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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탈출기

* 이 글은 간장 오타맨...님의 [‘교통카드’ 시스템 오류 무방비] 에 관련된 글입니다.

오늘 버스를 타는데, 버스카드가 읽히지 않아 나 역시 좀 당황했다.

아침에 뉴스를 보면서 '버스카드 시스템 오류로 시민들이 큰 불편'이라는

어디선가 낯익은 카피를 보면서, 설마 지금쯤은 되겠지라던 생각에 한 방 먹인 것이다.

익숙했던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부딪힐 때의 당황감이란...

 

그러나 나는 결코 불편하지 않았다.

1년 365일 중 유일하게 버스기사 아저씨로부터의 무임승차가 허락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공짜'의식에 사로잡혀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는 말이 더 확실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만원으로 일주일을 간신히 버티는 나에게 800원의 '유예'가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한편.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가는 길이 일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공짜이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딘가 길을 나설 때 차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 날 용돈을 차비로 다 쓰지 않는다면 집에 갈 때 떡볶이 한 접시로 배를 두둑히 채울수도 있고

아니면 집에 가는 길에 노점상에서 파는 1000원에 3개짜리 녹차호떡을 사서는

식구들에게 선심쓰듯 따뜻한 호떡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를 가야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집에서 나가지 못하는 친구나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쫄쫄 굶었다는 친구도

적어도 움직일 수 있는 처지 정도는 되지 않았겠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내 뒤로 타는 다른 '모범 시민'들에 의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비도덕적'인 생각인지 '깨우치게' 만들었다.

버스카드 기계의 오류임을 깨닫는 순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가는 나와는 달리

이들은 지갑에서 동전을 긁어서라도 당연하다는 둣 어떻게든 버스비를 내고

'당당하게' 자리에 앉아서는 뒷자석에 자리잡은 나를 한번 쓰윽 보는 순간.

 

내가 정말 죄인이 된 것 마냥 느끼는 것이 정상인 듯한 분위기에 새삼 놀래며

여덞 명 남짓한 사람이 탄 마을버스에서

갑자기 내가 이방인이 되었거나, 너무나도 비양심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버스에서 내릴 때 그냥 웃고 말았다.

 

당연히 내야 하는 것.

정말 당연해야 하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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