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187, June 15, 2006

“라틴 아메리카의‘좌경화’는 어떻게 이뤄졌나”
(How Has Latin America Moved Left?)




최근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좌경화 추세를 놓고 벌어진 갑론을박에는, 오늘날 좌파란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전세계적 혼란상이 투영돼 있다. 사실 이같은 혼란은 어떤 정치적 견해나 당파 할 것 없이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그간 여러 설명들이 있었다.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건 첫째, 좌경화의 준거라 거론되는 것들이 그걸 준거라고 하는 이들의 숫자만큼이나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어떤 정치적 경향에 완벽한 선형성 따위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거기엔 늘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해서 이게 어떤 총체적 경향성마저 부재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세 번째 이유로는, 그런다고 그네들의 속내마저 분간할 수 없을까마는, 정치인들이 만나는 청중마다 말을 달리하기로 워낙 악명이 높은 탓이다.

그러면 여지껏 제시된 것들 중에서, 어떤 걸 준거로 삼아야 할까? 먼저, 그것으로 특정 정권의 입장을 지정학적 이슈 또는 정권에서 추진하는 정책들과 결부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물론 이 두 가지, 즉 지정학적 이슈와 추진하려는 국내정책은 서로 연계돼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특정 정권들이 (지정학적 이슈에 대한 입장과 정책기조 사이에서) 반드시 앞뒤가 맞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주요한 지정학적 이슈로는, 미국이란 나라와 맺는 관계, 그리고 이 나라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들 수 있다. 이 이슈에 대해, 2000년 이후부터 대다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상당한 거리를 두어왔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진, 미 국무부에 물어볼 일이다. 이 지역 국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미국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며, 과거에도 그랬다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는, 이를테면 차베스(미국 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유명한 현 베네수엘라 대통령: 옮긴이)가 쏟아낸 일련의 발언들이 귀에 거슬린다는 선에서 그치고 말 문제가 아니다. 이같은 상황은 대체로 중도파라 평가받는 현 에콰도르 정부의 변덕스러운 행보에서조차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콜롬비아를 예외로 하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자신이 우파임을 드러내놓고 선거에 입후보했다가는 더 이상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좀처럼 믿기 어려웠던 일이다.

(준거다운 준거 선별을 위해)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미국 정부가 내놓는 온갖 제안들에 대해 정권은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점이다.

크게 볼 때, WTO가 지금 제반 협상의 진행에 상당한 곤란을 겪고, IMF의 영향력이 10년 전 쯤만 못하며, 미국 정부 주도로 추진중에 있는 아메리카대륙자유무역협정(FTAA)의 경우 뭐 하나 제대로 진전될 수가 없는 건, 이들 움직임에“중도-좌파”정부들이 걸어온 태클 때문이다. 쿠바 정부도 아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가 말이다. 심지어 페루에서 (차베스가 지지를 보낸) 오얀타 우말라를 제치고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중도파 알란 가르시아조차, 당선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전 정권이 미국과 추진해왔던 자유무역협정의 모든 조항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 말했다.

새로이 등장한 여러 라틴 아메리카 정권들에 대해 좌파적 시각에서 이뤄지는 비판은 보통, 지정학적으로 이들이 취하는 태도보다는 국내에서 추진된 정책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몇 가지 중요한“국내용”이슈들을 들어 보자. 먼저, 이른바‘원주민’들의 제반 권리에 관한 문제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이는, 2백 년 넘도록 문제가 돼온 정치적 이슈다. 하지만 그것이 원주민들의 여러 권리에 관한 크나큰 진전으로서 부상하게 된 건 근래의 일이다. 그것은 토착민들의 자각과 정치적 조직화 움직임이 그 폭와 깊이를 넓혀온 결과였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각 나라마다 정도상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들 토착민의 힘은 부분적으로 인구학적 규모에 빚진 것이기도 하다. 찬찬히,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련의 상황을 들여다보자. 많은 나라에서 원주민 출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볼리비아에서처럼, 정치세력화한 원주민들의 존재는 그 자신 원주민 출신이기도 했던 에보 모랄레스의 선거활동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에콰도르 같은 경우, 이들 원주민이 정치세력화함에 따라 전통적 우파들이 주도하던 정치지형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싸파티스타들의 반란에 의해 근본적으로 바뀌어버린 상황맥락 속에 놓인 멕시코 사례는 굳이 언급할 것도 없다. 전체 인구 중 원주민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칠레 같은 나라에서조차, 원주민들의 투쟁은 이제 정부가 맞부딪혀야 할 주요이슈로 자릴 잡았다.

두 번째 국내용 이슈로는, 첫 번째 이슈와 곧잘 연관되는 것으로, 토지개혁 문제가 있다. 좌경화라는 말에 대해, 좌파 평론가들이 비판의 날을 제일 곧추세우는 건 바로 요 대목에서다. 실제로 브라질 집권 노동자당(PT)은 당초 추진하리라 공언했던 몇몇 중요한 개혁조치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그 결과, PT의 주요지지세력이던 농민운동단체‘무토지농민운동(MST)’은 이들과 더더욱 소원해진 상태다.

그러나 모랄레스가 새 대통령이 된 볼리비아 정부에서는 향후 토지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천명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 이는 여타 나라에서 그와 유사한 운동들이 발흥하는 데 강력한 촉매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이슈는 천연자원(광산과 에너지 자원은 물론, 물도 포함하는)의 통제에 관한 것이다. 이 때의 통제라는 단어가 전면적인 국유화 상황을 늘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말의 의미인즉슨, 자원에 대한 상당한 통제권과 (자원통제로) 창출된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비록 완만했을지언정 차근차근 운동이 이뤄져왔음은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를 그저 오늘날 초국적기업들이 감내해야 하는 현실로만 바라보는 한, 이로부터 읽어낼 거라곤 보호주의에 대한 (초국적기업들의) 비명소리가 고작이다. 몇십 년 전 같으면야 초국적기업들이 자기들한테 우호적인 쿠데타를 손쉽게 부추길 수 있었을지 몰라도, 베네수엘라의 경우가 보여주듯, 이제 그러긴 매우 어려워졌다.

네 번째 국내 이슈로는, 새로운 정권에서 초중등 및 고등교육 전반, 그리고 보건(의료)체계 구축에 필요한 재원을 얼마 만큼 추가로 끌어올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또한 토지개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아직까지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운용할 자원의 태부족이 그리 된 이유 중 하나이고, 더욱이 그같은 결핍은 다른 영역(비정부 영역: 옮긴이)의 여러 수단들을 통해 극복돼야 할지 모른다 해도 말이다. (눈앞의 결과에 근거한)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건 이래서다.

마지막 이슈로, 일국 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뤄지던 군부의 직접적 간섭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의 후견 아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고문을 장기로 하는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그런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닌 게 아니라, 병영으로 복귀하면서 군부 스스로 내렸던 사면조치들에 대한 무효화 작업이 한창 진행중에 있다. 비록 완만하고 조심스럽다고는 하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건대, 그것은 성공적이다.

자 그럼, 전체적인 구도는 어떤가? 라틴 아메리카가 이전보다 왼쪽으로 이동한 건 확실하다. 이같은 경향이 향후 10년 간 유지・강화될지 여부는, 세계의 지정학적 구도가 어떻게 바뀌느냐,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좌파적 사회운동들이 얼마 만큼 유기적 결속을 유지하는 가운데 호소력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출해낼 것이냐에 달려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 사회학




영문칼럼보기: http://fbc.binghamton.edu/187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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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2 22:16 2008/03/0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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