Les soldats russes, souvent des paysans venus de Sibérie, du Caucase ou de Mongolie, veulent des femmes, symboles de leur victoire sur l'Allemagne hitlérienne. Mères de famille, adolescentes, sexagénaires... toutes satisfont à l'idée valorisante que les "Ivan" - ainsi les surnomme-t-on - se font de la "Deutsche Fräulein". Livrées en pâture, maintes Berlinoises seront extirpées de leur souricière et traînées dans les couloirs, les annexes des caves, les cages d'escalier, pour y être violées. Les historiens évoquent 100 000 viols commis à Berlin entre avril et septembre 1945, et en tout 2 millions d'Allemandes violées sur le front soviétique.

 

Presque soixante-cinq ans se sont écoulés. Chaque famille d'Allemagne porte de près ou de loin ce drame en mémoire. Mais personne n'a jamais osé en parler (surtout à l'Est, où critiquer le "grand frère" russe était défendu). L'humiliation, la honte, la douleur, étaient trop fortes. Le tabou paraissait insurmontable. D'autant qu'au regard des crimes commis par les nazis, un interdit tacite empêchait les Allemands d'évoquer les souffrances endurées pendant la guerre : ils auraient aussitôt été accusés de révisionnisme.  

La parole semble pourtant se libérer. Tout en veillant toujours à rappeler la responsabilité initiale du régime nazi, de plus en plus de documentaires et de téléfilms se mettent à évoquer le tribut payé par les Allemands à leur Führer et aux Alliés : martyre de Dresde bombardée, torpillage du Gustloff et de ses 10 000 passagers, exode de 12 millions d'Allemands expulsés des territoires de l'est du Reich... 

 

Avec le film Anonyma, eine Frau in Berlin, réalisé par Max Färberböck et sorti sur les écrans allemands fin octobre, la question des viols massifs commis par les Russes en 1945 est pour la première fois abordée au cinéma. Avec la star allemande Nina Hoss dans le rôle principal, le film adapte Une femme à Berlin (Gallimard, 2006), le journal intime tenu entre le 20 avril et le 22 juin 1945 par Marta Hillers (1911-2001), journaliste berlinoise âgée de 34 ans au moment des faits.

 

Une femme à Berlin : Journal 20 avril-22 juin 1945베를린의 한 여인Une femme à Berlin : Journal 20 avril-22 juin 1945

 

Dans cet ouvrage, Marta Hillers (son identité, retrouvée par la presse en 2003, a finalement été révélée, mais elle-même avait tenu à rester anonyme de son vivant) relate le quotidien des habitants de la capitale nazie livrée aux Russes : absence d'eau courante et d'électricité, quête de nourriture, rationnements et pillages. Rien d'exceptionnel : de nombreux autres carnets de bord attestent d'un besoin généralisé de mettre en mots le chaos. 

Mais le témoignage de la journaliste reste sans pareil. Mêlant lucidité et cynisme à une précision rigoureuse, Marta Hillers y rend compte, jour après jour, des viols qu'elle subit comme si elle-même n'en était pas l'objet. Comme si la glace qui envahit son corps au moment où il est violenté habitait le récit en entier. S'il fait événement en Allemagne par le thème auquel il s'attaque, le film de Max Färberböck, lui, tente de raconter l'irracontable au grand public, c'est-à-dire en version quelque peu édulcorée. Il transforme en romance amoureuse une relation foncièrement pragmatique : celle que la journaliste berlinoise a recherchée et entretenue, après avoir été violée à plusieurs reprises par différents "Ivan", avec un major de l'Armée rouge. 

"Comme Marta Hillers, de nombreuses Allemandes ont usé de cette stratégie : quitte à être violée, autant l'être par le même à chaque fois, par quelqu'un dont l'autorité tient les autres à distance et qui assure protection et subsistance - les mères de famille en particulier y ont vu un moyen de nourrir leurs enfants", explique la journaliste Ingeborg Jacobs, qui vient de publier Freiwild ("Proies") (éd. Propyläen), une enquête pour laquelle elle a rencontré près de 200 femmes violées par des Russes en 1945.

 

De fait, "l'histoire d'Anonyma est un peu celle de Maman", raconte Ingrid Holzhüter. Elle avait 9 ans lorsque les Russes arrivèrent dans le village de Vogelsdorf, non loin de Berlin, où sa mère a décidé de se réfugier, après le bombardement de l'appartement berlinois de la famille. Le père est mort au combat, en France, à 29 ans. "Maman était particulièrement jolie, les Russes l'ont tout de suite repérée", se rappelle avec lassitude cette femme aujourd'hui âgée de 72 ans, qui, après toute une vie de lutte politique pour les droits de la femme, s'en remet aujourd'hui au bonheur simple de tricoter pour ses petits-enfants. 

