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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한 시간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새벽 세시 반.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아서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늦은 밤도 아니고 이른 아침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다.

 

비는 조금씩 내리고 이 시간 누가 또 일어나 있을까해서 동네 산책을 하고 왔다.

불이 켜 있는 집은 몇 집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시간이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해야 할 일 때문에 아직 잠을 자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깬 걸까 갑자기 동네 염탐꾼이 되서 귀를 귀울이다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에 그냥 집에 들어왔다.

 

요즘엔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인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도 그런 것 같다.

힘들어 하는 시기. 앞이 잘 안 보이는 시기.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할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주변엔 온통 힘들어 하는 사람, 우는 사람들 뿐이고, 생기넘치는 사람이 없다

덩달아 나도 지친다.

 

세상살기 힘들다 하고, 사람이 싫다 한다.

삶이 너무 힘들어 지친다고 하고, 살아낼 자신이 없어진다고 한다.

자꾸 다른 길들이 눈에 보이고, 지금 사는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만 같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때로는 나도 누군가에게 투정도 부리고 울어보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줄만한 말만 골라서 휘갈기고도 싶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사람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다. 애당초 기대를 하지 않으니까

신뢰도 실망도 할 이유가 없다.

 

생애 처음으로 가출을 시도했던 때.그 때도 지금과 비슷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고3이라 공부를 해야했지만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그 때.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교묘하고도 소소하게 인생의 일탈을 시도했던 때.

그 첫 출발도 지금과 같은 시간이었던 것도 같다.

어딘가 멀리 떠나기에는 힘든,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그런 시간.

 

하지만 지금은 그 때처럼 내 인생을 포기하는 듯한 삶을 살 생각은 없다.

그런 경험은 한번으로도 충분하고, 더 이상 어리지않으니까

지치고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지금이라해도

되돌아간다거나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직도 그걸 깨닫지 못했는지 혹여나 내가 집을 나갈까

연신 방문을 열어보신다.

이 시간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여기에 또 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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