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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1/02
    2006년 새로 거듭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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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춘천행.

#1. 춘천가는 기차,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냥 바람이나 쐴까 하고는 무작정 경춘선을 탔다.  예전에는 2500원으로 통일호 열차를 타고 맘 편하게 하루 다녀왔는데,  간만에 탄 경춘선은 무궁화로 대체되서는 5000원이나 하는 시츄에이션~. 사람도 변하고, 기차도 변하고, 기차역도 변하고, 강산도 변해버린 듯한 상황.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오랜 친구와 여행을 떠나기 전 느꼈던 설레임.

 그 정도로 해두기로 했다.

 

▶ 몇 년전에 공사중이던 김유정 문학관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철도청 홈페이지에 신남역을 찾았는데, 그런 역이 없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다. 알고보니 역 이름도 '김유정'으로 변해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문화관광촌으로 자리잡은듯한 실레마을. 폐결핵으로 죽으면서 닭한마리가 먹고 싶다던 김유정은 훗날 자신의 이름으로 기차역이 생긴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했을까?

 

 

신남역이 김유정으로 역명이 바뀌기 이전에는 조그마한 간이역으로 기차도 하루에 세, 네번만 정차했다. 마을 사람들도 김유정 생가를 물으면 희한한 사람으로 보던 눈빛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을 분위기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옛것은 새것으로 빠르게 대체되는 시대.

사는 것이 느린 나는 새것보다는 옛 것이 마냥 그리워지는 시간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 같다.

 

 

 

 

#2. 강안개, 물은 물이다.

 

희뿌연 날씨에 좀 더 좋은 날씨였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뱉은 순간.

시 하나가 생각났다. 도종환의 시인데, 개인적으로 난 도종환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벽 강안개 세상을 씻으며 하늘에 오르듯
내 마음도 당신을 향해 늘 오르고 있다" (-이제 당신과의 사랑은 中 - 도종환)는 표현이.

 

강은, 물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가볍게 혹은 무겁게 변화시키며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더러운 것들과 함께 간다는 표현도.

 

▶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정해진 철장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절대!!!

손만 뻗어 그저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강을 보고 싶었다.

 

 

 



 

 


 

 ▶뱃길은 정해진 것도 없고,  흔적을 남기다가도 이내 사라지고 만다.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파도에 물은 거품이 일다가도 금새 잔잔해지며 바람만 맞아줄 뿐.
그게 물이다.

 

 

 역시 한 1년만에 배를 타봤다. (요즘 모든게 1년만이다.) 바다에서 타는 배와는 다르게

바람은 짜지도 않고, 수분은 충분해서 폐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 춘천 닭갈비. 명동 골목에서 이리저리 아주머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손님이 가장 많은 가게를 들어갔다. 알고보니 여행사 단체손님이었으나, 뭐, 그냥 맛있었다고 기억하기로 했다.

배가 터질 때까지 국수, 닭갈비, 음료수4잔에 봉평 동동주까지 먹었으니까. 지금보니 남긴 저 떡들이 먹고싶어졌다. ㅠ.ㅠ

 

춘천 여행이 닭갈비가 먹고 싶다던 친구 때문이기는 했으나, 문득 의문이 든 건 사실.

왜 춘천은 닭갈비가 유명할까? 이 질문에 나는 "아마 아현동에 가구단지가 유명한 이유와

흡사할꺼다"라고 답은 했으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 친구 네이버를 찾았다.