Dès leur arrivée à Vogelsdorf, ils sont venus trouver ma mère. Et puis ils sont revenus chaque nuit, pendant des semaines, arrivant chez nous braguette ouverte. J'entendais ma mère supplier, appeler au secours..." - la fillette sera même, une fois, témoin de l'un de ces viols commis sous ses yeux. "Jusqu'à ce qu'elle devienne la maîtresse d'un commandant, et qu'il nous prenne sous son aile." 

Très répandue, cette stratégie de survie sera mal perçue dans l'Allemagne d'après-guerre. Les hommes, lorsqu'ils rentrent du front ou des prisons de guerre "se détournent de leurs femmes ou fiancées, parce qu'ils les jugent sales et indignes", raconte Ingeborg Jacobs. "Vous êtes devenues aussi impudiques que des chiennes, toutes autant que vous êtes dans cette maison !", s'écrie Gerd, le petit ami de Marta Hillers, lorsqu'elle lui donne son journal à lire.

 

Le journal de Marta Hillers a d'abord été publié en anglais aux Etats-Unis, en 1954. Il faudra ensuite attendre cinq ans avant qu'une maison d'édition suisse germanophone en propose une version en allemand (aucun éditeur allemand n'a voulu du manuscrit). La publication fait scandale. La journaliste est accusée de s'être "prostituée". Une réaction universelle dès qu'il s'agit de viol : "Les femmes violées sont toujours doublement frappées : une première fois par le viol, puis par le rejet de la société. Cette inversion de la culpabilité est typique de nos sociétés patriarcales", dénonce Monika Hauser, fondatrice et présidente de l'ONG Medica Mondiale, qui vient de recevoir le prix Nobel alternatif de la paix pour son aide apportée, ces quinze dernières années, aux femmes violées dans le cadre de conflits internationaux : Bosnie, Afghanistan, Congo... 

Cela fait longtemps que cette gynécologue de formation, qui a commencé sa carrière médicale dans une clinique de Rhénanie-du-Nord-Westphalie, voulait aborder la question des viols commis en Allemagne par l'Armée rouge en 1945. "Tant de patientes m'en faisaient le récit, lorsque j'étais jeune médecin... Je comprenais alors pourquoi certaines n'avaient pas voulu d'enfants, ne s'étaient pas mariées, avaient des pulsions suicidaires ou abusaient de médicaments." La sortie au cinéma d'Anonyma prouve toutefois que "la société allemande pourrait être enfin prête à entendre la souffrance de ces femmes murées dans le silence", estime-t-elle. 

Question, aussi, de génération. En effet, "mères et filles ont toujours eu trop honte pour pouvoir aborder ce thème ensemble", rappelle Ingeborg Jacobs. Dans son enquête historique, la journaliste décrit à quel point les mères ont tout fait pour protéger leurs filles du viol - quitte à se proposer à leur place lorsque ces dernières en étaient menacées -, et combien les filles, même enfants, se sentaient investies d'un sentiment de responsabilité en tentant de cacher leur mère, lorsque les Russes arrivaient. "Mais les petits-enfants, et notamment les petites-filles, posent aujourd'hui des questions à leurs grands-mères." Des grands-mères qui, justement, se retrouvent seules face à leurs souvenirs : "Ces femmes ne travaillent plus depuis longtemps, leurs enfants ont quitté la maison et leurs conjoints sont parfois décédés. Des images remontent, qui les obsèdent."

 

Aujourd'hui, il y a urgence à recueillir cette parole : "Bientôt, toutes les victimes auront disparu", souligne Monika Hauser, qui ne voit pourtant "toujours aucune volonté politique de la faire émerger". Si, pour la première fois en Allemagne, un appel à témoignages vient d'être lancé par le Centre de recherches psychiatriques de l'université de Greifswald, cette initiative n'a reçu aucun financement de l'Etat. "L'idée est de savoir comment ces femmes, qui n'ont jamais bénéficié du moindre soutien psychologique, sont parvenues à vivre jusqu'à aujourd'hui", explique le docteur Philipp Kuwert, qui dirige ce programme. Le projet doit déboucher à la fois sur une étude scientifique et sur la mise en place d'une thérapie ciblée, la première également, à destination des personnes âgées. 

