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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읽고 싶은 만화

고양이가 돈 벌어오니, 아이고 좋아,  아즈마 가즈히로의 <알바고양이 유키뽕>

2004.06.11 20:04   
  

 
  길고 깊은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대공황 시대 미국인들은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터무니없는 영웅들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했지만, 지금 동아시아인들은 <신의 아들>이나 <멋진 남자 김태랑>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일조차 가당찮다고 여긴다. 내 신세 그저 이대로지. 뭘 더 나아지길 바라나? 차라리 처절하게 실업자와 백수 신세를 토로하는 자학 개그가 속편한 듯이 보인다. <행복한 백수> <오이카와 취업 일지> <룸펜 스타> <곰씨와 오리군>…. 마치 새로운 장르라도 만들어낼 기세로 ‘불경기 만화’ 혹은 ‘백수 만화’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게으르고 의지박약인 백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아닐까? 주인은 방구석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려도 똑똑한 고양이 한 마리가 부와 명예에 미모의 부인까지 얻어다준다. 각종 아르바이트 업무로 작업모 갈아 쓰기 바쁜 <알바 고양이 유키뽕>(북박스 펴냄)은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의 후손으로 보이는데, 주인을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났다.

유키뽕의 주인인 아케미는 정확한 직업도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이른바 프리터(free+arbeiter) 중에서도 꽤나 질 낮은 족속이다. 약간의 돈이라도 생길라치면 술값으로 날려버리고,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며칠씩 외박하는 건 예사이고, 남자와 잔다고 고양이 유키뽕을 노숙자 신세로 만들기도 한다. 주인이 하는 짓은 정말 대책없지만, 아니 그 무책임함으로 인해 더욱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듯, 유키뽕은 이삿짐 나르기에서부터 항해 측량 보조와 과외 교사에 이르기까지 아르바이트 전선의 모든 위치로 달려간다.

 
 
 갖가지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키뽕과 아케미는 끈끈한 애정으로 엮여져 있는데, 유키뽕의 후덕함은 아르바이트 업계 전체로 퍼져나간다. 자신은 비록 고양이라는 신체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다채로운 업무의 초보자로 일해 온 만큼 다른 초보 아르바이트생들을 격려하고 일을 도와주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하다. 걸쭉하고 질감 좋은 펜 선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여타의 개그 만화와 질적인 차이를 보여주는데, 유키뽕이 지닌 의외의 사회성에도 탄복하게 된다. 한국에서 돈 벌러 온 권투 선수를 통해 외국인 거주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제주도에 불시착해서 만난 노인을 통해 일본의 불법 한국 점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독자들이 직접 지어 보내는 ‘고양이 하이쿠’도 꽤나 즐거운 코너다. ‘꼬리를 밟았더니 오우 마이 캣’, ‘주인님 미행하니 충격적 추태’, ‘발바닥에 꿀을 찍어 덥석 물었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
 

 영원한 생명을 회쳐 드실까요, 다카하시 류미코의 <인어> 시리즈 박스세트 2004.09.24 20:04   
 

 
 
   서양의 흉포한 용과 동양의 성스러운 용이 다르듯, 유럽의 인어와 일본의 인어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라인 강이나 지중해에서 달 밝은 밤 초록색의 긴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는 매혹의 인어는 일본에 오면 날카로운 이빨에 흉측한 얼굴을 가진 괴물로 둔갑하게 된다. 그래도 닮은 점이 있다면 양쪽의 인어 모두 인간을 유혹해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인어가 아름다운 외모와 노래로 인간을 꼬인다면, 일본의 인어는 영생을 보장하는 자신의 고기로 인간을 꼬드긴다.  <란마 1/2> <견야차>의 다카하시 류미코가 안내하는 예상 밖의 공포세계는 인어 고기에 얽힌 단편 연작이다.

  <은하철도 999> <무한의 주인> <잭과 엘레나> 시리즈 등 걸작 만화 중에는 영생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질기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자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계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를 타고 가는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만 메말라가는 영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기계 인간들을 만나고, <무한의 주인>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는 육체를 얻은 만지는 수백명의 목을 자르면서 점점 무감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인어> 연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어릴 때 인어 고기를 먹고 영생을 얻은 꼬마는 어른의 몸으로 자라지 못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엄마를 얻어 이용한 뒤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어린 시절 인어 고기를 두고 다툰 자매는 흉측한 몰골로 평생 동굴 속에 숨어 지내거나 그를 감추어두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신세가 된다. 500년 전 인어 고기를 먹고 불로불사의 몸이 된 주인공 유우타는 오늘도 인어를 찾아 떠돌아다닌다. 이미 얻은 영원한 목숨에 또 다른 목숨을 더하려는 게 아니다. 부모도 연인도 잃고 길고 긴 세월 동안 홀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다시 인어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류미코는 독특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목숨에 얽힌 서늘한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그녀 최고의 장기인 왁자지껄한 유머를 없애고도 단단한 걸작들을 엮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인어> 연작은 <소년 선데이>에 부정기적으로 연재된 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최근 <인어의 숲> <인어의 상처> <야차의 눈동자>, 세권으로 구성된 박스세트(학산문화사 펴냄)로 출간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
 