 

"춘천 닭갈비의 유래는 약 1,400년전 신라시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이있고 50년대 지금의 강원은행 본점자리에서 김씨라는 사람이 닭불고기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70년대초 요선동에서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좀더 확실한 것은 70년대 초부터 명동 닭갈비골목을 중심으로 4개업소가 본격적으로 닭갈비요리를 발전시킨 점이다."닭갈비" 란 말은 원래 흥천에서 먼저 사용되었고 그 흥천의 닭갈비는 냄비에 육수를 넣고 닭요리를 한것인데 , 흥천과 태백에서 지금도 이 음식이 남아 있다.
  춘천에서 숯불위에 석쇠를 얹어 닭고기를 요리했던 숯불닭갈비가 있었는데 71년부터 닭갈비판이 등장하면서 춘천 닭갈비가 태어난 것이다. 
 춘천에서 닭갈비가 발달한 배경중의하나는 춘천지역이 양축업이 성했고 도계장이 많았던 이유다.
 닭갈비는 지금도 그 맛과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대단히 싸서 (70년대초 닭갈비 1대값은 100원 이었다.)그 별명이 '대학생갈비 '서민갈비'였다.

 

네이버는 모르는게 없는 내 친구. 물론 항상 정답만 알고 있는게 아니라서 그렇지 ㅋㅋ

 

#4. 친구, 길


 

 

▶청평사가는 길목에서 찍은 한 장. 배 못탈까봐 열심히 뛰는 도중이다.

가는 길 내내 유독 느린 걸음으로 계속 뒤쳐진 달팽이와 여우비.

 

 

20년이 넘게 우리는 우리가 남들보다 빠르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패배자와 비슷한 이미지로 뒤쳐지는 걸음을 지닌지 몰랐나보다.

가면서도 포기와 도전사이를 줄다리기하면서 결국 완주를 했던 까닭.

뭐, 입장료 때문만은 아니고^^;;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혼자였다면 끝까지 갈 것인가 도중에 포기할 것인가를 가지고 그렇게 몇번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겠지. 내 컨디션을 봐가면서, 마지막 배시간을 철저하게 계산하면서 갔을테니까.

둘이였기에 끝이 보이지도 않고 38.5도의 언 경사길을

도중하차를 결심했다가도 이내 곧 한번 가보잔 말에 서로를 설득하며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가 길을 인생 길에 비유했던 건지. 기막히게 느꼈던 하루.

끝도 보이지 않는 길에서 때로는 지치고 포기하고 싶다가도 누군가가 있기에 갈 수 있다고.

사람이 있기에 갈등도 하도 보듬어 주며 때론 곧게 때론 돌아가며 사는 거라는 말.

덕분에 마음은 뿌듯한데, 발목이 저리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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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술마시고난후


 

 

적.극.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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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사회 초년생의 명함 돌리기

 

몇일 전 부터 학원강사를 시작했습니다.

공교육의 꿈을 잠시 접고 사교육으로 발을 돌린지 어언 3주.

오늘 출근을 하는데, 원장 선생님이 뭔가를 내밉니다. 명함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다면 나왔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에

처음으로 제 이름이 찍힌 명함 200장을 건네 받았습니다.

사실 명함을 처음 찍은 것도 아닌데,

(대학교 때 다 돌리지도 못하고 구석에 처 박힌 제 명함이 2년에 걸쳐 200장은 족히 남아 있습니다.) 명함을 받자마자 기분이 묘합니다.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싫지도 않은 묘한 느낌.

 

 

이 종이짝에 찍힌 제 이름 석자가 이렇게도 무겁게 느껴진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책임감이 생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종이 한장에 사람 기분이 묘해지는

야릇한 상황에 어리둥절합니다.

이젠 정말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생각만 납니다.

 

 

순간 명함이 도대체 왜 필요한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 말고 다른 선생님들은 금장으로 명함을 다시 박기로 했거든요.

갑자기 "아메리칸 사이코"라는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몇년 전에 나온 공포영화였는데,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는 간단한 동기는

자신의 친구가 찍은 명함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질의 종이에 금줄 하나 더 박은 명함을 자랑하는 친구를 전기톱으로 깨끗하게 처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종이 한장에 간단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 때문에요.

그런데 지금에서는 그게 현대인의 모습을 과도하게 잘 반영한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책상 앞에 쌓아놓은 명함 케이스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전, 아직 명함을 어떻게 주고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이 명함들도 케이스에 담겨 고이고이 보관될 것 같습니다.