Mais est-il encore temps ? Après s'être tues si longtemps, ces grands-mères meurtries qui, dans leurs maisons de retraite, sont prises de panique lorsqu'elles entendent des aides-soignantes parler russe ou lorsqu'on veut leur poser une sonde urinaire, sont-elles prêtes, au terme de leur vie, à raconter leur grand secret ? Peuvent-elles seulement encore être soignées ? "Il n'est jamais trop tard", assure le docteur Kuwert. Pour lui, avoir la parole est déjà, en soi, un acte de guérison. (Lorraine Rossignol / Article paru dans l'édition du 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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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로 착각된 탈민주체제:<미국의 종말>조효제 서평

직전 포스트에서 버틀러를 다뤘는데, 어쩌다보니 연달아서 두 명의 미국 페미니스트 관련 글을 옮기게 됐다 (참고로 나는 별 이유없는 남성 반 페미니스트임). 나오미 울프의 <미국의 종말>이라는 책에 대한 서평 기사다. 늘 신문에 나오는 일반적 서평 기사로 보이지만, 그 서평자가 -내가 충분히 신뢰해도 좋다고 믿는-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라면 문제가 달라지겠다 (그러고 보니 역자가 김민웅 교수(이 분도 글은 약간 덜 매혹적으로 쓰지만 생각은 적극 신뢰)). 인권 전문가인 서평자가 이 책에 잇대어 다시 쉽게 풀어주는 민주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는 전문가의 견실한 내공까지 묻어난다. 더구나 서평자가 찬사를 마다않는 저자와 역자의 책이라니, 이렇게 옮겨오는 나의 수고가 전혀 무의미하지도 궁상맞은 짓만도 아니리라 믿어본다. [짧지않은 서평이니, 시간 절약 차원에서, 서평 뒤에 걸린 울프의 강연 동영상을 작동시켜 놓고 독서를 시작해도 좋을 듯!]

 

▲ 미국의 페미니스트 나오미 울프(Naomi Wolf, 1962~). ⓒoregonstate.edu

▲ <미국의 종말>(나오미 울프 지음, 김민웅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


파시즘이 '어~' 하는 새 문앞에 와 있다"
[화제의 책] 나오미 울프의 경고 <미국의 종말>

 
나오미 울프의 <미국의 종말>을 읽고 나니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 21세기 미디어 시대에 걸 맞는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아렌트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그와 동시에 이 시대 젊은이들의 행동주의 감성에 직접 호소하는 어떤 직관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원래 나오미 울프는 미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사회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제3의 페미니즘 물결'을 이끈 대표적 이론가의 한 사람이자 여성운동가인 저자가 민주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평론서를 낸 것이다. 이것은 지성사로 보더라도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반파시즘-민주주의를 잇는 상징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본서의 영문 부제 "Letter of Warning to a Young Patriot(애국청년에게 보내는 경각의 편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울프의 관점은 명확하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유의 가치는 보편적 가치이고 그것은 좌파든 우파든,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존중하고 지켜내어야 할 어떤 공통분모라는 것이다. "이 '자유'는 고전적인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지지하는 미국적 민주주의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258쪽)

 

이는 평자가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소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인권은 어느 사회이든 그것이 제대로 된 민주사회라면,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중첩되는 합의의 민주적 기반'은 진보-보수를 초월한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고,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반민주주의자이고 반인권론자이며 파시스트인 것이다. 참다운 보수주의 정치철학이라면 민주와 인권과 자유를 적어도 존재론적 원리상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진보주의자만이 아니라 (참된 민주적) 보수주의자까지도 싸잡아 탄압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된다. 나치 독일이 그랬고 피노체트의 칠레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중첩되는 합의의 민주적 기반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는 진보주의자, 중도주의자, (참된 민주적) 보수주의자들이 모두 나서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로 불릴 자격조차 없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를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이 반민주주의자, 반인권론자, 유사 파시스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집단이라 보면 된다. 나오미 울프는 이런 메시지를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박학한 사상사적 지식을 동원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울프는 전투적인 페미니스트이자 공화주의적 민주투사로서 이중의 월계관-결코 쉽지 않은-을 쓴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종말>이 주는 메시지는 섬뜩하리만큼 예지적이자 기시감(旣視感)으로 가득 찬 역사적 진술이다. '기시감'이라 한 것은 우리가 20세기 역사를 통틀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일들이 오늘날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울프는 역사의 되울림(echoes)이라고 표현한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오늘날 파시즘적 예후가 도처에서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울프는 이 질문의 단초를 1930년대 초 독일 사회에서 찾는다. 본격적인 나치 독일의 전사(前史) 쯤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의회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법의 지배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참된 법의 지배를 억누르는 조직적인 시도가 행해졌다. 지금의 미국 사회와 비교하면 어떨까? 아주 닮았다. 전략과 전술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나치가 쓰던 이미지, 언술, 언어와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쓰는 그것들이 확연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나치 독일만 그랬던 게 아니다. 1920년대의 이탈리아, 1930년대의 러시아, 1950년대의 동독, 1960년대의 체코, 1973년대의 칠레, 1980년대 말의 중국이 모두 그러했다. 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독재 지망생들은 완전한 독재로 가기 위한 단계별 조처를 취했고, 오늘날 미국 사회가 바로 그 '독재로 가는 10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있다고 한다.