 


 

나지막하게 미시적으로, 정송희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2004.07.16 20:04     
 


    우선 익숙하지 않음에 불편할 것이다. 인물들도 이상하고, 배경도 그렇고, 이야기는 무언가 답답한 것 같다. 시각적으로 낯설어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다. 톤도 없고, 때론 회색도 없이 흑과 백뿐이고, 명확한 직선도 없는 배경까지 모두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정송희의 만화는 무엇보다 작가 개인에 의해 그려진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만화의 원초적인 힘을 보유한 작품이다.

소박하지만 풍부한 그림으로 정송희는 삶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기록한다. 표제작인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의 경우 어린 시절 각각 다른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자와 가해자였던 남자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되돌아본다. <지나 사라지다>는 희생만을 강요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유년의 틈> 역시 어린 시절 상처받은 기억을 지닌 두 사람의 회상을 그린다. <누드모델>은 육체적 차이에 대한 타인의 폭력적인 발언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게 뭔지 몰랐어>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정송희의 작품들은 대부분 상처로 남은 기억을 되돌아보거나, 바로 지금 당하고 있는 상처를 이야기하는 데 주력한다. 과거의 기억이건, 현재의 상처건 바로 상처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정송희의 작품은 아주 친한 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는 것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고백한다. “난 이런 상처를 갖고 있어.” 


  정송희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류 만화 주인공들의 (판타지한 욕망으로 디자인된) 상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백은 내 친구의 고백처럼 받아들여진다. 충격적인 고백이 아니라 감싸 안아주고 싶은 고백이라는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깊은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쓰디쓴 삶의 뿌리를 내비치는 친구의 모습으로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그 손을 잡게 된다. 정송희 만화의 힘이다. 자연스럽게 상처를 내보이는 힘, 그리고 그 상처를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힘, 이 모든 힘의 원천은 인간의 내면에 깊이 내려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꾸준히 다양한 만화를 창작하고 있는 만화동인 ‘박카스’의 일원인 정송희는 1999년 월간만화잡지 <오즈>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도 대부분 그 결과물들이다. 기본적으로 드로잉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화 스타일이지만, 미묘하게 작품마다 그 스타일이 다르다. 예를 들어 <관계>와 <그게 뭔지 몰랐어>처럼 각각 다른 두 작화 스타일을 한권의 책에서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내 친구가 내미는 손을 잡아줄 용기가 있다면, 이 만화를 아주 천천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우리는 고양이로소이다  <묘한 고양이 쿠로> 스기사쿠 지음 I 시공사 펴냄

 

  개인적으로 2003년에 나온 동물만화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개와 고양이를 1인칭으로 두고 이야기를 펼쳐가는 만화는 적지 않지만, 그들의 삶을 이렇게 사실적이면서도 귀엽게 그리는 작품은 보기 어렵다.

   쿠로는 자신의 여동생 칭코와 함께 ‘수염’이라고 이름 지은 너절한 싱글 남자의 연립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오는 날 놀이터에 버려졌다가 이 남자에게 거두어졌지만, 그를 주인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집의 안과 밖을 오가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만화는 쿠로의 1인칭 일기처럼 그려지는데, 길거리 고양이 세계의 권력 다툼, 발정난 고양이들의 사랑 싸움, 교통사고로 죽은 새끼 고양이의 무덤 만들기와 같은 실제 고양이 세계의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펼쳐진다.

어쩌면 나스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유머와 귀여움를 좀더 담은 시점이라고도 여겨지는데, 쿠로의 친구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도 딱 고양이 발치에서 바라다본다. 못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지만 왕따에 가까운 소년, 커다란 몸집과 못생긴 얼굴로 실연의 상처를 입은 듯한 괴인 여자, 마른 몸에 신경질적으로 보이지만 고양이들을 챙겨주는 여우 여인. 정말 고양이가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이것 말고도...                      김혜린, <노래하는 돌>   

               

 

 

  

내가 엄마를 먹여살리는 이유, <타무라 유미의 만능캡슐>

 

 

 

김전일의 후계자는,바로 당신!<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죽은 자는 알고 있다,시미즈 레이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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