이거...학원 선생님은 이 명함 다 쓸 때까지 나갈 생각말라던데,

이 상태로는 학원에 말뚝을 박아야 할 지경이겠죠?

 

 

누군가에게 명함을 처음 받았을 때의 어리둥절함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 주변 사람이야 이제는 명함을 주고 받는 것이 익숙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도 곧 명함을 주고 받는게 익숙해지는 그런 환경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훗날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되더라도

종이 한장에 박힌 활자와 지위가 저를 말해주기보다는

제 웃음과 말 한마디가 저를 더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삶을 늘 기대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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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점보롤에 대하여

점보롤에 대하여

"휴지통의 말이 옳다. 난 일주일이나 뒤집어져 있었다오. 다 아주머니 때문이라오. 본좌를 벽쪽으로 걸어놓지 않았겠소. 통재라. 벽만 쳐다보고 있는 답답한 심정. 그대들은 모를꺼요"


뚫어뻥이 정색을 하며 가로되,

"점보공이 케이스속에만 계셔서 우린 몰랐다오. 미안하오.
그러나 점보공을 거는 것은 다 취향의 문제 아니겠소, 새술은 새푸대에, 이해하시오" 


휴지통 다시 나와 버럭 가로되,

"허허. 이런 답답한 양반을 봤나. 점보공의 옷 자락 방향을 보면 모르오? 관심이 없음 없다고 말하시오. 본좌는 너무 말하고 싶었으나 휴지가 너무 쌓이는 바람에 말할 수 조차 없었소. 본좌가 왜 이렇게 과잉노동에 시달리고 있는지 아시오? 자기쪽으로 당기는데 익숙해진 4층 인간들이 여전히 개념 없이 점보공을 잡아댕기기 때문이오. 존내 주르륵 주르륵 풀려진다는 얘기요"


세정제가 새파랗게 질려 이르되,

"그건 습관의 문제요. 힘을 조절하면 되는 일이오. 그리고 벽쪽으로 걸려 있는 것이 미관상 훨씬 보기 좋쏘. 게다가 점보공을  더 아껴쓸 수 있쏘. 일단 손으로 잡고 끊어야 하니깐. 그것도 귀찮아서 자기쪽으로 걸어달라는 인간들은 좀 맞아야 하오"   


이젠 점보공 케이스까지 나서서,

"세정제 공이 변기 안에 갇혀 지내셔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점보공은 그저 잡아당기는 맛이라오. 두툼한 원형체가 돌아가면서 팽팽히 당겨지는 그 감칠맛. 은퇴하신 두루마리 휴지 공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오"


세정제 대성일갈을 하되

"변태요?"


점보케이스공이 한대 칠 기세로 달려들며,

"뭐요? 해 보자는 거요?"


- 후략


연대: 미상
작자: 우울씨
형식: 한글 수필
성격: 교훈적, 논쟁적, 풍자적, 우화적
표현: 의인법, 풍유법
문체: 싸움체
주제: 휴지는 벽쪽으로 걸어야 하는가. 사용자쪽으로 걸어야 하는가
의의: 공학원4층 인간들 중 최초 문제제기. 피디수첩 줄기제보와 쌍벽을 이룬다.
줄거리: 평화로운 해우소. 4층 용역 아주머니가 로테이션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서로에게 원망과 질투를 늘어놓다가 끝내 싸움판으로 변한다.

이해와 감상 포인트:  1. 4층 아주머니의 취향을 인정할 것인가?

                     2. 휴지는 어느쪽으로 걸어야 하는가?
               