 

이 10단계의 구체적 내용들이 <미국의 종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울프는 "독재체제 없이도 파시즘이 도래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민주시민들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어~ 어~' 하는 사이에, 어느새 파시즘이 문 앞에 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민주시민들이 '독재체제 없는 파시즘' 앞에서 왜 경각심이 무뎌지기 쉬울까? '독재체제 없는 파시즘'은 선거 민주주의, 절차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따르는 척 하면서 정상적 민주주의 제도의 외양으로써 파시즘의 본질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는 벤자민 바버가 말하듯, 반민주도 아니고 민주도 아닌 탈민주 체제와 흡사하다. 탈민주 체제를 민주체제로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독재체제 없는 파시즘'을 안방에 들여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미국만의 문제일까? 울프는 고개를 젓는다. "무솔리니는 레닌을 연구했고, 히틀러는 무솔리니에게 배웠으며, 스탈린은 히틀러를 연구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스탈린을 통해 배웠고, 이런 식으로 독재체제가 재생산되었"다고 말한다(60쪽). 이런 연결 고리를 통해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주도하는 '독재체제 없는 파시즘'적 미국사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현재 어떤 체제를 배우고 흉내 내고 있는가?

 
나오미 울프의 의미심장한 논지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역자의 노고에 대해 한 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세계체제론의 대표적인 전문가인 역자는 정확하고 유려하게 울프의 저작을 우리말로 옮겼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의 역사적 뉘앙스와 정치 담론의 역동성(discursive dynamic)을 전달하는 데까지 성공한 듯이 보인다. 미국의 지적 풍토와 정치적 수사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본 저작과 함께, 내친 김에 울프의 올해 최신작인 <내게 자유를 달라 : 미국 혁명가들을 위한 핸드북>도 우리말로 옮겨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 중 울프의 최근 생각을 더 알고 싶은 분은 다음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는 것도 좋을 법하다. (☞ http://naomiwolf.org). 이와 더불어 애니 선드버그와 리키 스턴이 제작한 <미국의 종말> 영화 버전도 한국에 소개되면 좋겠다. 본 번역서와 멋진 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종말>은 미국 민주주의의 전망과 그것에 대한 현재적 경각심,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모든 독자들이 두고두고 곱씹어야 하는 필독서의 자리에 이미 올랐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8-12-22 오전 7:48)

 

 

위에서 말한 '미국이 파시즘으로(독재없이 민주주의로 위장한 채) 가는 10단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미국의 종말> 저자가 책 출간 직후인 2007년 10월 11일 워싱턴 대학에서 한 것이 이 동영상이라 함. 저자가 프랑스에는 얼마나 알려졌나 싶어서 간단한 검색을 해보다가 우연히 찾은 것임. 아래는 그 10단계에 대한 설명을 불어로 다시 풀어놓은 펌글.

 

Fin de l’Amérique : une lettre d’avertissement à un jeune patriote
Je suis tombé par hasard sur une vidéo trouvée sur Youtube diffusant une conférence donnée par Naomi Wolf (ancienne conseillère de Clinton puis d’Al Gore) à l’université de Washington à Seattle le 11 octobre 2007 à l’occasion de la parution de son dernier livre : The End of America : A letter of Warning to a Young Patriot (ce que je traduis par : La Fin de l’Amérique : une lettre d’avertissement à un jeune patriote). Le livre traite de ce que Noami identifie comme les 10 étapes pour tuer la démocratie. Selon elle, les Etats-Unis ont réalisé 9 des 10 étapes. La vidéo peut être visionnée sur Youtube :

 

Ces 10 étapes que Naomi aborde au cours de la conférence sont :

1/ Invoquer la terreur d’un ennemi intérieur et extérieur ;
2/ Créer des prisons secrètes placées en dehors du droit commun ;
3/ Développer une force paramilitaire non responsable devant les citoyens ;
4/ Mettre en place un système de surveillance intérieure ;
5/ Arrêter arbitrairement des citoyens avant de les remettre en liberté ;
6/ Infiltrer des groupes de citoyens ;
7/ Cibler des individus-clés ;
8/ Contrôler la presse ;
9/ Appeler toute critique espionnage et trahison ;
10/ Déclarer la loi martiale.

 

Elle illustre chaque étape avec des exemples concrets :

1/ Invoquer la terreur d’un ennemi intérieur et extérieur : Aujourd’hui, l’administration Bush utilise la menace du terrorisme pour terroriser la population. Même si cette menace existe, elle est exagérée et médiatisée. De faux rapports sont publiés pour donner une couleur plus terrifiante que vraie à cette menace. Non sans un peu d’ironie, elle fait remarquer que le terme « cellule dormante », très largement utilisé par l’administration Bush, fut d’abord utilisé par Staline pour désigner la menace capitaliste.

2/ Créer des prisons secrètes placées en dehors du droit commun : Certaines affaires ont éclaté aux Etats-Unis même si le président continue de le nier. Cela sert à mettre la pression sur la société civile. Certains programmes télé, comme 24 heures font accepter ces principes.

3/ Développer une force paramilitaire non responsable devant les citoyens : Naomi mentionne d’abord les chemises noires de l’Italie de Mussolini et les chemises brunes de l’Allemagne d’Hitler avant de désigner les Blackwater, une milice créée par un ancien officier des SEAL et sous contrat avec le gouvernement (sur le wikipedia anglophone : wiki-ang., sur le wikipedia francophone : http://fr.wikipedia.org/wiki/Blackwater_USA ). Ils auraient récemment reçu 1 milliard de dollars de la part du gouvernement américain pour accroître leur capacité à faire face à des situations de crises nationales, allant des catastrophe naturelles à d’autres genres de menace.

4/ Mettre en place un système de surveillance intérieure : Des listes de suspects sont faites. A chaque fois qu’elle prend l’avion, Naomi doit faire face à deux fois plus de contrôles de sécurité. Elle finit par découvrir que son nom était sur une telle liste. Les enfants et les proches de ces « suspects » sont également sur cette liste.

5/ Arrêter arbitrairement des citoyens avant de les remettre en liberté : Elle mentionne l’étape sans toutefois s’y attarder.

6/ Infiltrer des groupes de citoyens : L’objectif est de harceler les organisations de citoyens pour les rendre plus vulnérables et décourager les initiatives. Selon elle, de nombreuses associations citoyennes en Amérique sont infiltrées par les services secrets et la police.

7/ Cibler des individus-clés : La pression est mise sur les personnes-clés. Par exemple, les avocats militaires du JAG, pourtant républicains pour la plupart, sont harcelés pour qu’ils cessent de défendre leurs prévenus.

8/ Contrôler la presse : La pression est mise sur les médias. Une journaliste révélant des informations classifiées a été accusée de trahison.

9/ Appeler toute critique espionnage et trahison : Hillary Clinton a été qualifiée de « traître » a plusieurs reprises. L’Espionage Act, lorsqu’il fut appliqué pendant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aux Etats-Unis, fut surtout utilisé pour arrêter sans mandat, parquer et tabasser des militants sociaux de toute sorte.

10/ Déclarer la loi martiale: C’est le dernier pas qu’il reste à franchir...

 

Sur le fond, Naomi est plutôt pessimiste. Elle craint que la fenêtre de la démocratie ne se referme dans l’année à venir. Cependant, l’histoire a montré que si des millions de citoyens se réveillent à temps, la démocratie peut être promue à sa juste place.

 

Avec deux autres personnes, elle a fondé en juillet 2007 l’American Freedom Campaign (site web officiel : www.americanfreedomcampaign.org, sur le wikipedia anglophone : http://en.wikipedia.org/wiki/American_Freedom_Campaign). L’association a actuellement 5 millions de membres et espère en recruter entre 10 et 20 millions. Ils ont obtenu le soutien de tous les candidats démocrates à la Maison Blanche, y compris Hillary Clinton, et commencent à courtiser les républicains, avec pour le moment, une signature de chez eux.

Je leur souhaite personnellement bonne chance. J’ai cependant assez peur que le dénouement soit proche puisqu’une attaque prochaine de l’Iran semble de plus en plus possible s’il l’on en croit Le Canard enchaîné du 27 septembre 2007. Selon l’hebdomadaire, les Russes auraient averti les Iraniens d’une attaque imminente. Bien sûr, il faut être prudents et ne pas oublier que les Russes étaient en train de vendre des armes aux Iraniens et il est vrai que faire planer la menace d’une attaque est toujours un bon argument de vente.

 

Je pense malgré tout qu’il faut être vigilants pour l’instant.
퍼온곳: http://www.agoravox.fr/article.php3?id_article=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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