                    3. 꼴통들과 대화 하는 방법
           
                    4. 노동초과와 산업재해
                

관련 자료:



by 꽁치보일드 | 2006-01-12 12:05 | H-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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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웃겨서 그냥 주르륵 퍼왔다. 아, 나도 이렇게 재미있게 썼으면^^;;; 푸하하
 
우울선배의 유쾌한 블로그질에 항상 감탄한답니다.ㅋㅋㅋ
이 글은 특별히 마음에 들어 제 블로그에 퍼왔습니다.
나중에 수업에 써먹으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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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지기

 

내일이면 드디어 결과가 나옵니다.지난 1년동안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생활했고,

지금에야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마지막 매듭을 짓게 되는거죠.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달려왔냐고 물을 수 있을까?

지난 한 달동안 그걸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반은 열심히 살았다고 다독여줄 수 있고, 반은 열심히 했다고 하기에 부끄러운 삶입니다.

 

잃은 것이 있다면.

가장 큰 것은 건강이겠죠. 지금도 위 속을 채우는 알약이 한끼에 다섯알.

하루엔 15알의 알약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연말도 지났으니 이제 슬슬 검진도 예약해야겠고, 기초적인 운동도 시작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과 사람을 대하는 자신감. 이것도 부딪히다보면 다시 자라나겠죠.

게을러진 생활습관과 나빠진 눈, 부정적인 사고. 이런 것들도 하루빨리 그만둬야겠습니다.

 

 

 

 

자칫 지난 시간이 잃은게 더 많아 보일때가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해도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고, 아직은 앞으로 해야할 것들이 더 많으니까.

 

더 이상 실망하고 뒤돌아보는 일은 그만두겠습니다.

술 한잔에 툭 털고 일어서면 되겠죠.

나는 아직 나를 어떤 모양으로 조형해 나갈지 결정하지 못했으니까요.

 

 

단지 이번 기회를 놓쳤을 뿐 기회는 언제든지 오니까.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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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선 "사랑을 위한 서시"

송하선 "사랑을 위한 서시"

사랑한다는 것은
햇빛의 미소를 배우는 일이다.
스산한 가을날 아침 무렵
나뭇잎새의 이슬방울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잠재우는
햇빛의 미소를 배우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햇빛의 손길을 배우는 일이다.
스산한 가을날 저녁 무렵
알몸이 된 나무들의 간절한 기도를
차마 떨치지 못하고 쓰다듬어 주는
황혼빛의 손길을 배우는 일이다.

아, 우리네 고단한 인생살이에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우는 일은
물처럼 그러나 잔잔한 호수처럼
모두 다 끌어안으며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를 꿈꾸는 일

사랑한다는 것은
저 높은 산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하늘 아래 큰어른처럼 우뚝히 서서
손 아래 무릎 아래 형제들을 거느리고
묵묵히 묵묵히 미래를 명상하는
저 높은 산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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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강도가 넘 심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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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새로 거듭나기

내 블로그 1월 1일 달력에 뭔가 기념할만한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벌써 1월 2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1년동안의 시간이 정말 짧게도 지나가버렸다는 생각과

앞으로 남은 364일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하는 생각에 잠시 고민했다.

(원래는 1년은 정말 365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달력일수를 모두 세볼까 하다 그만뒀다.)

 

무언가를 희망할 수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꿈꿀 수 있고,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에 잠시 웃음지을 수 있는 삶이란,

비록 허황된 꿈일지라도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읽어야 할 책들과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를 노려보는 것 같지만,

편의대로 구분지어놓은 새해라는 시간의 경계덕분에 맘은 편해져간다.

앞으로 하면 되잖아.

 

 

내 동생은 몇 시간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더니,

싸이월드 전체쪽지로 솔로 탈출을 절실히 기도해놨다. 쯧쯧.

곧 군대에 가는 까닭에 소개팅도 들어오지 않고, 친구들도 없는 우울한 이 놈의 삶

당근 내 삶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이 놈의 새해소망에 가슴이 찡해진다. 꼭 이루어지기를 바랄께.

 

 

벌써부터 2006이라는 숫자에 능숙해져간다.

올해는 모두가 눈물흘리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지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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